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고성에서 발생해 강풍을 타고 속초로 번진 산불이 속초 도심 아파트밀집지역을 위협하면서 주민대피령까지 내려지자, 주민들이 극도의 불안감을 나타내고 있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임야와 산림과 인접한 마을에만 피해를 주던 산불이 이번에는 속초 도심 아파트밀집지역까지 접근해 도시가스 공급이 중단되고 많은 시민들이 한 밤 중에 대피하는 소동까지 빚어졌다. “강한 바람만 불면 불안하다”며 시민들의 불안감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속초시에 따르면 고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속초 시내 아파트 일대로 번지기 시작한 지난 4일 오후 10시 40분 노학동 ‘삼환아파트 주민들은 즉시 교동초교로 대피하라’는 안내문자가 전달됐다.
이어 10여분 뒤인 오후 10시 52분엔 주민대피령이 노학동과 교동 아파트밀집지역으로 확대돼 ‘교동택지, 럭키·명지미래힐·현대·동부아파트 주민들은 교동초교로 대피하라’는 문자가 전송됐다.
오후 11시 40분에는 늘푸른, 현대3차, 협성, 삼호, 동부, 설악현대, 씨티프라디움, 삼환아파트 등의 도시가스 공급마저 차단됐다.
38가구 102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산림 180ha가 불에 탄 2004년 청대산 산불 당시에는 불길이 지나간 청대리와 온정리 등 농촌마을 주민들만 대피했었다. 이후 발생한 산불도 대부분 임야와 산림 인접 주택에만 피해를 줬을 뿐, 이번과 같이 아파트밀집지역을 위협한 적은 처음이여서, 속초 도심 주민들이 느끼는 공포감은 여느 때보다 훨씬 더 컸다.
교동과 노학동 일대 아파트단지에 주민대피령이 내려진 지난 4일 밤 대부분의 아파트 관리사무소와 일부 입주민들은 불씨가 아파트단지로 넘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옥내소화전을 이용해 아파트 건물 뒷산에 물을 뿌리며 바람의 방향이 바꾸기 시작한 다음날 새벽까지 화마와 사투를 벌여야 했다.
유덕칠 명지미래힐아파트 관리소장은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 아파트단지 쪽으로 불길이 내려오면서 입주민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며 “이에 입주민들에게 대피준비를 알리고 옥내소화전으로 불길이 아파트단지로 넘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총력전을 펼쳤다”고 말했다.
지난 9일 오후 이 일대 아파트 주변은 그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보여주듯 산림과 인접한 아파트 경계 옹벽 바로 앞 지점의 임야 등이 대부분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문제는 산불이 아파트밀집지역으로까지 접근하면서 주민들의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9일 오후 한 아파트단지에서 만난 여성입주민은 “7년 전에 이 아파트로 이사와 살고 있는데 주민대피는 처음이어서 너무 무서웠다”며 “이제 강한 바람만 불면 불안하다”고 했다.
바로 옆 아파트단지의 입주민은 “지금까지 산불이 나도 남의 일로 생각했는데 속초 도심 아파트까지 불길이 번져 한 밤 중에 대피소동을 벌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지금도 뻘건 불길이 아파트 주변으로 번지던 그날 밤을 생각하면 두렵다”고 했다.
이번 산불로 시내 다른 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도 ‘우리 지역에도 똑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며 두려워하고 있다.
이날 주민대피를 위해 산불지원현장에 투입됐던 한 속초시 여성공무원은 “집에 어린 아이들 밖에 없어서 조양동까지 산불이 번지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했다”며 “우리 아파트도 산림과 인접해 있어 언제 이런 일이 발생할지 몰라 불안하다”고 했다.
김두영 동부아파트 관리소장은 “아파트밀집지역에 주민대피령이 내려지면서 대피하는 주민들과 차량들이 뒤엉켜 한마디로 아비규환이었다”며 “이제 도심 아파트밀집지역도 대형산불로부터 안전지대가 아닌 만큼, 아파트단지 외곽에 옥외소화전이 설치돼 산불진화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고명진 기자 mjgo9051@hanmail.net
지난 4일 고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속초시 노학동과 교동 아파트 밀집 지역으로까지 번지면서 아파트 건물 뒤 야산이 불길에 휩싸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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