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사태로 어수선한 가운데 지역 농가는 또 다른 전염병에 따른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고성 내 돼지축산 농가들은 아프리카돼지열병(ASF)으로 인한 돼지 이동 제한에 따라 축산비용이 과다하게 늘고 일이 번거로워졌다며 울상을 짓고 있다.
지난해 9월 국내 농가에서 처음으로 발생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작년 10월 말 이후 멧돼지 사냥, 농가 돼지 살처분 등을 거치며 잠잠해지는 듯했지만 돼지농가의 호소에 따르면 방역에 따른 문제점은 수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작년 9월 돼지열병 발생 후 농림축산식품부는 방역 대상 지역을 경기 북부, 강원 북부, 경기 남부, 강원 남부로 나눈 4대 중점 관리 권역을 설정했고 도축 등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권역을 벗어나는 돼지와 분뇨의 이동을 강력하게 통제하고 있는 중이다. 이에 따라 고성의 농가들은 모돈 처리를 비롯해 돼지 판매, 사료 공급 등에 있어 큰 애로를 겪고 있다. 고성은 4대 권역 중 강원 북부로 분류돼 있다.
고성 간성읍 해상리에서 돼지 3,000마리를 키우는 윤문길 씨는 돼지열병 방역대책에 따라 돼지들의 이동제한이 지속되면서 모돈을 처리할 시설을 찾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윤 씨에 따르면 더 이상 새끼 돼지를 낳기 힘든 모돈은 적기에 도태시켜야지 관리비를 줄일 수 있는데 강원 북부권에는 돼지 도축 시설이 없는 실정이다.
고성 농가의 모돈 처리는 현재 농식품부의 방침에 따라 경기도 남양주의 한 도축업체에서 가능하다. 그러나 경기도 동물방역위생과 담당자에 따르면 해당 업체는 고성 농가의 도태 대상 모돈이 많지 않아 이윤이 남지 않는다며 처리를 꺼리고 있는 상황이다. 경기도 담당과에서는 해당 업체에 수차례 협조를 구하고 있지만 민간 업체라 더 이상의 조치는 쉽지 않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고성 양돈농가들은 해당 도축업체가 모돈 처리를 하지 않는 것에 경기도가 별다른 제재조치를 하지 않는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이런 상황에서 윤 씨는 도태 대상 돼지를 처리하지 못하고 계속 키우게 되면서 비용이 크게 늘었다. 윤 씨 농장의 경우 모돈 한 마리당 1일 4천원 정도의 사료를 먹고 있는데 도태 대상 모돈은 20마리 정도이다. 하루 8만원의 비용이 발생하는데 이런 상황이 몇 달간 지속되면서 부담을 느낄 정도로 비용이 늘었다. 윤 씨는 자신은 그나마 괜찮은 편이라며 어떤 이는 도태 대상 모돈의 사료값만 하루에 20만원 이상 드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죽왕면 공현진리에서 흑돼지를 키우는 김영수 씨는 “기존엔 모돈처리업자가 있어서 이 업자에게 돼지를 넘겼는데 4대 권역 설정 이후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현재 고성은 4대 권역 중 강원 북부권으로 묶여 있는데 비육돈 도축은 강원 남부권으로 분류된 홍천에서 하고 있다. 비육돈 도축이 가능한 곳이 북부에 없어서 홍천을 강원 북부 권역 양돈농가가 이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런데 도축이 홍천 외에는 막히면서 기존에 도축업자들이 자율적으로 업체를 정해서 하던 방식이 불가능해졌다. 또 도축한 돼지는 타 지역으로 판매할 수 없어 이에 대해서도 양돈농가의 불만이 크다. 타 지역에서 원하는 모돈을 받는 것이 불가능해진 점도 불만사항이다. 이와 함께 웅돈의 정액과 사료를 받는 것도 번거롭게 됐다. 돼지 정액과 사료를 실은 차량이 농장에 출입할 수 없게 돼 김영수 씨는 공현진 농장에서 봉포까지 차를 몰고 가서 이를 인수해오고 있다. 돼지 정액은 속초의 슈퍼마켓에 보관하게 한 다음 받아오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돼지 정액이 적절한 온도에 보관되지 못해 품질이 떨어져 돼지 임신 확률에도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이광호 기자
고성군이 지난해 한 축산농가에서 아프리카 돼지열병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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