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의 봄날은 벚꽃에 취하고, 쌈채로 즐거우며, 딸기로 달콤하다. ‘설악벚꽃축제’(4월8~9일), ‘하도문쌈채축제’(4월15~16일), ‘응골딸기축제’(4월22~23일)가 봄의 전령사이자 지역의 대표 마을축제로 정착했기 때문이다. 지난 2009년 시작한 동갑내기 축제는 10여년이 지난 지금 어떤 성공요인과 불안요인을 갖고 있을까? 마을축제에 관여하는 마을리더에게 그 이야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주>
“우리 벚꽃 축제는 아름다운 풍경도 있지만, 인문학도 있기 때문에 인기가 있어요”. 벚꽃축제에 대해 묻자 ‘인문학’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문혁주(벚꽃축제추진위원회 총괄팀장) 어르신의 진단이다. 단순히 벚꽃에만 의존하지 않고, 마을의 자원을 적극 활용한 점이 중요했다고 말한다.
설악벚꽃축제가 개최되는 상도문 마을은 설악산 입구에 위치한 마을로 속초에서는 제일 오래된 마을이다. 속초도문농요(강원도 무형문화재 20호), 구한말 유학자인 매곡 오윤환의 정신을 면면히 이어오고 있다. 송림에 둘러싸인 학무정과 대문 없는 마을의 돌담길도 특색있는 자원이다. 4월에 잠깐 피었다지는 벚꽃은 구색처럼 보일 정도이다. 특화 마을자원은 없지만 옥수수나 떡 등 마을의 특산물도 풍부하다. 벚꽃축제는 농경문화의 전통과 특유의 마을자원이 아름다운 풍경과 어우러져 4월의 대표축제로 성장할 수 있었다.
마을 주민 절반가량 직간접 참여
아무리 자원이 좋아도 축제는 주민이 하는 것이다. 특히, 벚꽃축제는 소득증대 효과를 위한 농촌형 마을축제와는 성격이 다르다. 마을주민의 노령화 추세를 생각하면 축제의 지속가능성은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2009년 첫 취임부터 축제를 이끌고 있는 오세권 통장(벚꽃축제추진위원회 운영위원장)은 오히려 그 점이 축제의 성공이라고 말한다. 축제의 목적을 소득증대에만 맞추면 마을주민의 자발적인 참여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축제 조직을 보니 이해가 되었다. 공예품이나 체험은 마을의 노인회가 맡는다. 겨울철 농한기에 짚풀공예 등을 하며 준비한다. 50대에서 60대 초반의 청년회는 직장 때문에 행사 전후 5일 정도만 참여한다. 뒷자리 정리 등 궂은 일 전담이다. 먹거리는 부녀회 몫이다. 이틀 행사를 위해 마을 주민의 절반 정도인 100여명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한다. 단순히 소득증대만을 위했다면 힘든 일이다.
마을주민의 자발적 참여와 함께 중요한 것은 마을자원의 활용이다. “우리 마을은 여름이면 물놀이장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와요. 이 물놀이장은 원래 폐양식장이었는데, 2009년 벚꽃축제를 준비하면서 민물고기 맨손잡기 체험 프로그램을 위해 새로 리모델링했죠.” 사라질뻔한 물놀이장이 축제 때문에 부활했고, 축제 이후에도 마을의 대표 상품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축제 프로그램도 계속 변화하고 있다. 피리만들기나 목공예, 짚풀공예같은 농촌체험, 마을저수지를 활용한 도하체험 등은 마을의 특성을 활용한 체험이다. 모자사생대회나 마을 보물찾기같은 아이디어는 속초시민의 참여가 늘어나면서 마을주민이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보통 3월부터 기획회의를 3번 정도 합니다. 일단 마을에서 준비할 수 있는 건 마을에서 준비하는데, 부족한 내용은 농업기술센터가 다른 단체와 연결하는 등 도움을 주고 있어요. 축제 후 평가회의 때 나오는 의견은 다음 해에 꼭 반영시키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아직 활용할 수 있는 자원 많아”
마을축제 때마다 안내와 방명록을 담당하고 있는 오준택 어르신은 마을주민이 모두 참여하는 참여정신이 마을축제의 가장 큰 자산이라고 말한다. 예전에는 동제나 명절이 가장 큰 축제였는데, 핵가족이 되면서 마을행사가 사라진 상태에서 마을축제가 주민의 공동체성을 유지시켜준다는 것이다. 혹시 행사를 준비하는 마을리더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닐까? 오세권 통장은 설문조사를 해도 똑같은 답이 나올 것으로 확신한다. 상도문 마을은 속초도문농요보존회 등의 마을단위 활동을 통해 주민공동체성의 경험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축제 발전에 대한 생각은 모두들 적극적이다. 매곡 오윤환 선생 선양사업으로 한시백일장, 도문농요를 발전시킬 수 있는 농요부르기 대회같은 아이디어가 나온다. 매년 결과가 좋고, 발전가능성이 높은만큼 보조금의 확대도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축제가 확대되어도 마을주민이 감당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벚꽃축제는 우리 마을처럼 느릿느릿 조금씩 발전했다. 우리끼리 10년 정도 했으니, 이제 보약을 먹을 때가 되었다. 보약이 뭐나면, 전문가의 참여이다. 우리 마을은 아직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많다”는 답이 돌아왔다. 문화자산 구축의 과정으로 공동체성을 경험한 마을주민에게 축제의 성공은 신뢰와 화합이라는 사회적 자산의 증가로 돌아온다. 2018 설악벚꽃축제가 기대되는 이유이다.
김인섭 전문기자(속초문화원 사무국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설악벚꽃축제의 체험프로그램을 위해 마을 노인회는 겨울부터 준비한다. 사진은 가장 인기가 많은 짚풀공예 작품.
마을축제의 성공은 마을주민의 신뢰와 화합이라는 사회적 자산을 키운다. 그 중심에는 열정적으로 축제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오세권, 오준택, 문혁주 어르신(왼쪽부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