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극 작가는 인위적인 조작을 좋아하지 않는다. 컴퓨터를 이용한 과도한 보정을 지양하며 필요 없는 것들을 잘라내기 위한 트리밍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카메라의 기계적인 성능에 의존하는 것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연사 촬영도 하지 않는다. 아무리 빨리 움직이는 물체라도 그는 한 컷씩 찍는다.
“저는 날아가는 새나 에어쇼를 촬영할 때에도 한 장씩 찍습니다. 연사로 하게 되면 사진 촬영 노하우를 깨치기 어렵습니다.”
기록사진에 천착하다
작가가 인위적인 조작을 싫어하는 것은 그가 기록사진을 오래도록 찍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기록은 조작이 없이 언제나 있는 그대로를 담아야 하기에 그는 수십 년 동안 기록 사진을 촬영하면서 인위적인 변형을 좋아하지 않게 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작가는 사진을 찍을 때 무언가를 치우거나 바꾸지 않고 셔터스위치를 누른다. 시각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진가라면 거슬리는 물체들을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다. 그러나 기록이라는 관점에서는 이러한 행위가 조작이다. 시각적으로 조금은 부족하다고 해도 그는 그대로 촬영한다. 그에겐 시각적 아름다움보다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저보다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리고 저보다 더 좋은 장비를 가진 사람도 많습니다. 다른 이들이 좋은 것을 찍으려고 할 때 저는 ‘꾸준히’ 찍으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다른 이와 저의 차이라 생각합니다.”
전태극 작가는 지금까지 13회의 개인전을 열고 60회가 넘는 회원전을 가졌으며 세 권의 사진집을 발간했다. 작가는 35년의 작품 활동에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기록’에 중심을 두어왔다. 그런데 여기에서 벗어나 본 적이 한 번 있기는 하다. 2016년의 개인전에서는 연꽃의 아름다움을 테마로 잡았다. 그러나 이 한 번 외에는 작가는 기록 사진에 천착했다.
공론장 화두 제시하는 기록사진
작가는 오래도록 속초를 꾸준히 촬영해 온 것에 자부심을 가진 듯이 보인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속초 곳곳을 찍어 왔다. 논밭이 아파트로 바뀌는 사이 작가는 우리 지역의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서울에서 잠깐 다녀가기 위해 오는 사람이 얼마나 여기를 기록할 수 있을까요?”
작가는 속초를 촬영하는 것이 속초에서 살아가는 사진가의 의무인 듯 이렇게 얘기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속초에 빌딩들이 갑자기 많이 생기고 있다. 혹자는 이런 현상들을 환영할 수도 있겠지만 작가는 이에 비판적이다. 작가가 생각하는 속초의 아름다움은 고층 아파트에 있지 않다. 작가는 우리 지역의 자연환경을 중히 여기며 무분별한 개발로 망가져 가는 모습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세상은 바뀔 수밖에 없지만 저는 그 변화가 어때야 하는지 사람들이 같이 생각해볼 계기를 사진을 통해 만들어 보고자 합니다. 자연을 변화시킬 때 우리가 과연 어디쯤에서 멈춰야 옳은 것인지 사진을 보면서 점검할 수 있길 바랍니다. 저는 세상이 변해가는 모습들을 찍어 사람들에게 제시하는 과정에서 미래지향적인 답이 나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기에 기록 사진의 의의가 있지요.”
작가는 어린 시절 대포에서 속초 시내로 오면서 겨울에 얼어붙은 청초호를 걸어서 건너던 때를 기억한다. 그랬던 청초호가 이제는 한겨울에도 두껍게 얼지 않는다. 이런 모습은 작가의 사진에 담겨 있다. 그런 사진을 보면서 작가 스스로도 우리의 속초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역사를 아는 사람들은 기울어진 담장 옆에 서지 않습니다. 좋은 기록 사진은 공론장의 화두를 제시해 줄 수 있습니다. 과거를 보면 미래를 상상할 수 있어요.”
작가는 이러한 의미를 담아 2016년에 <미래를 상상하다>는 제목으로 사진전을 개최한 바 있다.
사진 수업에서 꼭 하는 말
작가는 사진 공모전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공모전은 사진을 배우는 사람들에게 동기를 유발하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 그러나 전태극 작가의 시각에서는 공모전 참가가 득보다는 실이 될 수도 있다.
사진 공모전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은 사진을 못 찍은 사진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작가가 보기에 공모전의 결과는 평가관들의 성향에 좌우되는 측면이 크다. 공모전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려면 평가관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이를 사진에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계속 이렇게 하다보면 사진가는 자신의 철학이 담긴 사진을 찍기보다 ‘남의 사진’을 찍게 된다. 주관이 뚜렷한 작가의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이 달갑지 않다. 하지만 작가도 사진을 처음 배우던 때에는 2년 정도 공모전에 나갔었다. 그러나 사진에 관한 자신만의 사고를 정리해 가면서 공모전과는 거리를 두게 됐다. 많은 이들이 기성의 질서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어 갈 때 작가는 다른 길을 모색했다.
공모전을 준비하는 사람들 중에 소수이긴 하지만 부도덕한 일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사진을 찍고 난 후 현장에 있던 나무를 뽑아버리는 등 거리낌 없이 자연을 훼손한다. 남들이 사진을 못 찍게 하기 위해 이런 몰상식한 짓을 하는 것이다.
작가는 공모전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기에 수업도 공모전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그리고 공모전에 나가려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수업을 듣지 않는 게 낫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자신만의 사진 철학이 없다면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얘기하기는 힘들 것이다.
전태극 작가는 사진 수업을 하면서 수강생들에게 꼭 하는 말이 있다.
“사진가는 ‘여기’를 기록할 의무가 있습니다.”
전태극 작가는 좋은 사진을 찍으러 굳이 멀리 갈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바로 여기,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사진에 담을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자신의 집 앞도 매일 달라지고 있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도 의미 있는 작업이 될 수 있다.
<다음에 계속>
이광호 객원기자 campin@hanmail.net
전태극 작가.
2016년 개인전 <묘법연화> 전시 작품.
‘안개 낀 호수와 냉동공장의 얼음이동 콘테이너’(2014년 작).
2012년 개인전 <경계시대> 전시 작품 ‘철책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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