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이나 지금이나 TV나 라디오의 퀴즈 프로그램들을 보거나 들을 때면 참가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정답!”하고 답을 외친다. 퀴즈에 나오는 문제의 답은 정해져 있고, 참가자들은 그 답을 말하면 된다. 어려운 문제들도 있고 쉬운 문제들도 있으나 퀴즈 프로그램에 나오는 문제들은 하나같이 정답이 정해져 있다. 그런데 문득 삶에도 정답이란 게 존재할까? 라는 생각에 잠기게 된다. 내 인생의 정답은 누가 정해 놓은 것일까? 라는 생각에도.
연말이 되니까 코로나로 어수선한 이 시국에도 각종 단체나 독지가들이 불우이웃돕기 성금이나 장학금을 지급하는 장면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가끔씩은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학생들이 커서 사회적인 부나 명예 등을 성취한 후, 다시 도움을 주었던 사회에 그 부를 환원하는 훈훈한 광경을 지켜보기도 했고 여러 사람들의 선한 의도가 사회에 선순환을 일으키는 과정을 체험하기도 했다. 물론 아이러니하게도 때로는 불순한 의도가 선량한 결과물을 가져올 때도 있고, 선한 의도가 결과적으로 의도치 않은 악순환을 일으킬 때도 있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적성찾기 국민실천본부 강원지회’에서는 해마다 크리스마스 날에 치르는 행사가 하나 있다. ‘달콤한 책 한조각 나누기’라는 행사인데 관내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서점을 한 곳 정해서 그곳에 있는 책들 중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한 권씩 고르면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제공해 주는 행사이다. 올해는 아쉽게도 코로나로 인해 이 행사를 진행할 수 없게 되었지만 지회의 빠듯한 재정 여건에도 불구하고 이 행사를 지속하려고 하는 이유는 그때 그곳에서 얻게 된 책 한 권이 누군가에게는 삶의 지표가 되거나 인생의 변환점이 될 수도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때로는 누군가의 지지와 격려가 자신의 삶의 지표가 되기도 한다. 필자가 고등학생이던 시절, 다른 과목은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수학은 곧잘 하던 한 친구에게 수학선생님이 해 주셨던 그 말, “자넨 수학을 참 잘하는군. 나중에 이쪽 길로 가보는 건 어때?”라는 한마디 격려가 그를 현재의 수학 선생님으로 만든 일화도 오래도록 나의 뇌리에 남아있다.
어느 날엔가 고등학생이 된 아들이 학교에서 내준 과제물인 듯 자기 자신에 대한 ‘SWOT분석’이라는 것을 해 놓은 걸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런데 자신의 S(strength, 강점)란에 적혀있는 몇 가지 단어들 중에는 ‘부모님의 적극적인 지지와 격려’가 있었다. 그것을 보고 나니 왠지 아들이 아내와 나를 어떻게 느끼는지를 알게 된 듯 하여 입가에 미소가 슬며시 지어졌다. 그날 하교한 아들을 대하는 나의 말투는 평소보다 훨씬 더 부드러워졌음은 더 말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 공부에서 꼭 1등이 아니어도, 남들이 말하는 좋은 대학에 합격하지 못해도 괜찮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말이 있듯이, 삶의 목표가 뚜렷하다면 조금 천천히 가도 또 조금 돌아가더라도 괜찮은 것 아닐까? 혹 삶의 목표가 뚜렷하지 못했다면 지금부터라도 하나하나 자신의 지표를 만들어 나가면 되는 것 아닐까?
퀴즈와는 달리 인생에는 정답이 없을 수도 있다. 그리고 누군가 이미 정해 놓은 정답을 향해가는 길은 내 길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 각자가 걷는 수천, 수만 갈래의 길에는 또 그 만큼의 해답들이 있지 않을까? 정답이 아니라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 그게 인생일지도 모르겠다.
또 한해를 마감하게 되는 요즘, 나름 열심히 살기는 했으나 별로 이룬 것 없이 보낸 한해를 뒤돌아보다가 문득 드는 생각들이다.
전형배
데일리F&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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