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 역사의 한 장에 기록될만한 인물임에도 지역에서 까맣게 잊혀진 인물이 있다. 지역에서 그의 존재는 분단으로 인한 냉전의 시대에 공식적인 확인조차 안되어 그냥 이야기로만 떠도는 유령과 같은 존재였다. 지금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양양 출신의 거물급 공산주의자가 있었다는 막연한 이야기로만 알려져 있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바로 그 거물급 인사가 북한 정권 수립시절 북한군 총사령관을 지낸 최용건이라는 이야기로 잘못 알려져 있다. 북한에서 높은 자리를 했다던 그 사람 때문에 출신마을은 냉전시대에 요시찰 지역이 되었다는 이야기만 무성했던 것이다. 
최용달(崔容達). 그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지 50년이 넘은 지금도 지역에서 그의 이름조차 거론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남한에서는 공산주의자라고 하여 거명이 금기시되고, 북한에서는 남로당 계열로 숙청된 자라 하여 그의 존재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용달은 최근 KBS에서 방영된 ‘서울 1945’의 주인공 최운혁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이강국과 인생의 행로를 같이 했던 인물이다. 경성제대 시절 서클활동을 시작으로, 월북 후 북한정권으로의 숙청과정까지 정치적 행로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비극적인 인텔리 사회주의운동의 주인공들이다.
  해방 후 북조선
해방 후의 소련 군정문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록이 전한다.
“황병옥이 북조선에서 누가 후보자가 될 것이냐고 묻자, 여운형은 김일성, 김두봉, 무정, 최용달을 꼽았다. 대통령직에는 누구를 후보자로 생각하는가 묻자, 여운형은 미국측에서는 이승만, 김구, 조만식과 자신을 천거하고 있다고 답했다.”(1946년 3월27일 여운형과 김일성의 개인비서 황병옥과의 대담 중 일부).
1948년 5월 28일자 조선일보에 따르면 미하원 외교위원회에서 동양 및 유럽의 공산당 지휘자 명부를 작성했는데, 이중 조선은 6명으로 최용달, 최용건, 김일성, 김무정, 김두봉, 박헌영이 명부에 올랐다.
   양양출신으로 경성제대 입학한 수재
최용달은 1903년생으로 양양출신이다. 본적이 양양읍 임천리로 기록되어 있으나 양양읍 조산리 강릉최씨 집안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양양농민조합활동에 주도적으로 참가하였다가 1934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2년반의 실형을 선고받은 최용운(崔容運)이 그의 친동생으로 알려져 있다.
최용달은 1925년 3월 함흥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제 2기로 경성제국대학 예과에 입학했다. 예과에서 본과로 진학할 때에 법학부를 지원하였다. 당시 경성제대에 들어가기는 하늘의 별따기. 경성제대는 민족차별이 심해 한해의 학생정원 150명 중 조선인 학생 정원은 47명에 불과했다. 이런 경성제대에 변방지역이라 할만한 양양에서 진학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로 여겨지던 때였다.
최용달의 지역과 관련된 행적은 대학시절 학우회 활동이 확인된다. 1927년 5월 경성 종로경찰서장이 경성지방법원 검사정에게 보낸 경찰 조사 문서 ‘재경양양학생친목회 정기총회’ 조사자료에 최용달은 이 모임의 위원으로 거명되었다. 재경양양학생친목회가 여름방학 때 고향의 부모와 자매, 기타 지역유지들을 대상으로 운동회와 음악회를 열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아울러 이해 6월에는 강원도 학생들의 모임인 관동학우회 집행위원회에서 최용달이 서무부 일을 맡게 되었다고 전한다.
   경성제대 사회주의 학습서클 몸담아
최용달은 1927년 이강국, 박문규 등과 함께 교내서클인 경제연구회에 가입해 마르크스주의 이론 및 식민지시대 조선실정에 대해 공부를 하였고, 1929년에는 원산부두노동자 파업 때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 경제연구회 대표로 파견되기도 하였다.
경제연구회는 일본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했던 일본인 교수 미야께(三宅鹿之助)의 지도를 받았다. 1934년 소위 ‘三宅鹿之助교수를 중심으로 한 적화공작사건’으로 일경의 검거선풍으로 최용달도 함께 체포돼 조사를 받기도 했다.
경성제대 1기로 최용달과 이강국 등과 함께 경제연구회에서 활동했으나 전향해 해방후에는 대한민국 헌법을 기초하고 고려대 총장으로 지냈던 유진오박사는 “이강국은 수재형이고 최용달은 노력형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전한다. 우리나라 상고사에서 단군의 존재를 부활시키고 2005년에 타개한 대한민국 학술원 최태영박사는 “최용달은 열심으로 공산당하고 법학 연구도 했다. 고학한 사람으로 도무지 호강이란걸 몰랐지만 학문을 취미같이 열심히 했다. 공부 많이 하는 최용달과 내가 서로 통했다”고 회고했다.
 이강국과 박문규와 함께 경성제대 삼총사
경제연구회의 주축인 최용달과 이강국, 박문규는  이후에 ‘경성제대 삼총사’라 불렸으며, 이들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계열은 ‘성대파’로 불렸다. 이들은 경제연구회 회원이 조선공산당 재건사건에 연루되어 학교당국으로부터 해체명령을 받자, 1930년 9월 ‘조선사회사정연구회’를 만들어 조선의 사회실정을 연구 조사하고 근로대중의 조직에도 힘썼다. 이들은 각자 분담하여 각 분야의 사회운동을 집대성해 ‘조선사회운동사’를 집필하기도 했다.
경성제대 삼총사는 경제연구회를 시작으로 사회주의운동에 함께 참여한다. 조선사회사정연구회 등 사회주의 활동을 비롯해 노동운동, 여운형의 건국동맹 참여, 해방 후 남로당 활동과 월북, 북한에서의 고위직 정치활동 참여까지 궤를 같이 한다. 하지만 이 셋 중 정치적 감각이 앞섰다고 평을 받던 이강국과 최용달은 한국전쟁 이후 숙청되고, 박문규만 북한정권에서의 고위직을 오랫동안 유지했다.
아무튼 일제치하에서 경성제대 법학부를 졸업한 최용달에게는 조선 최고학부 졸업생으로 누릴 수 있는 사회적 특권과 동시에 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고민이 함께 존재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인생행로도 이와 무관치 않았다.
엄경선 프리랜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