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진·거란·몽고·왜구 등의 1차 방어를 위한 속초성지
여진은 크게 서여진과 동여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서여진은 고려와 거란의 양대 세력 사이에 끼어 있다가 고려의 강동6주의 확보로 일단락되었지만, 동여진의 해구(海寇)는 제2차 거란과의 전쟁 이후 거란의 파상적 공격이 계속되면서 동북변의 경비가 소홀한 틈을 타 더욱 빈번히 침략하였는데 현종 2년(1011년)부터 숙종 2년(1097년)까지 약 80여 년 동안 20여 차례나 여진족의 침입을 받았으며, 동해안에 출몰하여 노략질한 것이 20여 회나 기록되어 있다. 그 이후 계속해서 거란(993~1018년, 1217년), 여진(1107~1115년)의 침입을 받았다.
그 후 몽고가 고종 18년(1231) 고려에 침입해 왔다. 강원지역이 본격적으로 전장에 휘말려 들게 된 것은 1253년부터다.
고종 40년(1253) 당시 몽고부대는 동북면에서부터 남하하여 9월에 등주(登州, 안변도호부)를 포위 공격하고, 10월엔 금양성 곧 통천방면 동해안을 따라 내려와서 10월 21일 양주(양양)를 점령하였다. 낙산사 승려 익장이 쓴『낙산사기』에 의하면 “계축년(癸丑年, 1253) 원나라 군사가 우리 강토에 마구 들어 왔는데, 이 고을에서는 설악산에다 성을 쌓아서 수어(守禦)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때 설악산에 쌓았다는 성이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도 말하고 있는 권금성일 것이라고 추정되며, 1253년경 축조되었을 것으로 판단되었으나, 실제로 최근의 조사에서 권금성이 고려시대(1113년까지 추정) 중기에 쌓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고려 후기에 오면 왜구가 전국의 해안은 물론 내륙에까지 침입하여 살인, 방화, 약탈 등을 자행하였다. 왜구의 침입은 무려 471회나 기록되어있다.
우왕 5년(1379) 왜구는 경상도 내륙지방을 침범해 승리한 왜구의 일부는 6월에 강릉도를 향하므로, 조정은 조인벽(趙仁壁)을 강릉도원수로 삼아 이를 방어하도록 하였다.
우왕 9년(1383)에도 왜구가 동산현(현남면 동산리)에 침입하였다. 이에 고려 조정은 조준(趙浚)을 강릉교주도도검찰사(江陵交州道道檢察使)로 임명하여 이 일대의 왜구 토벌에 나서게 하였다. 원수 이을진과 부원수 권현룡 등이 동산현(양양)에서 왜구 20명을 죽이고 말 72필을 노획하는 승리를 거두자 왜구는 고성포로 퇴각하였다. 그 뒤 고성포에 정박한 왜구는 11월에도 빈번한 야간 기습작전으로 고려군에게 고통을 주기도 하였다.
이처럼 1383년에 왜구들은 소규모 병력을 동원한 국지전을 전개하면서 내륙지역으로의 침투를 기도하였으나 고려군의 적극적인 토벌작전으로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그 뒤 왜구는 1385년 4월에 양양에 다시 침입하였으나 모두 고려군에 의해 패배한 기록이 있다.
여진, 몽골, 왜구들의 침입으로 볼 때, 김진형 등이 최근 동해안 지역 성곽들에 대해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동해안의 성(城)들은 동여진의 침략이후 육로 또는 해로를 통해 동해안에 침입하는 외적들을 막기 위해 축조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동해안 지역의 축성(築城)이 목종8년 이후부터 거의 매년 있었다는 사실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의 임시대처가 아니라 고려중앙에서 외적에 대한 방어 및 동태를 살피기 위한 감시초소 등의 역할을 위해 계획적으로 성을 쌓았을 가능성이 높음을 알려준다.
영동지방에 분포하고 있는 고려시대의 성곽은 크게 해안성(海岸城), 거점성(據點城), 입보용산성(立保用山城, 피신용 산성) 등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해안성-거점성-입보용산성의 분포양상은 3~4단계의 관방체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 관방체계는 성곽에서 확인되는 고려시대 유물들로 보아 고려시대에 완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관방체계는 11세기 북동쪽 동여진부터 14세기 남동쪽 왜구의 동해안 침입에 대한 방어체계로 생각되며, 또한 몽고병란기에도 입보용 산성이 거점으로 관방체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또한, 해안성-거점성-입보용산성의 분포양상은 입지에 따라 산성-평지성-평산성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평산성(平山城)은 동여진․왜구의 동해안으로의 약탈․침입이 계속되어 협소한 영동지방의 평지와 해안으로부터 침입하는 적들로부터 방어기능을 높일 뿐만 아니라, 군대를 주둔시키고 훈련하는 진(鎭)이 필요함에 따라 현재 해안성들이 위치한 곳과 읍성들 사이 평지 곳곳에 진성(鎭城)을 축조하였고, 평지성(平地城)은 주요 지방도시에 축조된 읍성으로 농지관리 등 지방업무를 지원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속초성은 해안가에서 불과 50m 떨어진 곳에 설치되어 있다. 피난성인 입보용산성이라고 하기에는 외적들을 피하기에는 전장지(戰場地)와 너무 가까우며, 외적이 해안으로 침입 시 1차적으로 그들을 막기 위한 전투성(戰鬪城)이나, 치소성(治所城)에 적합하다고 생각된다.
■치소성(治所城)으로서의 속초성지
앞서 말했듯이 속초성내에 거주하는 원주민은 오래전부터 이곳을 한나라의 수도를 일컫는 말인 장안마을(長安, 일명 장골)이라 부르는데, 적어도 일시적이었거나, 현재 그 위치를 비정할 수 없는 한 주·군·현의 치소성(治所城)이었거나, 큰 규모의 성(城)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된다. 그 근거로는 속초성 발굴에서 ‘관(官)’ 또는 ‘관사(官舍)’자 명의 명문기와가 많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신라통일기 영동지방의 주·군·현의 읍치성(邑治城)들은 주민집단 거주지에 속하는 충적지(充積地)나 평지(平地)보다는 이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근접한 산야(山野)에 위치했던 반면, 고려시대 거점성은 평지성(平地城), 평산성(平山城)으로 고려사회가 안정되면서 행정적 기능을 증가시킨 성곽으로 거점성은 처음에는 토성(土城)으로 축조되었으나, 점차 외부세력의 침입으로 행정적 기능뿐만 아니라 군사적 기능도 수행하게 되어 석성(石城)으로 변모하게 된다고 했다.
만약 속초성이 동여진 ․ 왜구 등 외적들의 공격으로부터 방어를 목적으로 축조된 성이라면 산등성이나 성 맨 윗부분이 석성으로 축조되어야 할 필요가 생긴다. 다만 그 옛날 석성이었을지도 모르나, 지금의 존재형태로나 『조사자료』의 기록상으로도 흑만으로 쌓은 토성(土城)이나 강돌로 기단을 만들고 흙을 쌓은 토성혼축(土城混築)으로 성을 쌓았으며, 피난성처럼 해안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점, 구릉이 높이가 비교적 높지 않은 것 등으로 보아 군사공급과 훈련을 담당하던 성이나, 농사를 관리하는 지방업무 등의 시설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 예로는 강릉 영진리 토성, 양양 대포영성 등이 있다
최종석은 「고려시기 치소성의 분포와 공간적 특징」에서 ‘조선시기에는 치소역할을 하고 있는 성(城)을 부를 때 □□군성(郡城), □□현성, □□읍성(邑城) 또는 군·읍·현을 생략하고 □□성(城)으로 불렸다고 했는데, 이전 고려시대에는 치소 역할을 하는 성을 지칭할 때 □□현(縣)·군(郡)·진(鎭)·부(府)성(城), □주(州)성(城) 등이 사용되었다고 했는데, 고려 공양왕 2년에 청주성(淸州城)에 물난리를 겪었을 때 청주성 내 관사(官舍)가 물에 잠겼다는 기록을 통해 관사(官舍)가 있는 곳은 치소성이 틀림없다고 하면서 다만 치소(治所)와 치소성(治所城)의 차이를 두어 주 군·현 치소와 달리 속현에도 치소성(長吏의 官府인 邑司)을 두어 주군현과 속현의 치소차이를 달리 구분하였다’고 한다.
고려 말 이전 치소가 위치한 성(치소성), 즉 읍성은 대개 평지에 축조되거나 평지와 구릉을 연결하여 쌓는 등 기본적으로 평지를 토대로 축조되었다. 이와 달리 치소성은 속초성 처럼 평지에 연접한 높지 않은 산에 위치하고 있었다. 또한 읍성은 외관청(外館廳)이 위치한 성으로 접한 높지 않은 산에 위치하고 있었다.
또한 읍성은 외관청(外館廳)이 위치한 성으로 지방관(地方官)이 파견된 주현(州縣)에만 설치된 반면, 고려시기의 치소는 향리(鄕吏)층의 집무소(執務所)인 읍사(邑詞司를 의미하였고, 치소성은 주현과 속현 구분 없이 설치되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읍성은 일부 주현에만 설치되어 있었고, 이러한 읍성들조차 하삼도와 강원도 연해 지역 및 북쪽 국경 지대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와 달리 치소성은 주현과 속현, 양계와 남도 지역의 구분 없이 일반적으로 분포하고 있었다고 한다.
또한, 『조사자료』에 소개된 각종 성지 중 영동지역의 장안성(長安城)으로 표기된 곳은 대부분 강릉지역에 위치한 것으로 예국(濊國)시대의 성지로 추정되거나, 명주성의 경우, 신라통일기 때부터 설치·운영되어 오던 명주호족(溟州豪族) 김주원(金周元, 태종 무열왕의 아들 김인문 또는 김문왕의 6대손)의 성(城)으로 모두 군장국가나 한 주의 치소성 또는 호족의 거관(居官) 등으로 사용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계속>
정상철
속초문화원 부설
속초시향토사연구소 연구위원
<북쪽해안에서 바라본 속초리성지(출처 : 속초감리교회80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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