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에서 22년째 산부인과 의사로 일하고 있는 속초 중앙산부인과의원 김균하 원장은 최근 출산에 관한 책 <평화로운 탄생>을 펴냈다. 김 원장이 자신의 의료 철학에 관해 쉽게 풀어 쓰고 홍학순 작가가 그림을 그려 의학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편하게 볼 수 있는 그림책으로 구성했다. 김 원장은 많은 이들에게 우리의 의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알기 쉽게 전달하고 이를 통해 의료 현실 개선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림책이라는 부드러운 형식을 취했다.
속초 조양동 중앙산부인과의원은 현재 지역 유일의 분만 가능 병원으로 세 명의 산부인과 전문의가 진료하며 5층 건물 전체가 병원 및 간호 시설로 운영되고 있다. 이 병원 입구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사람들을 맞는다. “자연을 담은 평화로운 탄생은 계속됩니다.” 병원 앞을 지나는 사람은 이 문구를 보고서 많고 많은 광고 문장 중 하나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중앙산부인과를 이용한 사람들의 의견을 확인해 보면 “자연을 담는다”는 문구는 사실에 가깝다. 그리고 김균하 원장의 말을 들어보면 그가 아이를 받을 때 억지스럽고 인위적인 개입을 자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울의 젊은 의사, 속초에 정착
서울중앙병원(현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하던 30대 중반의 전도유망한 젊은 의사는 1998년에 서울을 떠났다. 그는 대도시를 떠나 다른 삶을 살기 위해 속초를 선택했다. 속초에 별다른 연고가 없었지만 고성 현내면에서 공중보건의사로 근무한 바 있어 그곳과 가까운 속초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속초에 정착한 김 원장은 한때 강연 활동에 중점을 두기도 했다. 출산준비교실을 비롯해 갱년기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강연도 했고 중고생들을 위한 성교육도 활발하게 진행했었다. 강연은 본인이 직접 기획한 것이었고 따로 강연료를 받지 않았다. 강연을 위해 속초, 고성, 양양뿐만 아니라 인제, 양구까지도 달려갔다.
김 원장은 1999년 속초에서 병원을 개원한 이후 지금까지 자신만의 의료 방식을 다지기 위해 노력해왔다. 김 원장은 기존의 의료 관행에 의문을 품었고 바람직한 진료란 무엇인지 부단히 고민했다. 그는 의학도로서 제왕절개 수술을 처음 본 날 큰 충격을 받았었다. 양수가 터지고 피도 많이 나는 광경에 그는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많은 의사들이 경험이 쌓일수록 환자의 출혈에 무감해지는 경향이 있지만 김 원장은 출혈을 당연한 것으로 보지 않고 출혈을 최소화하는 방식을 찾으려 했다. 다년간의 노력은 성과로 이어져 김 원장은 자신만의 지혈법을 터득해 피가 튀어 어수선한 분위기가 아닌, 차분하고 조용한 진료를 해오고 있다. 김 원장은 마지막으로 수혈을 한 지가 5년이 됐다. 그것도 출산 과정에서 한 것이 아니라 출산 이후 다친 산모를 치료하기 위해서였다. 수혈을 하면 건강보험 수가를 높일 수 있지만 김 원장은 수혈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손쉬운 의료행위가 아닌 사람을 중심에 놓고 보면 출혈을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출혈이 적을수록 산모의 회복력이 좋기 때문이다.
평화롭고 자연스러운 출산 지향
김 원장은 프랑스 산과 의사인 프레드릭 르봐이예(Frederic Leboyer) 박사에게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르봐이예 분만’은 아기를 존중하는 분만법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방식은 아기에게 스트레스 없는 분만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밝은 조명과 고음 발생을 지양하고 아기가 중력과 호흡에 적응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김 원장은 분만 시 긴급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의학적 간섭을 최소화하는 방식을 추구하는데 여기에 ‘균하출산’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김 원장은 자신의 이름을 붙인 것에 부담을 느끼기도 하지만 본인의 방식을 의료인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한 방편으로 특이해 보이는 명칭을 붙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균하출산’ 방식을 보면 르봐이예 분만이 잘 반영돼 있다. 김 원장이 ‘Do’와 ‘Do not’으로 정리한 체크리스트에서 ‘평화로운 출산환경 조성’, ‘탄생 순간 아기 축복하기’는 르봐이예 박사의 지향과 궤를 같이 한다.
그리고 ‘균하출산’에는 르봐이예 분만에 더해 김 원장의 경험이 녹아 있다. ‘Do’ 체크리스트에서 ‘산모의 출혈 줄이기’, ‘Do not’ 체크리스트에서 ‘무통분만(척추마취)’, ‘강제분만(유도분만)’, ‘과도한 분만촉진제 사용’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아기 엄마들이 활동하는 인터넷 카페의 병원 이용 후기를 보면 중앙산부인과에서는 실제로 척추마취가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Do’ 체크리스트에서 ‘천천히 자연스러운 출산 유도’도 눈길이 간다. 김 원장이 진료 시 섣불리 서두르지 않는 것은 김 원장의 의료 철학에서 핵심이다. 서두르다 보면 분만촉진제를 과도하게 사용할 수밖에 없고 탯줄을 성급하게 제거해 산모가 더 많은 피를 흘리게 된다. 반면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을 충분히 관찰하고 대응하면서 과정이 자연스럽게 진행되도록 기다리면 아기와 산모를 잘 보호할 수 있다.
“저는 진료에 있어 고민이 들 때에는 환자가 제 가족이라면 어떻게 할까 생각합니다. 그러면 답이 명확해집니다.”
이렇게 말하는 김 원장의 표정에는 차분한 미소가 어려 있고 눈빛은 온화했다. 의료의 공공성을 강조하며 돈이 중심이 되지 않고 사람이 중심이 되는 의학을 말하는 이에게서 저 말의 진실성은 한층 더 강화된다. 이광호 객원기자 campin@hanmail.net
속초 중앙산부인과 김균하 원장.
김 원장이 최근 펴낸 ‘평화로운 탄생’.
김 원장의 ‘Do’ 및 ‘Do not’ 체크리스트.
중앙산부인과의 ‘균하스페이스’. 이곳은 병원의 문화공간으로 작품 전시를 통해 산모, 환자와 가족들에게 편안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