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게 공간 늘리고 독립출판물 섹션 신설
공책·엽서·연필 등 자체 제작 엠디상품 진열
‘대화의 공간 프로젝트’ 강연프로그램 기획
속초 중앙로에 위치한 문우당서림은 지난 1년여에 걸쳐 여러 가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건물 외관이 바뀌었고 내부 공간 배치와 인테리어도 달라졌다. 그리고 시각적인 측면을 넘어 유명 저자들의 강연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짧은 시간 동안의 이런 다양한 변화와 새로운 시도의 진원지는 어디일지 궁금증이 들게 한다. 그런데 그 흐름의 중심에 20대 여성이 위치하고 있다면 사람들이 쉽게 믿을 수 있을까?
서울에서 시각디자이너로 일하던 문우당서림의 이해인 디렉터는 재작년 가을에 서울 생활을 뒤로 하고 고향인 속초로 돌아왔다. 문우당서림의 눈에 띄는 변신은 이해인 디렉터의 귀향과 시기적으로 일치한다.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이해인 디렉터는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취직해 브랜딩, 패키지 디자인, 폰트 제작 등 3년 정도의 시간 동안 디자이너로서 실무경험을 쌓았다. 혹자는 3년이라고 하면 겨우 초보 딱지나 떼는 정도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더 많은 배움과 모색의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일천해 보이는 20대 청년이 세계적인 기업을 일궈내는 경우도 있는 것을 보면 시간의 길이만으로 한 사람의 경험을 쉽게 재단할 수는 없다. 이해인 디렉터의 실무 추진 상황을 보면 그도 시간의 길이만으로 가늠할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한 것으로 보인다.
서점 곳곳의 변화들
이해인 디렉터는 서울 생활에 지쳐 도망치듯이 속초로 돌아온 것이 아니다. 그에겐 디자이너로서의 일도 재밌었고 서울 생활도 즐거웠다. 단, 누구나 그렇듯 직장생활의 애로사항은 있었다. 회사원으로서의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의견을 쉽게 표출하기보다 고객의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어서 개성적인 디자이너는 자칫 이런 상황에서 크게 좌절할 수 있다. 이해인 디렉터는 좌절감을 맛본 것은 아니지만 약간의 피로감을 느끼고 재충전을 하려고 하던 때에 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부친인 문우당 이민호 대표가 이해인 디렉터에게 문우당서림의 리모델링을 위한 디자인을 맡겼다. 쉬려고 하다가 오히려 더 큰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이해인 디렉터가 문우당에서 일을 시작한 이후 서점에는 많은 것들이 더해졌다. 전적으로 이해인 디렉터만의 공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상당 부분 그의 역할이 컸다. 서점을 방문한 이들이 쉴 수 있는 휴게 공간이 늘었고 독립출판물 섹션이 신설됐다. 독립출판물 각각의 표지에는 이해인 디렉터가 직접 손으로 쓴 소개 글이 붙어 있어 아기자기한 느낌을 준다. 1층에서 2층으로 이어지는 공간의 벽면에는 책에서 뽑아온 여러 가지 글귀가 적힌 판들이 책장을 메우고 있어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엠디상품 섹션도 신설됐다. 여기에서는 공책과 엽서, 연필 등 문우당서림이 제작한 상품들이 진열 중이다. 이 상품들의 디자인은 깔끔하고 단순하다. 그래서 더 멋스럽고 서점에 개성을 더한다. 그리고 서점 곳곳에는 이해인 디렉터의 디자인 감각이 담긴 소품들이 자리하고 있다. 문우당이 제공하는 책갈피 하나는 여섯 조각으로 나눠서 사용할 수 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엿보인다.
‘대화의 공간 프로젝트’라는 강연프로그램은 이해인 디렉터가 역점을 두는 사업이다. 지금까지 여러 저자들이 문우당을 찾았고 지난 1월에 있었던 물리학자 김상욱 박사의 강연에서는 내방객들이 자리가 없어서 책장 사이에 서서 들을 정도로 큰 성황을 이루기도 했다. 강연프로그램에서 이해인 디렉터는 섭외, 홍보, 포스터 제작, 진행 등 여러 일들을 맡고 있다. 김상욱 박사는 지난번 강의에서 이해인 디렉터가 보낸 섭외 이메일이 도저히 강연을 거절할 수 없을 정도의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요즘 한창 바쁜 유명인이 거절할 수 없을 정도의 이메일이 있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의 문장력과 진심어린 자세를 충분히 짐작해볼 수 있다.
속초에서 하고 싶은 일 많아
문우당의 변화는 서점을 찾는 고객의 구성도 변화시켰다. 이전보다 젊은 층이 많아졌고 먼 타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일부러 서점을 들르는 경우도 늘었다. 이는 ‘속초 서점 투어’와 연결된다. 문우당 인근의 ‘동아서점’, 속초시외버스터미널 뒷골목의 ‘완벽한 날들’ 같은 서점과 더불어 문우당에도 젊은이들의 발길이 늘고 있는 것이다.
문우당의 변신에 대한 고객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고객들이 이런 이야기를 이해인 디렉터에게 들려줄 때면 이해인 디렉터는 큰 힘을 받는다.
이해인 디렉터가 문우당에서 일한 이후 서점의 매출도 늘었는데 이 또한 이해인 디렉터가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더욱 열심히 하게 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 이해인 디렉터는 오후 10시에 퇴근하고 집으로 가서 서점에 필요한 디자인 등의 업무를 위해 새벽까지 몰두한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없다. 서점, 나아가 우리 지역을 조금씩 바꿔간다는 생각이 그의 열정을 더욱 크게 만들어준 것이다.
이해인 디렉터는 속초로 돌아올 때 계속 속초에 있을 생각을 뚜렷하게 하고 내려 온 것은 아니다. 그저 부친의 디자인 요청을 해내기 위해 온다는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1년여의 시간은 그의 생각을 바꿨다. 그는 앞으로 속초에서 하고 싶은 일들이 많다. 더 잘 바꿔보고 싶어서 그동안 미뤄뒀던 서점의 인테리어도 새롭게 해내야 하고 서점 업무 체계화를 위해서도 노력할 생각이다.
“사람들이 서점을 잘 이용하는 것을 목표로 변화를 추구할 생각입니다. 지역의 특색을 담은 서점, 기존의 서점에 대한 고정된 인식의 틀을 깨는 그런 서점을 만들어 가고 싶어요.”
한 20대의 청년이 지역에 좀 더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이광호 객원기자 campin@hanmail.net
문우당서림 이해인 디렉터.
이해인 디렉터는 문우당서림의 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서점의 곳곳에서 그 변화상을 확인할 수 있다.
독립출판물 각각의 표지마다 이해인 디렉터가 직접 쓴 소개 글이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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