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호동 아바이 김상호 옹의 살아온 이야기<9> – 진로를 고민하던 중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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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어부, 부산으로 가다

등록날짜 [ 2018년11월12일 13시27분 ]

김상호 옹은 중학교 시절 고기잡이를 하러 가는 일이 많았다. 그의 부모가 그렇게 하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를 통해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됐고 용돈도 마련할 수 있었다. 이런 까닭에 중학교 시절에는 먹을 것을 얻기 위해 성당이나 교회, 그리고 미군에게 갈 필요가 없게 됐다. 김 옹은 용돈으로 호떡을 사먹고는 했는데 잠시나마 배를 채울 수 있어서 지금 생각해도 그게 너무도 행복한 일이었다고 한다.
김 옹은 주로 오징어잡이를 나갔다. 그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할 때가 있었다. 오징어는 밤을 새면서 잡기에 너무 피곤해서 아침에 등교하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중학교 3학년 시절 그는 진로에 대한 고민을 자주 했다. 전쟁으로 학교를 쉬는 바람에 중학생임에도 스무 살에 가깝던 김 옹은 진로 고민이 클 수밖에 없었다. 가난한 집안 사정을 고려하면 상급 학교로의 진학은 어려웠다. 당시 그는 성적이 괜찮은 편이었고 스스로도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기에 진학을 할 수 없는 현실이 너무 슬퍼 펑펑 울었다. 중학교를 졸업하던 때 수학 교사이던 담임은 그가 진학하지 못하는 것을 크게 안타까워했다. 수학 교사 입장에서는 학교에서 수학을 가장 잘하는 축에 드는 학생이 공부를 관두기에 더욱 아쉬웠을 것이다. 김상호 옹은 당시 그가 처한 상황이 얼마나 가슴에 사무치던지 비록 자신은 중학교로 끝나지만 나중에 어른이 되면 자식 교육 하나는 제대로 하자는 다짐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다짐은 후에 그가 현실 속에서 이루게 된다.
중학생 때 어부 생활을 해봤던 그는 그 일이 자신에게 안 맞는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바다도, 배를 타는 것도 너무 싫었어요. 뱃일이 아닌 다른 직업을 늘 꿈꿨지요. 무슨 일을 하든지 육지에서 하고 싶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그가 이곳에서 뱃일 빼고 할 수 있는 일이 마땅하지 않았다. 밑천이 없으니 장사를 할 수도 없었다. 따라서 그는 중학교 졸업 후 한동안은 배를 탔다.
그런데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에서 직물공장을 운영하던 외숙부가 속초에 방문했다가 내려가는 길에 함께 가게 됐다. 그때 그가 부산에 간 것이 처음으로 대도시에 가 본 것이었다. 부산에 내려가면서 탄 기차도 태어나서 처음 타는 기차였다.
외숙이 운영하는 부산 영도의 공장에는 여직원이 스무 명 정도였고 남직원은 4~5명이었다. 천을 짜는 여직원들 대부분은 10대 후반이었고 나이가 많은 사람도 겨우 스물 한 살이었다. 김 옹은 당시에 좋은 옷을 입고서 부산에 갔지만 여직원들은 그를 촌스럽게 여겼다. 김 옹이 보기엔 여직원들이 도시 여자라서 잘난 척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실상은 여직원들 상당수가 부산 사람이 아니었고 시골에서 온 이들이었다. 대체로 배움이 짧고 집안 형편이 어려웠다. 또한 편부나 편모 가정에서 자랐거나 부모가 없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외숙의 딸 이름이 명희라 김 옹은 거기서 ‘강원도 명희 오빠’로 불렸다. 여직원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었지만 그들은 김 옹을 동생처럼 대했고 휴일이면 여직원들끼리만 몰려다녔다. 여직원들과 친해진 것은 한 1년쯤 지난 후였다. 여직원들은 맛있는 군것질거리를 사면 김상호 옹에게 건넸고 김 옹 역시 그들에게 마찬가지로 그렇게 했다. 그런데 여직원들 중에서 특별히 눈에 들어오는 이가 한 명 있었다. 김상호 옹의 이후 삶을 결정지을 한 사람이었다.
<다음에 계속>
구술 김상호 · 정리 이광호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