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 끝에 속초수협 옛 건물이 존치된다. 시민들의 의견을 존중한 민주적 결정에 박수를 보낸다. 보도에 따르면 수협건물에 청년몰 등의 입주가 이야기되고 있다. 속초수협 건물을 앞으로 어떻게 활용해서 속초의 랜드마크로 활용할 것인지 역시 좀 더 다양한 의견을 모으는 민주적 과정이 필요하다.
먼저 속초수협이 자리하고 있는 위치의 가치이다. 그곳은 독특한 지형과 역사를 간직한 속초의 심장이라고 할수 있다. 갯배와 청호동, 실향민 그리고 수산업과 어부라는 스토리가 촘촘하게 얽혀 있는 속초시민의 땀과 눈물이 젖어 있는 살아 숨 쉬는 역사공간이다.
향토사를 연구하는 엄경선에 따르면 갯배는 우리가 통상 알고 있는 것보다 앞서 일제시대부터 나룻배식으로 다녔다고 한다. 이후 6.25 전쟁통에 피난민이 내려오면서 갯배는 지역의 중요한 교통수단이 되었고 그 일대는 속초어업의 핵심 역할을 했다. 만선의 배들이 퍼 내리는 싱싱한 생선의 퍼득임이 어판장을 데우면서 새벽 경매소리가 희망의 메시지로 들리던 시절 고단한 어부들은 그 언저리에서 술 한 잔으로 고된 노동의 피로를 풀었다. 그 곳은 희망을 말하던 자리였다. 속초수협 자리는 엄연한 속초역사의 시간적 공간적 함의를 모두 담고 있는 곳이다. 수협건물을 살린다는 것은 속초사의 명맥을 유지하는 일이고 그러기에 리모델링에는 그와 같은 숨결이 내재되는 작업이 뒤따라야한다.
독일 항구도시 함부르크부두에 창고건물을 재생해서 엘프 필하모니로 탄생시킨 사례는 속초수협이 참고할만한 하다. 비릿내 진동하던 부두 창고건물을 놓고 철거냐 존치냐의 오랜 논란 끝에 함부르크시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그 과정이 무려 10여년 걸렸다. 지금은 함부르크의 랜드마크이자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다. 지난번 G20 행사도 그곳에서 열렸다.
창고건물 아래 부분은 그대로 살리고 상부를 증축해서 오페라 하우스, 호텔 등 복합건물로 재탄생한 엘프 필하모니는 함부르크의 풍광에 새로운 메시지를 부여했다.
속초수협건물의 가치는 그에 못지않은 역사성과 위치성을 갖고 있다.
속초수협 옥상에서 바라보는 설악산과 청초호 조망은 비교대상이 없을 만큼 강렬하다. 그곳에서 정기적으로 연주회가 열리고, 속초수산업과 어부들의 전시회가 열리고, 품격 깊은 강좌가 열린다고 상상해보라. 그냥 갯배만 타고 돌아가던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을 수 있을 것이다.
수협과 갯배 그 일대를 하나로 묶는 문화공간으로 확장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러한 작업의 일환으로 그 일대를 워킹 존(Walking Zone)으로 만드는 작업도 필요하다. 수협건물과 갯배 나루터 그리고 중앙시장으로 이르는 동선을 차량진입을 통제해서 사람들이 편안하게 걷고 향유하는 자유지대로 전환시킬 필요가 있다. 청초호 둘레길도 그런식으로 연결해 나가면 좋을 것이다. 관광객들이 머무는 시간을 길게 가져가는 접근법이다.
속초 도심 부활의 시발점이 이곳이다. 이 지역을 살리지 못하면 속초도심의 활성화는 어려운 과제가 된다. 도시의 가장 핵심적인 장소에 포인트를 주지 못하면서 도심재생 전략을 구사한다고 한들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속초수협의 정체성 있는 재생은 그 점에서 속초발전 전략의 중심축이라고 할 수 있다. 그걸 기점으로 해서 공동화의 위험을 안고 있는 속초도심에 훈기가 도는 풍선효과도 나타날 것이다.
창년창업 공간을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스토리가 있는, 문화가 숨 쉬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청년창업도 산다. 상권이 좋아야 개별점포도 잘 되는 이치다.
수협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다양하고 풍성한 논의가 필요하다. 갯배라는 유일무이한 자원을 갖고 그 일대를 풍성하게 살려 속초의 랜드마크로 만들어서 지구촌 사람들이 속초관광의 목적지로 삼게 하는 설계도를 세심하게 준비하자.
신창섭
고성시민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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