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의 배움은 새로운 결과를 낳았다. 서울로 가기 시작한 이듬해부터 이덕우 원장은 강원서예대전을 비롯한 각종 공모전에서 수상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서예대전에 하나의 작품을 내기 위해서는 수백 장을 다시 쓰는 끊임없는 시도가 있었다. 자정까지 글을 쓰거나 새벽에 나와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붓을 들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이 원장은 당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이 서예에 대한 열정이나 배움에 대한 목마름 때문이 아니라고 했다.
“제가 서예를 그렇게 열심히 배웠던 것은 오기였습니다.”
서예를 시작하고 10년 동안 도전한 공모전에서 성적이 저조했으니 어쩌면 오기가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서예에 대한 애정이 부족하다면 그의 노력 자체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덕우 원장은 요즘도 하루에 여덟 시간 정도는 붓으로 글을 쓴다. 이미 오래 전에 스승인 김홍석 서예가로부터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정진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저는 지금도 부족합니다. 아직도 배울 것이 너무 많습니다.”
이 원장은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 최근 작품에 대해 묻자 그는 ‘겸손(謙遜)’이란 작품을 얘기했다.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해 그 글을 썼다고 한다. 해정서예연구원의 벽에 걸린 ‘하심함소(下心含笑 - 마음을 낮추고 얼굴에는 미소를 띠다)’라는 글과 통하는 작품이다.
시간을 거슬러 건강을 되찾다
그의 삶을 짚어보면 서예는 그의 삶을 변화시킨 너무도 중요한 매개였다. 취미로 시작한 서예가 어느새 그의 본업이 됐다. 그리고 서예는 그의 건강에도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는 서예를 더 열심히 하기 위해 술과 담배를 끊었다. 정조 임금이나 청명(靑溟) 임창순(任昌淳)처럼 애연가인 서예가가 있는 것을 보면 담배가 서예와 꼭 대척점에 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덕우 원장은 서예를 잘하려는 의지를 다지기 위해 담배를 끊었다.
그가 서예 공부를 위해 서울로 오간 것도 건강에 크게 도움이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불편한 몸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멀리 오간 것은 운동을 한 셈이다. 그리고 서예를 통해 심리적 안정감을 다진 것도 그의 건강에 주효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시간이 갈수록 더 좋아졌다. 이덕우 원장은 20대에 큰 사고를 겪은 후 한때 제대로 걷지도 못했고 목발이나 지팡이를 사용해야 했다. 하지만 70대가 다 된 지금은 오히려 가시적으로도 더 건강해졌다. 보통 그 정도의 나이에는 평소에 꾸준히 먹어야 하는 약이 있는 게 다반사이지만 그에겐 현재 장복하는 약이 별달리 없다. 걷는 게 약간 불편할 뿐 비슷한 연배의 누구보다도 더 젊고 건강하다. 그를 실제로 마주 대하고 있으면 운동선수처럼 건장해 보인다.
물론 그의 건강에는 서예뿐 아니라 다른 노력도 영향을 미쳤다. 젊은 시절에는 재활운동을 열심히 했고 나이가 들고서도 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3년 전 척추관 협착증 수술로 인해 본격적인 운동은 쉬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 이전에는 아령 10kg짜리 두 개를 양 손에 쥐고 하루에 200개씩 들어 올렸다. 그리고 1주일에 3번은 등산을 했다.
서예를 통해서 점진적으로 하나씩 성과를 내어 온 것도 그가 그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도록 이끄는 동력이 됐을 것이다. 이러한 동력으로 운동을 열심히 할 수 있었다고 한다면 운동 역시 결국에는 서예 덕분이었다고 볼 수 있다.
지역을 대표하는 서예가가 되다
한문 서예의 글씨체는 크게 다섯 가지로 나뉜다. 해서, 행서, 초서, 예서, 전서가 그것이다. 이덕우 원장에 따르면 하나의 글씨체는 적어도 10년의 시간을 들여야 잘 쓸 수 있다. 하나의 글씨체에 있어 완성의 수준에 도달하면 다른 글씨체를 배우는 데 시간이 단축될 수 있다고 한다. 그래도 이들 글씨체를 몇 가지만 제대로 쓰려고 해도 수십 년의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이덕우 원장은 요즘 여러 서체를 너무 급하게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글씨는 단시일 내에 이뤄질 수 없지요. 기법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자신만의 글씨를 쓰기 힘듭니다. 구름이 흘러가듯이 천천히 나아가야 하지요.”
서예는 글을 보고 지식을 암기하듯 배우는 영역이 아니다. 그래서 기법을 배우는 데만 해도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거기에 자신만의 개성이 더해지려면 더 많은 연습, 어쩌면 부단한 수행(修行)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런 과정은 해정 이덕우 원장도 지나온 길이다. 그는 그 길을 걸어오며 서예만을 갈고 닦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바꿨다. 예술은 주관의 영역이다. 그러나 어떤 예술가가 많은 이의 인정을 받고 있으며 그런 인정을 받기까지 객관적으로도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면 우리는 그의 작품세계를 우러러 볼 수 있어야 한다. 이덕우 서예가도 이에 해당한다. 그는 신체적 한계를 극복해가며 서예를 연마했고 우리 지역의 많은 이들로부터 지역을 대표하는 서예가로 꼽히고 있다.
그는 나이를 거슬러 건강을 되찾아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어쩌면 그는 서예를 통해서도 우리를 놀라게 할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는지 모른다. 혹 그렇지 않더라도 그는 자신의 지향을 담은 더 많은 좋은 작품을 우리에게 선보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 지역에서 서예의 발전을 위해 그 누구보다도 앞장설 것이다. 앞으로 해정(海禎)의 작품을 감상할 때 그의 인생이 그의 글씨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고려해 보는 것도 작품을 감상하는 또 다른 방법일 것이다.
이광호 객원기자 campin@hanmail.net
해정서예연구원 이덕우 원장. 그는 일흔이 가까운 서예가이지만 운동선수처럼 건장하다.
如龍得水(용이 물을 얻은 것과 같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있을 자리에 제대로 있고, 할 일을 제대로 하면 모든 일이 순조롭고 모양이 잘 갖추어진다는 뜻.(속초예총 사진 제공)
서실에는 사람들이 있어도 고요하다. 서예를 지도하는 이덕우 원장의 목소리도 조용하다.
심무루(心無累) - 마음에 얽매임이 없다는 뜻.
겸손. 이덕우 원장이 요즘 마음에 자주 되새기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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