속초 시내를 벗어나 한화콘도 사거리에서 미시령 터널 방면으로 조금 올라가다 보면 왼편으로 울산바위와 달마봉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일명 ‘자활촌(自活村)’이다. 설악산 자락에 위치해 속초에서 가장 깨끗한 전원풍경을 자랑하는 마을이다. 그러나 그 곳은 명칭 그대로 스스로 알아서 생존해야하는 마을이란 뜻이고 마을이 형성되기까지 많은 아픔을 겪어야 했던 마을이다.
자활촌은 원래 학사평 남쪽 허허벌판에 강제 집단이주 정책을 통해 건설된 마을이었다. 1961년 8월, 당시 박정희 군사정권은 주거가 일정치 않거나 직업 없이 거리를 방황하는 사람, 부랑자 등 250여명을 전국에서 모아 속초 학사평 벌판에 강제 이주시켰다. 학사평은 당시 속초에서도 가장 오지였고 군사정권은 그들에게 농기구만을 쥐여 준 채, 스스로 알아서 개척해서 살아갈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초창기 이 척박한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탄식만 하고 지낼 정도로 온갖 고초를 겪었던 강제 이주자들로부터 시작된 이 마을은 50여년이 지난 지금은 곳곳에 예쁘게 지어진 펜션들과 인근에 설악산 자생식물원, 부엉이박물관 등이 있는 아름다운 마을로 변모했다.
강제 이주자들은 척박한 환경을 이겨내며 삶의 터전을 스스로 개척했고, 그들의 후손들과 외지 전입자들로 구성된 마을사람들은 2004년에는 마을 이름도 시대의 아픔이 서려있는 ‘자활촌’에서 ‘바람꽃마을’로 변경했다. 2006년부터는 마을진입로 및 마을 안길 전 구간에 매실나무를 식재하여 매실 엑기스와 매실주 등 전통주 사업과 연계해 마을 부녀회의 공동사업으로 특화시켜 마을의 새로운 소득원으로 육성해 가고 있으며, 참게와 미꾸라지를 이용한 친환경 농법으로 항구적인 소득안정화 대책을 수립하여 실행해 나가고 있다.
또한 2007년에는 아름다운 설악산의 환경을 활용해 마을에 펜션업 투자를 유치하여 자연과 조화되는 숙박업을 시도함으로써 연간 2000여명의 관광객이 마을을 찾아 숙박을 하며 감자, 고구마 캐기 체험, 손 모내기 체험, 벼 베기 체험 등을 통해 농업소득을 올리는 효과를 거뒀다. 이러한 노력들이 결실을 거두면서 2008년에는 강원도 새 농어촌 건설운동 우수마을에 선정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지난 2월 중순에 이 곳 ‘바람꽃마을’로 사무실을 옮기고 조촐한 이전 개업식을 치렀다.
누가 명명했는지 참 이름이 예쁘다는 생각을 한 것도 잠시, 왜 마을이름을 바람꽃마을이라고 지었는지 곧 깨닫게 되었다. 봄기운이 돌면서부터 안 그래도 봄만 되면 속초에 엄청나게 불던 바람이 이곳에서는 유난히 더 심했다. 바람이 불지 않을 땐 더 없이 조용하고 평화로운 이곳은 바람이 불면 엄청나다. 또 마을 입구부터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매실나무들은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때부터 꽃들을 활짝 피우고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2014년부터 바뀐 도로명 주소는 우리말이 얼마나 예쁜지 알려준다.
동명동, 금호동, 조양동 이런 획일된 주소명이 아니라 새로운 도로명 주소는 속초에도 예쁜 이름을 지닌 길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골말길, 미리내길, 밤골길, 우렁길, 배움터길, 그리고 바람꽃마을길….
출근길부터 밝고 상쾌한 기분이 가득해진다. 가깝게 보이는 울산바위는 동해에서 떠오르는 태양 빛을 받아 붉은 빛을 띠며 우뚝 솟아있고, 평온한 날에는 새소리, 살랑거리는 바람소리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자활촌을 이렇게 아름다운 바람꽃마을로 바꾼 이들의 노고에 감사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전형배
데일리F&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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