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1. 동해일보, 62년만에 속초로 돌아오다
2. 동해일보에 실린 수복지구 이야기 1
3. 동해일보에 실린 수복지구 이야기 2
4. 동해일보를 만든 사람들
<동해일보>는 수복지구 유일의 언론기관으로 1952년 4월 15일 신문사가 설립되어 이틀 후인 4월 17일 창간호 5백부를 타블로이드 등사판으로 제작해 배포했다. 신문사 사옥은 당시 속초시내 중심이었던 인심의원(속초시 중앙로 199)자리였다. 임직원이 10여명일 정도로 작지 않은 회사였다.
초대사장은 김진익(당시 대포초교 교장), 총무국장 박천복, 편집국장 남상갑, 기자는 이경수, 윤상근, 엄명덕, 박찬규, 나병하, 조대길 등이며 등사판 필생(筆生)은 조상준이 맡았다.
<동해일보>는 1953년 6월 18일자부터 활자인쇄로 변경했고, 그해 8월 5일 주식회사로 재창립했다. 이때 임직원은 회장 한치응, 사장 박태송, 부사장 겸 편집국장 정두석, 업무국장 김건기, 편집부장 한준석, 경리 전상희 등이며, 속초지사장을 김종록씨가 맡았다. 이후 다시 조직이 개편되어 사장 박태송, 부사장 겸 업무국장 방효근, 편집국장 임선봉, 편집부장 윤상근, 기자 나병하, 엄명덕, 김재익, 이창호, 최윤일, 인쇄소 공장장에 김원배씨가 근무했다. <동해일보>는 계속되는 경영난으로 1955년 3월 공보처의 발행 허가를 받지 못해 결국 폐간되었다.
이후 박태송 사장은 휴간 중인 <강릉일보>를 인수해 1955년 속간했으나, 당초 약속받은 강릉지역 유지들의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2년만인 1957년 폐간했다.
박태송 사장, 창간 때부터 자금 지원
<동해일보>를 경영한 박태송 사장은 함북 경성 출신으로 한국전쟁 중 월남해 양양에 정착, 북진양조장을 경영한 사업가였다. 동해일보 창간 때부터 자금을 지원했으며, 주식회사로 재창립할 때 출자를 주도하고 회사 경영을 떠맡았다. 이후 양양관광협회장을 역임했으며 국회의원 선거에도 출마했다.
<동해일보> 부사장 겸 편집국장에 이름을 올린 정두석씨는 당시 낙산사 주지로 미8군과 1군단의 도움으로 낙산사 경내에 보육원을 설립해 90여명의 고아들을 양육한 것으로 확인된다. 기록에 의하면 정씨는 건봉사로 출가하여 일본에 불교 유학을 다녀왔으며 1941~1945년에 낙산사 주지를 했다. 1961년 동국대학교 총장을 지냈으며, 이후 태고종 종정까지 지낸 불교계 큰 인물이다. <동해일보>에는 출자와 함께 이름만 올리고 실제 근무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기자로 근무했던 나병하씨는 우리나라 언론계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평남 평원 출신으로 만주 동광중학교를 졸업해 기자생활을 했으며, 한국전쟁 당시 월남해 종군기자로 근무했다. <동해일보> 근무 당시에도 기사 쓰는 법을 다른 기자들에게 가르칠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나씨는 이후 1955년 <대동신문사>를 거쳐 1966년 <매일경제신문> 창간멤버로 입사해 편집국장, 전무를 거쳐 사장까지 오른 인물로, 언론계에서 입지전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동해일보> 기자로 근무할 때는 대포항 근처 작은 오막살이에 처자식과 함께 어렵게 살았다고 한다.
업무국장을 맡았던 김건기씨는 양양 정암리 출신으로 양양농민조합 활동으로 옥고를 치른 독립유공자 김사만씨의 아들이며, 낙천양조장 김용기씨 동생이다. <동해일보>를 그만두고 나서는 거진에서 양조장 운영으로 사업가로 성공해 거진중, 거진실업고와 거진여자상고 설립을 주도했다. 1988년에는 재경속초시민회 초대 부회장을 맡기도 했다.
김건기씨는 2006년 발간한 회고록 <연산일기>를 통해 <동해일보> 재직 시절에 대해 기록을 남겼다. <동해일보>를 주식회사로 재창립할 때 사장 박태송씨가 1천만원, 부사장 정두석씨가 5백만원, 본인이 5백만원을 출자를 했다고 한다. 당시 1군단 민사처에서 신문사를 적극 후원했으나 수복지구 지역이 좁고 인구도 많지 않아 신문사 경영이 어려웠다고 한다. 김씨는 서투른 솜씨에 교정도 잘 보지 않아 오자가 나면 헌병대에 불려 다니는 것도 부지기수였고, 직원들이 잘못해 HID 등에 끌려가면 업무국장인 본인이 찾아가 사과하고 수습하러 다니는 게 일상이었다고 회고했다. 신문은 유료로 판매한다고 했으나 잘 팔리지 않고 수금도 되지 않고 광고도 크게 있을 리 없었다고 한다.
외부필진으로 칼럼과 시론을 기고한 안춘근 중위는 강원도 고성군 남애리 출신으로 우리나라 출판학과 서지학의 문을 연 인물이다. 1951년 육군 통역장교 중위로 임관되어 속초지역에서 근무하면서 <동해일보>와 인연을 맺었다. 1955년 예편해 당시 우리나라 최고의 출판사인 을유문화사에 입사해서 주간까지 올랐다. 우리나라 주요대학에서 출판학을 강의하고, 1969년 한국출판학회 창립을 주도했다. 고서 수집에도 남다른 관심을 가져 한국고서동우회를 창립했으며, 1979년에는 수집 장서 1만권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 기증했다. 출판학과 서지학 분야로 저서를 많이 남겼고 수필가로도 활동했다. 결정적으로 안춘근 중위는 자신의 글이 실린 <동해일보> 신문을 평생 간직해 세상에 빛을 보게 했다.
경리 전상희·통신기자 손건호씨 생존
창간 때 총무국장을 맡은 박천복씨는 고성군 문암 출신이며, 속초 출신 페루여자배구 국가대표 감독을 지낸 박만복씨의 친형이다.
속초지사장은 맡은 김종록씨는 실제 활동은 크게 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역에서 <동아일보> 지국장을 맡았으며, 속초문화원장을 역임하면서 지역문화 창달에 크게 기여했다.
엄명덕 기자는 이후 지역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였으며, 김재익 기자는 이후 <강원일보>로 옮겨 사회부장을 지냈다고 한다. 조대길은 고성 토성면이 고향으로 성균관대 출신이었다고 한다.
당시 <동해일보> 출신으로 경리담당 전상희(92세)씨와 통신기자 손건호씨(양양군 강현면) 두 사람이 살아있다. 전상희씨는 속초 대포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때 간장공장을 하는 부모를 따라 함북 청진으로 이주해 학교를 다녔다. 이후 함북도청 학무과에서 근무하다가 징병에 끌려갔다가 해방을 맞아서 다시 속초로 돌아왔다. <동해일보> 창립 때부터 폐간될 때까지 경리를 맡았으며, 박태송 사장이 <강릉일보>를 인수할 때도 윤상근, 나병하 기자와 함께 강릉에 가서 근무하기도 했다. 90살이 넘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당시 <동해일보사> 사람들의 이름을 한자까지 기억하고 그 행적을 소상히 기억하고 있다.
전쟁의 상흔이 아물지 않은 1950년대 초반 속초. 수복지구라는 황폐한 환경 속에서도 일간신문 발간으로 지역주민들에게 복구의 힘을 북돋워준 동해일보 사람들. 60여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 뜨거운 열정의 온도가 느껴진다. 속초는 그들의 열정이 만들어 낸 작품이다.
엄경선 설악닷컴 대표
지난해 11월 20일 동해일보 사옥 자리였던 속초 인심의원 앞에서 동해일보 발굴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왼쪽으로부터 박경하(중앙대 역사학과 교수, 박태송 사장 친자), 이종국(전 대전과기대 교수, 안춘근 선생 연구), 전상희(동해일보 근무), 김충호(충정장학회 이사장, 박태송 사장 양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