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은퇴 이후의 삶을 ‘제2의 인생’이라 말한다. 그런데 여기 ‘제2의 인생’을 넘어 ‘제3의 인생’을 살아가는 이가 있다.
속초시 기획감사실장으로 재직했던 한응범 옹. 그는 퇴직 이후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대학 강단에 서며 인생 2막의 길을 걸었다. 관광경영을 전공하고 강원도립대, 청주대, 강동대 등에서 15년가량 학생들을 가르쳤다.
팔순의 한응범 옹은 몇 해 전부터 또 다른 삶을 살고 있다. 한 옹이 보여주는 ‘주간 시간계획’에는 검도, 태권도, 영어, 중국어, 합창, 노래교실 등 여러 일정이 요일별로 가득하다. 검도와 태권도는 육체 건강을 위해, 외국어 공부와 노래교실은 정신 건강을 위해서 꾸준히 해오고 있다.
한 옹이 건강관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부친의 요절에서 비롯됐다. 해방 이후 월남한 그의 부친은 마흔에 암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10대에 부친을 잃은 한 옹은 평생을 건강에 유의하며 살아왔다. 신앙생활을 하며 술, 담배를 하지 않았고 공직 생활 중에도 꾸준히 정구와 수영으로 건강을 유지했다.
이렇게 주의를 기울였어도 몸이 크게 좋지 않던 때도 있었다. 60대에는 척추관 협착증으로 수술을 두 번 받았다. 허리와 다리가 좋지 않으면 활동량이 현저히 줄어드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한 옹은 꾸준한 운동으로 자신을 단련했다. 아직도 이따금씩 허리와 다리에 통증이 있지만 한 옹은 이에 굴하지 않는다.
“아파도 움직여야죠. 계속 움직여서 아픈 걸 잊어버려야 해요. 내가 내 몸을 챙겨야지 누가 내 몸을 챙기겠어요. 힘들고 짜증나도 운동을 멈출 수 없죠.”
몇 해 전에는 뇌경색으로 입원해야만 했는데 신속한 대처로 극복할 수 있었다. 뇌경색으로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 강릉의 병원을 찾았던 한 옹은 더 큰 병원으로 가라는 의사의 말에 그날 바로 서울의 한 대형 병원으로 직행했다. 며칠 동안 몸을 움직이지 못하던 한 옹은 3개월 동안 치료를 받은 후에 병상을 벗어날 수 있었다. 건강을 겨우 회복한 한 옹은 움츠러들기보다 운동을 선택했다.
태권도는 2015년에 시작했다. 한 옹은 평소에 알고 지내던 속초시태권도협회 이광익 고문(올해 속초 시민의 날 ‘자랑스러운 시민상’ 교육학술·체육 부문 수상자. 태권도 9단.)에게 지도를 부탁했다. 이 고문은 이에 흔쾌히 응해 한 옹의 건강 상태에 맞는 적절한 방식으로 지도했고 한 옹 또한 여기에 잘 적응했다.
한 옹의 태권도 수업은 날씨가 좋지 않은 날이 아니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진행된다. 고령의 어르신이라고 해서 대충 할 것이라 생각하면 금물이다. 1시간 동안 스트레칭, 구보, 샌드백 타격, 완력기 운동, 품새 등을 빠지지 않고 실시한다. 현재 1급인 한 옹은 내년에 1단에 도전할 예정이다.
외국어 공부는 치매 예방을 위해서 하고 있다. 복지관과 주민센터에서 수업을 듣고 집에서 컴퓨터와 휴대폰으로 자습한다. 그리고 마치 수험생처럼 그날 공부한 것은 노트에 꼼꼼히 기록하며 복습한다.
한 옹의 건강관리 목록에는 이것 말고도 더 있다. 반년마다 한 번씩 아내와 함께 딸이 간호사로 근무 중인 서울의 대형 병원에서 종합검진을 받는다. 비타민 외에 건강보조식품은 먹지 않는다. 약사와 간호사인 딸들이 건강보조식품의 역기능을 알려준 이후 이렇게 하고 있다.
80세의 한 옹은 특별한 지병이 없고 목소리에도 생기가 가득하다. 인터뷰를 마치는 한 옹은 미소를 띠며 건강한 기운을 한 번 더 발산한다.
“100살은 못 살더라도 90까지 못 살면 억울하지요. 사는 동안 주위 사람들을 사랑하고 배려하고 싶습니다.” 이광호 객원기자
한응범 옹(왼쪽)과 이광익 속초시태권도협회 고문(태권도 9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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