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이라고 하면 보통 편안한 리조트에서 보내는 낭만적인 휴식을 떠올린다. 그런데 여기 신혼여행으로 극한의 오지에 다녀온 사람이 있다. ‘설악아씨’로 알려진 속초 출신의 문승영 씨다. 그는 최근 자신의 히말라야 신혼여행 경험을 담은 책, <함께, 히말라야>(푸른향기)를 펴냈다.
‘오지여행가’라고 적힌 명함을 내미는 사람의 눈매가 예상과 다르다. 산악인이면 강인한 인상일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자신의 여행 경험을 풀어놓는 모습은 밝고 유쾌하다. 산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이면 트라우마가 생길 법도 한데 히말라야에 대해 한참을 말하는 동안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히말라야 13좌 트레킹
고성에서 나고 속초에서 자란 문승영 씨는 20대 후반에 산의 매력에 빠진 후 인생이 달라졌다. 어린 시절, 설악산이 가까워도 자주 가본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대학 졸업 후 서울에서 입시학원 강사로 일하던 어느 날 태백산에 올랐다가 큰 성취감을 느꼈다. 그는 그날 아이젠도 없이 눈길을 올라간 것에 뿌듯함을 느꼈다고 한다. 고교 시절 카누 선수로 활동하는 등 운동에 자신 있던 그는 이후 전국의 산이란 산은 다 찾아다녔고 해외로까지 발걸음을 옮겨 말레이시아 키나발루 산,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산에도 다녀왔다. 히말라야에는 30대 초반인 2011년부터 가기 시작해 14좌(8,000m급 봉우리 중에서도 특히 높은 봉우리 14곳) 중 13좌를 트레킹 했다.
문승영 씨는 등산의 재미를 느끼게 된 후 30대 초반에 학원을 관두고 본격적으로 오지여행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내일에 대한 기약 없이 그때까지 모아뒀던 돈으로 히말라야에 갔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주위에서 걱정 섞인 말을 했지만 그런 우려가 그의 결정을 바꾸진 못했다.
“젊은 시절 열심히 일해 돈을 많이 모아뒀어도 나이 들어서 아프면 어쩌죠?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고 싶진 않았어요.”
히말라야가 맺어준 인연
산은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게도 해줬다. 히말라야에서 만난 남편과는 2014년에 결혼했다. 결혼식은 그해 6월이었는데 신혼여행은 3월에 당겨서 히말라야에 갔다 왔다. 6월이면 우기인 몬순기간이라 히말라야 트레킹이 힘들어 그렇게 한 것이다. 이런 상황이면 굳이 신혼여행으로 히말라야에 안 갈 법도 한데 그는 너무도 당연한 듯 히말라야 신혼여행을 추진했다. 신혼여행을 히말라야로 가자는 말에 산을 좋아하던 예비 남편도 선뜻 동의했다. 평범한 이들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 이렇게 시작됐다. 그런데 전문 산악인이 아닌 남편은 막연하게나마 신혼여행이 쉬운 코스일 거라고 생각해서 동의를 한 것이라 한다.
<함께, 히말라야>는 그들의 드라마틱한 신혼여행 고생담을 담고 있다. 주인공 문승영 씨와 예비 남편, 가이드, 포터(짐꾼), 요리사, 이렇게 10여 명이 칸첸중가-마칼루-에베레스트 지역에 이르는 450km 거리를 연속 횡단한 41일의 기록이다. 그들은 여행 과정에 갖은 고생을 했다. 환상방황, 즉 온통 눈 천지인 곳에서 같은 장소를 맴도는 상황에 처한 적도 있다. 하루 종일 제대로 먹지 못했고 추위에 손발이 얼어붙었으며 험지라 텐트를 칠 공간을 확보할 수 없는 상태에서 노숙을 했다.
이 책은 저자의 고생담이 중심이지만 다른 이들에 대한 연민의 시선도 적지 않다. 힘든 여행에서도 그는 그와 함께하는 이들의 안위를 살피고 어려움을 보듬어주기 위해 애썼다. 스텝들의 찢어진 옷을 수선하고 동상 걸린 발을 치료해주고 다리가 불편한 포터에게 자신의 스틱을 건넸다. 문 씨는 자신과 함께하는 이들을 소중히 여기고자 했고 가이드를 포함한 현지인들을 항상 만국공통어인 웃음으로 대하고자 했다. 포터들과의 인연을 각별하게 여겨 처음 함께했던 포터와 이후에도 계속 같이 히말라야를 걸었고 트래킹 스텝들과는 계속 인연을 유지하고 있다. 책 제목 <함께, 히말라야>는 그들과 함께한 시간을 나타낸다. 그리고 책 제목에는 좀 더 깊은 의미도 담겼다.
문승영 씨에게는 네팔에 딸이 있다. 직접 낳지 않았지만 문 씨가 결혼하기 전부터 관계를 맺었던 딸이다. 문 씨는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저개발 국가들을 여행하면서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많이 만났다. 그는 저소득 국가에는 으레 그런 사람들이 많겠거니 생각하지 않았고 그들을 도울 방법을 고민해왔다. 그에게 네팔인 딸이 있는 이유도 이러한 생각의 연장에서 결정한 일이다.
문 씨는 히말라야에 갈 때면 옷을 사고 깨끗한 중고 옷들을 기증받아 보따리를 한가득 챙겨 가서 현지인들에게 나눠준다. 추운 곳에 사는 이들이 옷을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한 것을 마음 아프게 여겨 이렇게 하고 있다.
<함께, 히말라야>에서 ‘함께’는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뜻이다. 문승영 씨는 앞으로 오지여행뿐 아니라 저개발 국가 사람들의 생활 개선 활동에도 노력을 기울일 생각이라고 한다. 장기적으로는 재단 설립도 염두에 뒀다.
“아직은 제 힘이 부족해도 뜻을 두고 열심히 하다보면 언젠가 될 거라 생각해요.”
미래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신의 길을 꿋꿋하게 걸었던 것처럼 문승영 씨는 다시 새로운 길 앞에 서 있다. 그 길이 쉽진 있겠지만 표정은 환하고 자신감으로 가득하다.
이광호 객원기자 camp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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