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순대는 무슨 맛으로 관광객들의 입맛을 사로잡았을까? 오징어순대는 순대이면서도 전통 순대와는 다른 맛이다. 보통 돼지창자에 선지와 찹쌀 등을 넣어 만든 순대는 호불호가 확실히 갈리는 음식이다. 선지를 많이 넣어 만든 순대와 동물의 창자라는 인식은 비위 약한 여자에게는 더더욱 낯가림이 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오징어의 깔끔하고 쫄깃한 맛과 담백한 소가 어울려 내는 맛은 남녀노소 누구든지 즐길 수 있는 맛이다. 그냥 찐 채로 먹기 좋게 잘라서 먹어도 좋고, 계란 옷을 입혀 먹어도 좋다.
오징어순대 소개 신문기사
동해안 일대에서 많이 잡히는 오징어가 국민 생선의 반열에 오를 무렵인 1960년대 초반, 오징어순대가 처음으로 신문기사에 나왔다. 1964년 1월 29일자 동아일보 7면 ‘살림의 아이디어’에 서울 동대문구 보문동에 사는 김계숙씨가 ‘오징어순대’를 소개하는 글을 투고했다. 김씨는 “흔히 순대는 돼지나 소의 내장으로 하는데 맛은 좋지만 비싸고 쉽게 할 수가 없다”며, “만들기도 쉽고 값이 싸며 맛도 좋은 ‘오징어순대’가 있다”고 했다. 김씨는 “집에서 가끔 해먹는 별식으로 술안주로도 기가 막히게 좋다”며, 지금과 비슷한 조리법을 소개했다.
1970년 3월 3일 동아일보 7면 ‘금주의 식탁’에서 요리연구가 황혜성 교수도 오징어순대를 소개했다. 조리법은 지금과 사뭇 다르다. 오징어 속을 빼고 껍질을 벗긴 다음 끓는 물에 넣어 데치고, 순대를 다 만들어서는 쇠꼬치에 꿰어서 양념을 발라서 구워 먹는다고 했다.
1974년 7월 22일자 매일경제 8면에서는 여름 별미로 오징어순대 조리법을 소개했다. 이 조리법도 지금과 조금 다르다. 오징어를 통째로 껍질을 벗겨 내고, 오징어 다리는 데쳐서 준비하고, 소를 채워 넣은 오징어순대를 찜통에 쪄서는 다시 냄비에 국물과 간장을 넣고 졸인다. 졸인 오징어순대를 꺼내고 남은 국물에 녹말과 생강즙을 넣어 양념장을 만들어 순대에 끼얹어 완성한다.
1977년 12월 13일자 동아일보 5면 ‘겨울철 별미’ 기사에서는 마른오징어로 만드는 오징어순대도 소개했다. 기사에서는 “마른 오징어를 만 하룻동안 불린 것에 밀가루를 섞은 양념장을 바르고 돌돌 말아 실로 묶어 무거운 것으로 3,4시간 눌러놓았다가 찜통에 쪄낸 오징어순대도 가끔 새맛으로 이용함직하다”고 했다.
속초 오징어순대 원조 삼영식당
속초오징어순대가 상품화되어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1970년대 후반이다. 1979년 5월 31일 세종대학 부설 한국전통음식연구소와 국제관광공사 주최로 한국전통음식 및 향토음식 전시 겸 시식회를 개최했는데, 이 자리에서 설악산의 향토요리로 ‘오징어순대’가 선보였다.
다음해인 1980년 8월 1일자 중앙일보 5면에는 속초주재 장창영 기자가 ‘값싸고 영양많은 오징어순대 등장’이라는 제목으로 속초 삼영식당(삼영집)의 오징어순대를 소개했다. 기사에서는 “오징어순대는 오징어를 따지 않고 뱃속의 쓴 쓸개(먹물)만을 뺀 몸통에다 풋고추, 양파, 계란, 깻가루, 생강, 후추, 고추장, 참기름, 조미료 등 갖은 양념을 버무려 찹쌀밥, 돼지고기, 두부, 숙주나물, 오징어다리 등을 다져 만든 순대속을 넣어 쪄낸 독특한 순대”라며, “오징어의 독특한 맛과 갖은 양념에 버무린 순대속의 칼칼하고 얼큰한 맛과 향기가 조화, 아주 독특한 해산물의 진미를 낼 뿐 아니라 높은 칼로리의 고단백식품”이라고 칭찬했다.
별미기행가 백파 홍성유가 1986년 8월 3일자 조선일보 6면에 쓴 기사는 속초오징어순대 소개 기사의 백미로 손꼽힌다. 백파는 오징어순대의 원조로 손꼽히는 삼영식당의 오징어순대를 “모양이 흡사 돼지순대 같대서 오징어순대란 이름이 붙었지만, 돼지순대에 비길 수 없는 사치스런 맛”이라며, “따뜻한 것이 입안에 슬슬 녹는다”라고 표현했다.
오징어순대 원조 삼영식당은 그후 없어지고, 대신 진양횟집과 고성회관 등 여러 식당들이 그 맛을 지켜왔다. 진양횟집은 삼영식당 이후 오징어순대 원조를 지켜오는 식당이다. 1990년대 백파 홍성유가 추천한 집이며, 최근에는 국내는 물론 전세계 순대를 찾아 연구해 <순대실록>을 펴낸 육경희씨가 추천하는 순대맛집의 한 곳이다.
오징어순대가 속초 특산 음식으로 자리잡게 되자, 1999년경 지역에 오징어순대를 제조해 판매하는 식품공장이 생겨나면서 전국으로 팔려 나갔다. 그리고 2010년 전후로 아바이마을에 많은 탐방객이 몰리면서 속초 실향민 음식으로 오징어순대를 팔기 시작했다. 그러나 직접 식당에서 만드는 오징어순대가 아니라 식품공장에서 만든 오징어순대를 해동해서 파는 집들도 적지 않았다.
지금은 오징어순대를 직접 만들어 내놓는 식당이나 가게가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 반면 연근해 오징어 어획량은 급격히 줄어 속초 대표 수산물로서의 위상을 잃어가고 있다. 속초관광음식 1호인 오징어순대, 그 명맥을 이어 나가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엄경선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속초관광수산시장에서 직접 만들어 파는 오징어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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