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진로교육원이 진행하는 ‘휴먼 북(Human Book)’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3월이 바빠지긴 했지만 나름 즐겁다. 강원도 지역 중학교 2~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직업군에 대한 소개와 개별적인 상담을 통해 학생들이 진로를 선택하는데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으로 지난해부터 우리 지역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직업군들이 멘토로 참여하고 있다. 일상의 바쁜 일정들을 쪼개어 저녁시간을 기꺼이 할애하는 그들의 수고와 열정 덕분에 우리 아이들이 꿈을 갖고 진로를 선택하는데 작게나마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 하나만으로도 즐거움이 된다.
내가 상담하는 전문분야는 ‘영어교육, 국제교류’ 등이다.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2시간 정도 진행되는 학생들과의 만남과 대화에서 오히려 내가 새롭게 느끼고 놀라는 부분이 적지 않다. 저녁 식사를 막 마치고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는 시간이라 힘들고 졸음이 올 법한데도 또릿한 눈빛과 사뭇 진지한 태도로 아이들이 던지는 질문과 생각들을 접하다 보면 내가 보낸 중학교 시절과는 많은 다른 점들을 느낄 수 있다. 농부, 임업가, 교육자, 수학연구가…. 다양한 진로와 꿈을 지닌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새로움과 놀라움이 생긴다. “선생님은 중학생 때 꿈이 무엇이었어요?” 한 학생의 돌발 질문에 당황하며 중학교 시절 꿈이 무엇이었나를 기억해내려 애써보았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중학교 시절, 60명 정도의 남학생이 한 반에 몰려 있어 늘 소란스럽고 분주했다. 내가 다닌 설악중학교는 학교 규칙이 머리를 깨끗하게(?) 밀고 계절별로 검은 교복과 하얀 교복을 번갈아 입고 다녀야 했다. 머리카락이 조금이라도 길거나 교복 단추가 떨어지거나 하면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선생님에게 혼쭐이 났었다. 수업시간에 문제풀이를 못하거나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아도 마찬가지였다. 반공이데올로기 수업의 일환으로 잘 알지도 못하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비판해야했고, 종종 반공 궐기대회라 하여 머리와 어깨에 띠를 두르고 단체로 구호를 외쳐가며 거리행진을 해야 했다. 중3때는 비평준화인 인문계 고등학교를 진학하기 위해서 밤까지 학교에 남아 공부를 해야 했고, 성적이 학생 개개인을 평가하는 주요 척도였다. 아이들의 장래 희망은 크게 두 가지였다. 성적이 좋은 몇 몇 아이들은 검사, 의사, 과학자 같은 소위 ‘개천의 용’이 되기를 본인이 아닌 부모들이 원하였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없음’이나 ‘모름’이었다. 만약 그 당시 농부, 요리사, 임업가 등을 장래 희망 직업군으로 말한 아이들이 있었다면 선생님이나 부모님께 당장 문제아로 낙인 찍혔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와 6.25 등 혼란과 어려운 시기를 겪은 부모들로서는 자식들이 당신들과는 달리 ‘안정된 삶을 살았으면… 힘이 없어 사회에서 차별 받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에 자식이 공부를 잘해 출세하기를 원했겠지만, 공부만이 아닌 학생들의 인성과 적성에 맞는 진로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관심을 가졌더라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특정집단이나 개인의 욕심으로 인해 생겨난 사회의 혼란이 줄어들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인용 결정으로 인해 교육에 있어서도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5월 조기대선을 앞두고 여론조사에서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몇 몇 대통령 후보군들의 공통점 중 하나가 교육개혁이다. ‘작은 학교 통·폐합, 무상교육, 누리과정 예산, 국정 역사교과서, 대학 구조조정’ 등 지난 정부에서 논란과 갈등을 키워온 교육 현안들이 다음 정권에서는 우선적으로 해결되기를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교육부가 가지고 있는 권한을 축소하고 모든 교육 주체들과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국가교육위원회’를 설치하여 지속가능한 국가교육정책을 설계하며, 특히, 유·초·중등 교육은 기존 교육부에서 시·도 교육청으로 권한을 일임해 획일화되고 학력 위주의 교육정책을 지양하고 ‘모두를 위한 교육, 학생들의 인·적성을 살릴 수 있는 교육’이 우리 교육 현장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교육 정책의 순기능적 변화와 개혁을 기대한다.
양용석
강원도교직원수련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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