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오전 11시. 11월 하순의 쌀쌀한 날씨 속에 상도문 한옥마을 도문농요 전수관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사회적기업이자 협동조합인 감자여행이 주관하는 상도문 문화마을 이야기투어가 있는 날이다.
전수관 강당에 모인 사람들은 스텝까지 서른 명 정도. 속초와 강원도를 넘어 서울, 그리고 멀리 제천과 광주에서도 상도문을 찾아왔다. 공정여행의 일선에 있거나 이에 관심 있는 이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마을을 거닐며 상도문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이 첫 일정. 마을 어르신이 직접 나서서 마을 곳곳을 돌며 여행자들을 안내한다. 상도문 태생의 유학자 매곡 오윤환 선생이 세운 학무정에 올라 선생의 행적을 들려주고 마을 옆에 놓인 제방을 지나가며 설악산의 지명과 의미를 알려준다. 그리고 길을 따라 걷는데 저 멀리 동해 바다가 보인다. 바다가 살짝 드러나 보여 마치 그릇에 물을 담아 놓은 것 같고 그 물이 흘러넘칠 것 같은 형상이다.
제방 끝 저 멀리에는 큰 돌탑 하나가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흡사 선사시대 대단한 권력자의 무덤 같이 보이기도 한다. 돌탑 옆에 놓인 표지석에는 ‘행주석범(行舟石帆)’이라 적혀 있다. 행주석범은 돛을 달고 나아가는 배를 뜻하며 마을의 안녕과 발전을 기원하는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예전에 무너져 내렸지만 마을 연장자들의 의견에 따라 2013년에 복원한 것이다. 마을을 안내하는 어르신은 행주석범을 복원한 후로 마을이 잘 되고 있다며 흐뭇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행주석범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을 어르신의 발걸음은 빨라진다. 마을에 대해 하나라도 더 설명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것 같다.
점심은 ‘도문밥상’으로…조형물 감상
상도문에는 아직도 집집마다 돌담이 많이 남아 있다. 돌담에서는 옛 정취가 가득해서 골목을 굽이굽이 휘어 들어가는 돌담길을 걸어가면 삭막한 아스팔트를 걷는 것과는 다른 정감을 준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어떤 돌담들은 돌과 돌 사이에 시멘트가 칠해져 있다. 예전에 돌담이 무너지지 않도록 정부에서 지원금이 나와서 그렇게 바꾼 가구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시대적 상황이 이해되기도 하지만 여행객들은 그 모습에 아쉬움을 드러낸다.
점심은 ‘도문밥상’이 차려졌다. 주로 마을에서 나는 재료들로 만든 식사이다. 도토리묵, 감자조림, 고등어조림, 김치, 무생채 등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이지만 음식 하나하나가 맛깔스럽다. 밥과 반찬을 비우고도 더 가져다 먹는 이들이 많다. 정성스러운 맛을 지닌 ‘도문밥상’이 좀 더 다듬어진다면 지역을 대표하는 전국적인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보인다.
오후에는 상도문 곳곳에 놓인 조형물을 감상하기 위해 마을을 걷는다. 작품을 만든 미술가들이 직접 와서 이번 작업에 대해 설명한다. 상도문 이곳저곳에 있는 미술품들은 최근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이 프로젝트의 김영훈 총괄디렉터를 비롯한 10명의 작가들은 겨우 한 달 정도 만에 마을에 흥미로운 요소를 더했다. 담벼락 위에 작은 돌이 있고 그 돌에 참새가 그려져 있다. 그보다 조금 더 큰 돌에는 고양이들을 그려 놓았다. 한 건물 벽에는 쇠로 만든 조형물이 있는데 멀리서 그림처럼 보이다가 가까이 가니 그림자를 드러내며 더욱 그림 같은 모습을 만들어낸다. 건물의 한쪽 편에는 앉을 수 있는 쉼터를 만들고 스피커를 가져다 놓아 누구든 휴대전화만 연결하면 야외에서 운치 있게 음악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이 외에도 달팽이, 개구리, 쇠똥구리, 돌탑 등 일일이 개수를 새기가 힘들 정도로 많은 미술품들이 마을을 꾸미고 있다. 그런데 상당수 미술품들은 대체로 작고 앙증맞다. 차를 몰고 마을로 들어올 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걷게 되자 비로소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작가들의 설명에 의하면 이 작품들은 마을에서 구한 재료들로 작업한 것이다. 나무로 만든 작품은 땔감을 활용했고 돌들은 가까운 곳에서 주워왔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한 작가는 “생뚱맞게 두드러지지 않는 작품, 티가 나지 않는 작품을 만들고자 했다. 마을에 재미있는 요소를 더한다는 생각으로 작업했다”고 말했다.
연주에 맞춰 오윤환 선생 일기 읽어
다음은 천연염색 체험 시간. 마을의 한 주택 마당에서 천연염색 전문가의 안내에 따라 여행자들은 손수건을 하나씩 들고 쪽빛으로 물들였다. 초록빛이 점차 짙은 파랑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다들 신기하게 바라봤다.
염색이 끝난 후에는 도문농요 전수관에서 도문농요와 런갯마당의 공연이 있었다. 공연은 설명이 곁들여져서 관객들의 이해를 높였다. 그리고 관객들은 연주에 맞춰 매곡 오윤환 선생이 남긴 일기를 읽으며 선생의 삶을 짚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상도문 문화마을 이야기투어는 1박 2일의 일정으로, 다음날인 23일에는 여행자들이 속초의 명소를 돌아봤다. 여행 참가자들은 서점 ‘완벽한 날들’, 속초관광수산시장, 아바이 마을 등을 방문해서 속초가 가진 다양한 매력을 살필 수 있었다.
보통 관광이라고 하면 겉핥기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관광지에는 많은 이들이 붐비고 그런 상황에서는 무언가를 충분히 바라보고 느끼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인파에 치이다 보면 대충 둘러보고 어서 현장을 뜨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관광에 지친 사람이라면 좀 더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마을 여행을 고려해 볼 수 있다. 마을을 천천히 걸으며 마을이 가진 매력을 살펴보고 마을에서 무언가 체험을 해본다면 여행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상도문 문화마을 이야기투어 역시 여행의 가치를 돌아보게 한다. 이광호 객원기자
행주석범 앞에 선 여행 참가자들.
상도문에는 아직도 집집마다 돌담이 많이 남아 있다.
고양이가 마치 살아 있는 것 같다.
그림이 아니라 쇠로 만든 조형물이라 햇빛이 비치면 그림자를 만들어 더 멋스럽게 보인다.
천연염색 체험의 시간.
도문농요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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