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지인들 화마와 사투…용촌 홍와솔마을 전소 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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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설치한 소화전으로 물 뿌리며 불길 저지…22채 중 4채 불타

등록날짜 [ 2019년04월15일 09시40분 ]

“불길이 순식간에 집 앞 산과 마당, 지붕으로 쏟아지는데 소방차를 기다릴 시간이 어디 있어요. 그냥 닥치는 대로 불길을 잡느라 밤이 새는지도 몰랐어요.”
지난 9일 고성군 토성면 사진 용촌2길 홍와솔 전원마을(회장 강응도)에서 피해상황을 살펴보던 이 마을 주민 박란준(68) 씨는 다시한번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사흘 전 화마가 휩쓸어 다급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속초고에서 가까운 이 마을은 지난 2015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전원주택단지로 이번 산불로 22채 중 4채가 전소돼 숯덩이로 변했다. 인근 펜션들 역시 옛 모습은 흔적조차 찾지 못할 만큼 초토화돼 버려 그날의 상황이 얼마나 다급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위급한 상황에서 홍와솔 마을을 끝까지 지켜낸 것은 슈퍼 히어로도 아닌 평범한 마을 주민들이었다.
박 씨 외에도 속초에서 ‘피자헛’을 운영하는 마을 주민 김창남(49) 씨, 그의 지인 고경남·손승태 씨, 교동에서 ‘이가왕돈까스’를 운영하고 있는 마을 주민 이승현(49) 씨 등 5명이 남아 마을 전체가 전소되는 위기를 모면케 했다.
지난 4일 8시 무렵. “원암리에서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들은 지 채 10여 분도 안 돼 밖을 나와 보니 이미 불길이 마을 뒷산까지 번지고 있었어요. 바람이 어찌나 거세게 부는지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 정도였죠.” 박 씨에 따르면 불길이 바람을 타고 날아와 건물에 붙으면 폭탄 터지듯 순식간에 화염으로 휩싸여 버렸다.
이 마을은 지난달 공동경비로 설치한 옥외 소화전이 있었다.
같이 불을 껐던 고 씨는 “산 능선을 타고 내려오는 불길을 저지하기 위해 옥외 소화전을 끌고 가는데 소화전이 너무 무거워 끌 수가 없었다. 겨우 끌어다 물을 뿌리며 불길이 내려오지 못하도록 방어선을 만들었다. 전소된 집 가운데 두 달 전 완공된 집은 정말 살려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쉽고 미안하다”고 했다.
정작 홍와솔 마을을 살린 고 씨는 본인 소유의 원암리 산의 시가 10억여원의 나무가 이번 산불에 불에 타 안타까움을 더했다.
고 씨는 “둘 다 구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어쩔 수 없지 않나. 누구라도 했을 일”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만약 이들의 용기와 노력이 없었다면 홍와솔 마을 전체가 한줌의 재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마을 주민 장모(39)씨는 “너무 다급한 상황에 애들 챙기느라 강아지도 못 데리고 나왔다. 집이 무사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마을 전체가 전소될 위기에 이 분들의 노력으로 삶의 터전을 지킬 수 있었다”고 고마워했다. 우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