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 말 황상기 대표의 딸 유미 씨가 1차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삼성전자의 직원이 삼성화재 한 부서의 전화번호를 알려 준 일이 있다. 삼성전자가 유미 씨 앞으로 암 보험을 들어 놓았는데 다른 병에 대한 보장은 없고 오직 암에 대해서만 보장이 있는 특이한 보험이었다. 황 대표는 당시에 이를 깊게 생각하지 않고 보험금을 받았지만 점점 이 보험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됐다. ‘젊은 사람을 대상으로 왜 회사가 암 보험을 들었을까’, ‘회사는 유미 씨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암에 걸릴 수도 있다고 미리 알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황 대표의 의문은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아직 명확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유미 씨의 발병 초기 황 대표는 딸에게 갑자기 중병이 닥친 것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딸에게 회사생활이 어땠는지 물었고 딸의 작업 환경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가기 시작했다. 황 대표는 딸이 반도체를 화학약품에 담갔다 빼는 일을 한 것에 주목했고 유미 씨가 다뤘던 화학약품이 백혈병 발병에 영향을 준 것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문을 품게 됐다.
유미 씨 골수이식수술
유미 씨의 2차 항암치료는 2005년 8월 중순이었다. 당시 유미 씨가 입원해 있던 아주대병원으로 삼성전자의 한 과장이 며칠에 한 번씩 찾아왔었다. 어느 날 황 대표는 삼성전자의 과장에게 화학물질과 유미 씨 병과의 관련성을 얘기하며 산업재해 처리가 필요한 상황이 아닌지 물었다. 그런데 그 과장은 펄쩍 뛰듯이 반응했다. 그는 유미 씨가 했던 일과 유미 씨의 병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완고한 어조로 말했다. 과장이 이런 태도로 나오자 황 대표는 화학물질과 산재처리에 대해 그 자리에서 더 이상 얘기하지 못했다.
유미 씨가 2차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골수 이식이 결정됐다. 몸이 허약해진 유미 씨에겐 골수 검사를 받는 것도 무척 힘든 일이었다. 골반 뼈에서 골수를 채취하고 나온 유미 씨는 초주검 상태였다. 딸의 그런 모습을 보자 황 대표도 너무 고통스러워 눈물이 났다. 그리고 매우 안타깝게도 가족 중에는 골수이식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이 없었고 골수은행을 통해서 골수 기증자를 찾기로 했다.
2005년 12월 초, 유미 씨의 골수이식수술이 있었다. 수술 며칠 전 격리병실인 무균실에 미리 입원했던 유미 씨는 수술 후에도 1주일 정도 무균실에서 치료를 받았다. 무균실에는 환자의 보호자는 물론이고 의사와 간호사도 들어가지 못했다. 유미 씨와의 대화는 인터폰으로 이뤄졌고 진료와 간호도 마찬가지였다.
백혈병 진단받은 동료 숨져
유미 씨의 퇴원 후 황 대표와 가족들은 유미 씨 간호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매일 집을 소독하고 이불을 햇볕에 말렸다. 유미 씨는 맵고 짜고 뜨거운 것을 먹을 수 없어서 가족들과는 별도의 음식을 먹어야 했고 유미 씨가 사용한 식기는 매번 소독했다. 유미 씨가 춥지 않도록 난방도 따뜻하게 했는데 그 때문에 난방비도 꽤 많이 들었다.
유미 씨는 항암 치료 때문에 속이 울렁거려 잘 먹지 못했다. 그리고 한 주에 한 번 정도 병원 진료를 받으러 가는 날 외에는 외출도 하지 못하고 집에 머물려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유미 씨는 기분이 우울한 상태가 계속됐다. 가족들은 그런 기분을 털어버릴 수 있도록 유미 씨가 집중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비즈 공예 책을 사와서 유미 씨가 하도록 권했다. 유미 씨는 인터넷을 찾아보며 구슬을 꿰어 귀걸이·목걸이를 만들었고 소원을 빌며 종이학을 접었다.
당시에는 자택을 수리하기 전이라 집에서 목욕이 쉽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가끔씩 온천장 객실을 빌려 딸이 편하게 씻을 수 있게 했다. 그런데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라 가끔씩 이렇게 하는 데에도 비용 부담이 컸다. 또한 유미 씨가 목욕을 하기 전에 온천장 객실 욕조를 꼼꼼히 씻어내야 해서 황 대표가 고생을 했다. 유미 씨가 목욕을 하고 나면 황 대표는 딸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아내, 그리고 딸과 함께 드라이브를 다녔다. 다음해 봄에는 꽃이 핀 곳을 찾아다녔고 유미 씨는 이때 많은 사진을 찍어 자신의 미니홈피에 올렸다.
유미 씨가 힘들게 투병을 하고 있던 사이 또 다른 비보가 들려 왔다. 유미 씨와 동일 라인, 동일 베이에서 같은 일을 함께 하던 동료가 백혈병 진단을 받았고 진단을 받은 다음 달인 2006년 8월에 숨졌다. 그 동료는 유미 씨와 병명도 같았기에(급성골수성백혈병 M2) 황 대표는 작업 환경이 딸의 발병과 관련 있을 거라는 생각을 점점 더 강하게 하게 됐다.
<다음에 계속>
구술 황상기 반올림 대표
정리 이광호 객원기자 camp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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