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 자라면서 봐오던 옛것들을 버리기 아까워서 하나 둘씩 모은 게 벌써 이렇게나 됐네요. 돈으로 따지는 가치보다는 그 속에 묻어 있는 세월과 정이 저에게는 더 소중합니다.”
요즘 핫한 곳으로 떠오른 양양 현북면 하광정리에서 하조대민속박물관을 운영하는 노현우(54) 대표는 시대와 함께 해온 옛 물건들이 사라져 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해 그동안 모아온 수집품을 전시해 지역주민과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앵두나무축제로 유명한 현북면 명지리가 고향인 그는 어려서부터 고유의 생활풍습을 이어온 가풍을 몸에 익힌 탓에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지 않고 늘 소중하게 모으는 게 습관이 됐다.
관람객들 과거로 여행
하조대민속박물관에는 노 대표가 어릴 적부터 함께 해온 나무 베개와 나무 쌀독 등 수집품이 수천 점에 이른다. 명지리에서 잔치 때면 누르던 떡살이나 나무 김치독은 족히 100년은 넘었을 정도로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원형 그대로 잘 보전돼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아낙들이 정겹게 얘기하며 떡을 누르고 김치를 꺼내던 과거로의 여행을 이끈다.
1980년대 생산한 라면이나 과자 박스와 초창기 벽돌까지 다양한 물건들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시간을 거꾸로 되돌리듯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다.
노 대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전시품들을 재배치하고 정성껏 닦아내며 애정을 쏟고 있다.
“지금이야 돈으로 편리하게 많은 것들을 살 수 있지만, 과거에는 없는 살림에 힘들게 생활용품을 마련해 아껴서 써야 했죠. 그래서 더 정겹고 함부로 버릴 수 없네요. 아마 세월을 버리는 게 너무 안타까워서 더 애잔하지 않나 생각해요.”
노 대표의 수집품은 시대로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물건부터 구한말과 한국전쟁, 근대화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해 이곳은 단순히 물건을 수집해 전시하는 곳이 아니라, ‘과거부터 이어지는 세월을 모으는 곳간’으로 가치를 더하고 있다.
고향 명지리로 이전 꿈꿔
노현우 하조대민속박물관 대표는 1988년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10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다, 1999년 귀향해 개인사업을 하면서 틈틈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들을 취미 삼아 수집해 왔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도 눈에 띄는 물건들은 어김없이 모았다.
그는 좋은 물건이 있다고 하면, 전국 어디든 마다않고 달려갔다. 그가 왕성하게 수집활동을 하다 보니, 주변 사람들도 옛날 물건이나 귀한 것들이 있으면 그에게 연락했고, 그에 합당한 대가는 반드시 치렀다.
“오래된 물건이라면 당연히 그 주인의 손때는 물론 마음이 담겨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정당한 값어치는 치러야 한다는 게 제 지론입니다. 많은 것을 수집하면서 많은 사람의 세월까지 덤으로 얻은 것이기에 이 일이 너무 행복하고 보람도 큽니다.”
그는 많은 이들에게 수집품을 보여주고 생활용품에 담긴 고유 전통문화를 이어가기 위해 지난해 자신의 집 한 곳에 하조대민속박물관을 오픈했다. 서핑으로 유명한 하조대 해변 요지에 위치한 이곳은 땅값만도 평당 1,000만원을 넘을 정도로 금싸라기지만, 그에게는 무엇보다 자신이 수집한 세월의 흔적을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관광객들은 전시품을 보며 과거 향수에 젖는다. 아이들에게 ‘옛날 물건’을 알려 주는 교육적 의미도 있고, 양양군의 전통문화를 알리는 홍보대사 역할도 하고 있다.
온고지신이란 말처럼, 노현우 대표는 민속박물관을 통해 옛 것을 소중하게 여겨 새로움을 찾아내는 데 남은 열정을 바칠 계획이다.
그의 고향인 명지리는 현대문화 속에서도 옛것을 보전하며 계승하는 생활풍습이 아직도 자리하고 있어 그에게는 작은 바람이 하나 있다. 어릴 적 뛰어놀던 너른 마당에 그동안 수집해온 물건들을 전시하고 물레방아도 만들어 누구나 와서 보고 체험할 수 있도록 민속박물관을 옮기는 것이다.
“하조대도 나쁘진 않지만, 청정한 숲이 있는 곳에 민속박물관이 있다면 도시민들에게 더 없이 좋을 것 같아요. 연못이나 물레방아도 보고 떡살로 떡을 찍어보는 특별한 체험도 할 수 있는 살아 숨 쉬는 박물관을 만들고 싶어요.”
손재주가 뛰어나 한시도 가만있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노현우 대표는 노을 진 하조대 해변을 바라보면서 어릴 적 자신이 꿈꿔왔던 일들을 차근차근 이루며 새로운 희망을 그려가고 있다.
김주현 기자 joo69523@hanmail.net
하조대민속박물관 노현우 대표가 자신이 수집한 물건들을 설명하고 있다.
하조대민속박물관에는 과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건들이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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