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면서 견딜 수 있는 삶의 무게는 어디까지일까?”
고성군 죽왕면 구성1길에서 ‘조은사과농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윤태(63)·김명숙(60) 부부는 이 질문을 수없이 해왔다.
IMF로 인해 사업실패를 겪고, 이런저런 살궁리를 하다 고성에 자리 잡은 지 10년이 되어간다. 처음 몇 년간은 ‘돈이 된다’ 싶은 작물을 닥치는 대로 심어봤지만, 매번 큰 수확 없이 또 다른 작물을 찾아야 했다.
농사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던 김 대표 부부는 전국 각지로 발품을 팔아가며 교육을 받고 그렇게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농작물을 선별해 재배했고, 제법 농부의 폼을 갖춰 갈 때쯤 또 한 번의 시련이 닥쳤다.
바로 누전으로 인한 화재였다. 부부가 외출 후 돌아왔는데, 정말 숟가락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전소되어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잿더미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성에 내려와 처음으로 지은 ‘우리 집’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기가 막혔고, 가슴 속마저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잿더미에서 다시 꽃피운 희망
고성에 내려와 그간 흘린 땀과 눈물은 의미를 잃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해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왜 우리에게만 이런 시련이 닥치는 걸까, 하늘이 원망스럽고 또 다른 시작은 엄두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마냥 눈물만 흘리는 아내를 보며, 김 대표는 이대로 무너질 수 없다는 생각에 살길을 찾았다.
고성군에서 지원해 주는 농촌주택자금 6천만원을 대출받아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고, 당시엔 고성군에 전무했던 사과재배를 시작했다. 남들이 다 짓는 농사가 아닌 고성에서 희소성을 지닌 농작물을 찾다 보니 그것이 사과였다.
전국적으로 사과로 유명한 경상북도, 충청도를 찾아 사과재배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고, 고성의 기후에 맞는 품종을 찾기 위해 쉼 없이 달려왔다. 벌써 5년 전의 일이다.
태풍에도 사과 1.5톤 수확
그렇게 1헥타의 토지에 1,100주의 사과나무 묘목을 심고, 사과가 열리는 그날만을 고대하며 긴 인고의 시간을 견뎠다.
사과나무는 보통 묘목에서 5년 이상이 되어야 열매 수확이 가능하다고 한다. 최근 품종이 개량되면서 수확까지의 기간이 단축되긴 했지만, 아무런 소득 없이 5년을 견딘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화재로 가족의 추억이 담긴 사진 한 장까지 다 타버려,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먹먹해지지만, 김 대표 부부는 앞으로 살아갈 일만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과농장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그 결과 지난해 처음 사과 수확을 시작했고, 올해는 태풍 피해에도 불구하고 상품 가치가 있는 사과를 1.5톤 정도 수확해 판매하면서 수입이 생겼다.
“이제 대출 빚을 갚게 됐구나.” 그 간의 시름이 씻겨나가는 순간이었다.
사과 재배 희망 농가 도와
조은사과농원 김 대표는 현재 강원사과연구회 고성지회장을 맡아 지역 내 사과재배를 희망하는 사람들을 교육하고 정보를 제공하며, 자신이 겪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돕고 있다. 현재 고성군에 자리한 사과농장은 12곳. 모두가 김 대표의 노력으로 일궈 낸 또 하나의 수확이었다.
어제는 고달픈 삶이었다. 하지만 오늘 그리고 내일은 희망이었다.
내년엔 최소 5톤 이상의 사과 수확이 가능해 곧 억대 연봉의 성공신화를 현실화시킬 수 있으리라 자신했다.
“우리 인생에 더 이상의 시련은 없다.” 김 대표 부부의 한결같은 다짐이다.
김 대표는 “7전 8기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고성에서 가장 힘든 시련을 겪었고, 또 이곳에서 재기의 희망을 꿈꾸게 되었다”고 말했다.
김미영 기자 nurugo@hanmail.net
조은사과농원 김윤태 대표 부부가 사과농장을 배경으로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올해 사과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씨알 좋은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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