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세운동 1백주년과 광복 79년을 맞는 지금, 일본 아베정권의 경제규제로 그 어느 때보다 일제침략에 항거한 선혈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그동안 발굴되지 않았던 우리 지역의 독립운동가들의 행적을 국가기록원과 국사편찬위원회, 공훈전자사료관 등의 자료를 통해 찾아봤다.
심동진의 행적이 적혀있는 일본경찰 문서.
독립의식 고취 발언한
도천면 서당교사 심동진
강원도 양양군 도천면 거주 서당교사 심동진(東鎭當, 당시 67세)은 1918년 4월 20일 한일합병 때 은사금을 거부한 경기도 양평의 유생 이근원의 장례식에서 항일 독립의식을 고취하는 조사를 낭독했다. 심동진은 친교가 있는 이근원을 추모하는 조사를 통해 “이근원 선생은 임금께 위세와 무력에 굴복하면 종사는 이미 멸하고 국가가 쇠망한다며 외적을 배척하라고 아뢰었다”며, “의병장 최익현은 동해에 유폐되어 죽었고, 의병장 유인석은 간도에서 객사했지만, 홀로 선생이 있어 선현의 유지를 전해왔다”고 말했다. 심동진은 “선생의 손에 의해 국토를 잃어버린 한국의 부흥이 성취될 것을 기대했는데, 선생의 죽음과 함께 그 희망이 수포로 돌아갔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심동진이 일본의 침략에 항거한 유림 출신 의병장 최익현과 유인석을 거론하면서 독립운동의 뜻을 이어받자는 취지로 조사를 낭독한 사실을 발견한 양양경찰서는 그를 취조하여 보안법 위반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1918년 4월 19일 징역 4개월을 선고 처분했다.
심동진은 상도문 출신 유학자 매곡 오윤환이 쓴 <매곡일기>에도 심면와(沈勉窩), 면와선생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1921년 6월 22일자 매곡 일기에 강정(江亭) 면와(勉窩) 선생이 별세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강정은 강원도 고성군 안창면(고성면으로 흡수)에 있던 옛 마을 이름이다.
만세운동에 참가했던 노순열의 심문조서.
서울 만세운동에 참가한
양양면 월리(?) 노순열
양양 출신 노순열(盧順烈)은 1919년 3.1 만세운동에 참가했다가 일경에 체포되었으며, 이후 여성운동에도 적극 나선 여성운동가이다.
1900년 강원도 양양군 양양면 월동(月洞, 월리로 추정)에서 출생해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에 입학한 노순열은 민족대표 33인의 한 명인 남감리파 박희도 목사의 지도로 운영된 비밀서클 활동을 함께 했다. 서울에서 만세운동이 시작되자 노순열도 경성여자고등학교 여학생들과 함께 만세운동에 참가했다가 일경에 체포되었다. 체포 후 3월 10일 종로경찰서에서 검사로부터 피의자 심문을 받았지만 처벌은 받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노순열은 1920년부터 22년까지 울진과 문막에서 공립보통학교 교사생활을 했다. 이후 교사를 그만두고 서울로 상경해 여성운동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1925년 3월 결혼 후 원주에서 생활했다. 1927년 원주노동회 주최 강연회에서 ‘노동 농민의 단결은 무엇으로’라는 제목으로 연설했다. 1931년 1월 13일 창립대회를 가진 원주부인소비조합의 이사장으로 활동하였다. 원주부인소비조합은 창립 당시 조합원이 2백여명이었다.
노순열은 양양 출신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로 지난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된 노상렬의 여동생으로 확인된다. 양양 출신으로 현산학교를 다니다가 원산으로 이주한 노상렬은 중국 훈춘과 러시아 일대에서 독립운동을 펼쳤다. 1923년부터 2년간 모스크바 동방노력자대학을 수학하고, 귀국 후 사회주의 독립운동을 펼치다가 일경에 체포되었다.
한편, 1926년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주의 여성운동단체인 조선여성동우회에 주세죽, 조원숙 등과 함께 신입 집행위원으로 선임된 노순열도 같은 인물이 아닌가 싶다.
유창순 수형인 명부.
만세운동 즈음 4개월 옥고 치른
도천면 속초리 유창순
국가기록원의 독립운동 수형인 명부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지역의 독립운동가, 유창순(劉昌淳, 당시 29세). 본적은 전북 익산군 이리읍 이리 384번지, 주소는 강원도 양양군 도천면 속초리 100번지. 1919년 5월 21일 함흥지방법원 강릉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선고받고 복역한 걸로 확인된다.
당시는 만세운동과 관련해 구속된 독립운동가를 주로 보안법 위반으로 처벌했다. 수형인 명부 기록 이외에는 다른 기록이 전혀 확인되지 않는다.
박주호의 함흥폭탄사건 재판 내용을 보도한 동아일보 1921년 7월 23일자 기사.
청진경찰서 폭파와 친일파 처단 기도한
현북면 출신 박주호
우리 지역출신 중에도 항일 무장투쟁을 벌인 독립투사가 있다. 1920년 9월 양양군 현북면 어장리(漁場里, 장리?) 출신 박주호(당시 20세)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입국하여 함경북도 청진경찰서를 폭파하고 친일파를 처단하려고 했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일경에 체포되고 말았다. 그로인해 박주호는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0년 11월 30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의 판결문에 나오는 박주호의 진술기록에 그의 독립운동 행적이 나온다.
“나는 원래 조선의 독립을 요망하여 오던 바 1920년(대정9년) 9월 중에 블라디보스토크(浦塩)의 김정하 집에서 나와 김세권 및 정무봉이 김정하로부터 폭탄 6개를 받았다. 이를 기선을 타고 청진으로 갖고 와서 그 곳 경찰서, 신암동의 순사파출소, 명월루, 황종국 형사, 순사 조을선과 남윤택 등에게 던지라고 지시를 받았다. 이들은 조선인이면서 관리로 되고, 또 조선독립을 방해함으로 살해하여야 한다. 또 경찰관서에 던지면 대소동이 일어나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는 데 편리하다고 하였다.
우리 3명은 배에 타고 폭탄을 청진까지 가지고 왔으나 정무봉이 밤에 육지로 옮긴다고 배에 남겨 놓고 우리 3명만 상륙했다. 기왕에 김정하로부터 우리 3명 밖에 신암동의 청년을 동지로 끌어넣어 함께 폭탄을 던지라는 말을 듣고 왔으므로 김창주 집에서 청년 6명과 회합하고 아직 그 의논이 되기 이전에 순사에게 체포되었다.”
박주호는 거사 이전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상해임시정부(가정부)와 연락을 취하며 조선독립운동을 위해 자금모집을 계획하던 김정하로부터 상해에 임시정부가 수립되어 있으니 조선독립운동을 위해 오라는 편지를 받고 블라디보스토크로 왔다고 했다.
박주호, 정무봉 두 명은 1920년 9월 24일경 체포되어 1, 2심에서 10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상고했으나 기각 당했다. 두 사람은 1927년 11월 형기를 마치고 함께 출소했다. 함께 거사를 도모한 정무봉(전남 강진 출생)은 지난 2011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하지만 독립투사 박주호의 존재는 고향 양양에도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11면에 이어짐▶
김형규의 행적이 적힌 일본경찰 문서.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보고서 펴낸
도천면 부월리 김형규
관동대지진 당시 재일한국인 학살의 참상을 책자를 통해 알려낸 이가 지금의 속초시 조양동인 양양군 도천면 부월리 출신 김형규(金瀅奎)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1923년 1월 일본 도쿄를 비롯한 관동지역에 일어난 대지진으로 수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더구나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 경찰의 고의적인 허위사실 유포와 방조로 자경단에 의해 재일한국인과 사회주의자 6천여명(추정)이 무참히 학살되었다. 그러나 일본 당국은 학살 진상을 철저히 은폐하고 책임을 외면했다. 다음해 1월 중국 북경에서 김건(金健)이라는 이름으로 ‘학살(虐殺)’이라는 제목의 책자가 발간되어 우리 동포사회와 국제사회에 관동대지진의 학살 참상이 널리 알려졌다. 이 책자는 재일조선인유학생회에서 김건을 대표자로 파견하여 작성한 ‘도쿄지진 조선인 학살보고서’라고 한다.
책자의 발간에 당황한 일본 외무성은 저자 김건(金健)을 찾으려고 긴급히 조선총독부 경무국에 요청했다. ‘김건’이라는 이름을 찾다보니, 평안북도 평원군 서화면 중흥리에 사는 엉뚱한 ‘김건’을 찾기도 했다.
1924년 4월 18일 조선총독부 경무국은 조선 전 지역을 뒤져 김건의 신원을 찾아 ‘虐殺이라는 題目의 冊子 執筆者에 관한 件’이라는 문서를 외무성에 보냈다. 이 문서에서는 저자 김건이 강원도 양양군 도천면 부월리 113번지 출신인 김형규(金瀅奎, 당시 28세)임을 분명히 했다. 문서를 보면 일본 경찰은 전국 방방을 뒤져 김형규의 행적을 낱낱이 파악했음이 확인된다.
문서는 김형규가 성격이 음험하고 소행이 불량하다고 악평으로 시작한다. 김형규는 1915년 4월 서울 보성법률상업학교를 입학했다가 학비가 없어 중퇴하고 낙향해서 가업에 종사했으며, 1918년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청 서기로 근무했지만 다음해인 1919년 7월 병으로 퇴직했다. 다시 1920년 원산부에서 대서업을 개업했다가 폐업했고, 1921년 6월 조선총독부 도경부 함경남도 단천경찰서에 근무했으나 1922년 11월 다시 병으로 퇴직했다. 이후 같은 지역에서 사립학교장으로 취직했다가 1923년 3월 퇴직하고, 그해 5월 일본으로 도항, 재동경사립일○영어학교에 입학해 9월 1일 관동대지진을 직접 겪었다. 이후 서울 낙원동 여인숙에서 김지철과 머물다가 중국 북경으로 넘어갔다.
지난 2013년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와 일본 교토 리츠메이칸대학교 코리아연구센터와 함께 개최한 ‘관동대지진 한인학살 90주년’ 국제학술회의에서 이명화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책임연구원은 “관동대학살을 처음 알린 김건(金健)이 바로 김형규(金瀅奎)라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발표했다.
박성녀 서대문형무소 수감카드.
일제에 항거하는 격문 배포한
도천면 내물치리 박성녀
우리나라 최초의 좌우합작 여성단체인 근우회의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일제의 침략에 맞서 노동자, 학생들이 맞서 싸울 것을 호소하는 격문과 포스터를 서울 거리에 내건 속초 출신의 여성운동가가 있다.
박성녀(朴姓女), 다른 이름으로 박문성(朴文星). 본적과 출생지는 양양군 도천면 내물치리 127번지이다. 내물치리는 속초 해맞이공원 서편에 자리잡은 전통부락이다.
박성녀는 1911년 10월 16일생으로 거사를 벌인 1930년 당시 19세의 나이였다. 근우회 강릉지회 회원으로 박문성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박성녀는 1929년 12월 30일 근우회 경성지회를 방문했다가 종로경찰서 고등계 형사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 이에 근우회 본부 차원에서 긴급회의를 열고 경찰서장과 고등계 주임에 엄중 항의방문하고 조치를 요청했다. 이 사건에도 불구하고 박성녀는 서울에 머물면서 1930년 5월 1일 새벽 3시경 미리 동지들과 인쇄해 준비한 격문과 포스터를 서울 시내 거리에 살포하고 부착했다.
격문과 포스터는 5월 1일 메이데이를 맞아 조선의 독립과 노동자 농민정부의 수립을 위해 총독정치를 파괴하자고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일제의 폭압에 맞서 학생들은 휴학으로, 노동자는 파업으로 맞서 싸우자고 호소했다. 이러한 내용을 게재한 격문과 포스터를 서울 시내 학교 앞 등에 살포, 부착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었다. 1930년 12월 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치안유지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김성녀 서대문형무소 수감카드.
천황숭배와 신사참배 거부한
손양면 오산리 김성녀(김경희)
양양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 말 여성의 몸으로 일제의 침략전쟁과 신사참배를 거부해 2년 6개월의 옥고를 치룬 분이 있다. 김성녀(金姓女), 다른 이름으로는 김경희(金瓊熙). 본적은 양양군 손양면 오산리 102번지, 출생지는 양양군 양양면 남문리이다.
서울 충신동에 살던 김성녀는 일제의 궁성 요배와 신사 참배를 우상숭배라고 거부하는 여호와의 증인 신자 38명의 한 사람으로 체포되었다. 1942년 7월 14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어 옥고를 치르고 1944년 8월 4일에 출소했다.
김성녀는 1895년생으로 재판 당시 나이는 46세였다. 김성녀는 1922년 뒤늦게 개성 기독교 감리교파에서 운영하는 미리흠여학교에 입학해 졸업하고, 1931년 가을 홍천의 정명보통학교와 춘천 동명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그만두고 인천에서 재봉업을 경영했다. 김성녀는 1933년 여호와의 증인 신자가 되어 조선 각지와 만주국에서 여호와의 증인 책자를 판매하고 교리를 전파하며 궁성요배, 신사참배는 우상숭배라고 말했다.
1939년 1일 소위 ‘등대사사건’으로 체포된 여호와의 증인 평신도 38명 중의 한 사람. 조선의 여호와의 증인 교인들은 일제의 침략전쟁을 거부하는 사상을 유포하고, 천황숭배와 신사참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모두 구속 처벌받았다. 일본에서 여호와 증인이 군 입대를 거부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를 빌미로 일본과 대만, 조선의 여호와 증인을 반역행위자로 일제히 체포해 중형을 선고했다. 남자들은 최고 7년형을 선고받아 해방 때까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종교적 신념에 따른 행동이라도 일제의 침략전쟁을 거부한 그분들의 행동은 높이 살만한 일이었다. 1940년대 당시 우리나라 종교계는 자의든 타의든 거의 대부분 일제에 협력하던 때였다.
엄경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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