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란 가슴 절절하고 떨리는 느낌의 꽃잠 같다. 연분홍 빛 희망을 가지려 하지 않아도, 우월하게 꾸미지 않아도. 맨 민낯이 오히려 모두에게 아름다워 허사스러운 것이 없는 봄이니까, 봄답게, 그렇게 누구더라도 설레게 하기 때문이다. 봄은 흙의 살갗이 온통 푸르른 바다와 같아서 호사로운 춘색(春色)타령이 먼저라지만, 보리밥에 나물반찬이라도 꿀같이 달고 그리운 맛이 날 때가 봄이기도 하다. 그래서 봄철, 풋것의 파릇한 잎사귀만 봐도 입맛이 꽃잠처럼 절로 설렌다. 특히 봄의 음식은 양념이 사치스럽지 않아도 별맛이 난다. 요즘 들어 밥상이 품은 봄의 품격을 넌지시 가늠하는 일도 여간 즐거운 탐식의 일상이 아닐 것인데, 밥상의 둘레가 온통 봄 천지라면 꽤나 기대가 되는 봄의 음식이 아닐까 싶다.
예쁜 정원 있는 카페 같은 곳
이러한 의지대로 눈 여겨 봄직한 작은 풍경 하나쯤 밥상의 배경이 되어 준다면, 소탈한 음식 일지라도 제 값 이상의 두둑한 품격을 갖게 되기 마련이다. 속초 학사평 순두부촌 마을에 이만한 기대감을 곁들여도 괜찮을 곳이 숙모네토종닭(T.637-8475)이다. 마당에는 여전히 봄으로 가득 차 있는데, 이런 곳이 있었나 싶게 두리번거리게 한다. 도로 양쪽으로 온통 음식점들이 늘어선 마을에서 유일하게 사치도 억지도 없는 마당의 정원이 봄의 느낌 그대로이고 작은 정원이 있는 카페를 닮아 있어 예쁘기 때문이다. 더욱이 ‘금봉대’라는 정자에 오르면 봄 햇살 가득한 설악 능선이 앞을 에두르는데, 이도 부족해 점 하나 찍듯 눌러 앉은 울산바위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니, 삼국지의 영웅 조조가 문인들과 연회를 베풀며 문학과 예술을 즐겼다는 풍류의 정자 ‘금봉대’란 이름을 붙일 만하게 풍경이 값진 곳이다.
이곳의 음식 또한 올망올망한 풍경만큼이나 기대를 하게 되는데, 윤혜숙 대표가 ‘능이닭백숙’과 ‘능이오리백숙’을 주력 메뉴로 하고 있다. 마을이 온통 순두부 음식들인데, 어찌하여 백숙메뉴를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 물으니, 닭고기와 오리고기를 유달리 즐겨 먹었던 입맛 때문이라는 단호한 대답에 음식에 대한 기대도 커진다.
흑미찰밥·감자 넣고 걸쭉하게
이곳 ‘능이닭백숙’과 ‘능이오리백숙’은 방목 사육한 닭과 오리고기를 사용하고, 육수를 미리 만들어 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뜻 특징이랄 만한 이유가 못되지만, 육질의 질감은 고기는 뜯어야 제 맛이라는 말을 공감하게 하고, 자박하게 남은 육수 국물은 진하게 우려낸 사골국물과도 같아, 국물 한 사발이 오히려 고기만큼 보양이 된다. 주문시간으로부터 꼬박 1시간 동안 센불, 중불, 약불을 오가며 엄나무, 구찌뽕나무, 능이버섯 등의 약재와 함께 오리고기나 닭고기를 바로 넣고 고아 내듯 삶아 내는 것이 윤 대표만의 비결이기도 하다. 무조건 푹 삶는 것이 아니라 보약 다리듯, 불 조절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데, 먹는 방법도 조금 색다르다. 보통 백숙을 흥건하게 뜯어 먹은 후에야 남은 국물에 찰밥을 풀어먹는 반면, 이곳에서는 백숙을 뜯자마자 흑미 찰밥과 통감자를 국자로 꾹꾹 눌러 풀어 국물이 걸쭉해지도록 권하고 있다. 마치 걸쭉하게 고아 낸 뽀얀 사골국물에 곱게 쑨 죽 같다. 이렇게 고아 내듯 끓여 낸 닭백숙도 그렇지만 ‘능이오리백숙’의 육질은 소고기 부위 중에서 육질이 치밀하고 단단한 양지살과 흡사할 만큼 식감이 유별나게 차져, 살짝 무른 육질감이 느껴지는 사육장의 비육 오리고기 맛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백숙에 곁들여진 찬품들도 웬만한 백반 집의 것이라 할 만하게 정갈하게 차려지니, 이래저래 봄 밥상의 품격이 제법 으뜸이라 할 만 한 곳이다.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금봉태에서 먹기좋게 오리백숙을 뜯고 있는 윤혜숙 사장
백숙 맛의 풍미를 돋궈주 듯 봄의 것이 모두 모여 든 숙모네 토종닭 마당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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