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 먼 그때, 그 아버지는 끝내 아버지였습니다.
이제 집안 한 구석, 박스 같은 아버지
눈물도 먼지가 되는 짐승 되어
볕도 빛도
말도 밥도
잘 들지 않는 컴컴한 구석의 아버지
어느 여름 소나기 퍼붓던 날
조금 더 부지런히 감자를 캐자고 크게 한 번
소리 질렀을 뿐인 아버지
감자 꽃 피었다지는 딱 그 시간만큼 아버지였던 아버지
그러나 이제 편리한 아버지 되어
집에 있으라면 집에 있고
밖에 나가라면 밖으로 나가는
편리한 아버지 되어
찬밥 맨밥 식은 밥 남은 밥
그저 편리한 아버지 되어
어느 겨울 연탄 나르던 날
가까이 오면 검댕 묻는다고 애타게 한 번
소리 질렀을 뿐인 아버지
연탄불 활활 하던 그 딱 그 시간만큼 아버지였던 아버지
식구들 계다, 회다, 모임이다 집을 비워도
도무지 껌껌한 구석에서 나올 줄 모르는
아버지는
참 편리한 아버지는
·2001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집 <아버지, 액자는 따스한가요>
박대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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