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년 견오백(紙天年 絹五百)’이란 말이 있어요. 비단이 500년의 영롱함을 자랑한다면 종이는 1천년간 향기를 머금는다는 의미죠.”
속초에서 한지공예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진향 작가(60)는 한지의 견고한 아름다움을 이 한마디로 표현했다.
흔히 조선종이라고도 불리는 한지는 닥나무의 껍질을 원료로 만든다. 닥나무를 베고, 찌고, 삶고, 말리고, 벗기고, 다시 삶고, 두들기고, 고르게 섞고, 뜨고, 말린다. 이렇게 아흔아홉 번의 손길을 거친 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정성이 모아져야 비로소 만들어지는 것이 한지다.
천연재료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자연이 가지는 질감을 그대로 가지고 있고, 곱고 질긴 성격이 있어서 한지로 만든 작품은 1,000년 이상 보존된다. 또 추운 겨울에 차가운 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박테리아 등의 미생물이 번식을 하는 것을 막아 세월이 갈수록 오히려 결이 고와진다고 한다.
한지공예는 이렇게 만들어진 한지를 이용해 천연염료로 색색이 물을 들이고 나무 또는 합지로 만든 골격에 수십 번 덧바르고 여러 겹을 붙이는 배접하는 과정을 거친다. 거기에 자신만의 문양을 새기고 붙여 비로소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
이 작가는 한지공예에 대해 느리고 손이 많이 가는 섬세한 작업이라고 한다. 정신을 집중해 작품에 몰두하다 보면 심신이 안정된다고 말한다.
“수강생 중에 시어머니 병간호로 우울증을 겪는 분이 계셨어요. 한지공예를 배우며 마음을 다스리듯 작업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덧 표정도 밝아지고 마음의 병도 치유되는 것을 곁에서 보며 보람을 느낀 적이 있죠.”
긴 세월을 은은하게 비추는 한지는 마음을 다스린 조상의 지혜로움과 슬기가 묻어 있다. 또 가볍고 실용적이라 버선장, 화초장, 갓집, 반짇고리 등 예로부터 실생활에 많이 사용되어 왔다고 한다. 책꽂이, 명함첩, 보석함, 바구니, 쟁반, 액세서리, 장롱 등 작은 소품에서 큰 가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활용품을 자기만의 스타일로 직접 만들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대학시절 의생활학을 전공한 이진향 작가는 퀼트, 십자수, 옷만들기 등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20년 전 고향인 대구를 떠나 속초로 오면서 무료함을 달래줄 취미활동을 찾던 중 우연히 접한 한지공예의 아름다움에 반해 시작하게 됐다.
이후 전통공예문화협회에서 발급하는 한지공예사범증과 한지인형사범증을 취득하고 지난 2002년부터 현재까지 속초교육문화관, 속초평생교육문화센터, 속초문화원 문화학교 등에서 한지공예 강사로 활동하며 지역주민들에게 한지공예를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지난 20일부터 6일간 속초문화예술회관 전시실에서 열린 제45회 한국미술협회 속초지부전 ‘설악의 산과 바다’에 공예품을 출품하기도 했다.
2011년 국제전통예술대전 특선, 2019년 제19회 대한민국한지대전 특선과 제20회 신사임당미술대전 최우수상 등을 수상했다.
이 작가는 “강의와 전시회, 공모전을 통해 지역주민들과 교감하고 소통하는 데 주력하는 한편 문양과 디자인의 연구에 힘써 우리나라 전통공예의 가치를 지키고 계승하는 데 앞장설 것”이라며 “현대적 감각과 실용성을 더한 우리 생활에서 꼭 필요한 공예품을 만드는 데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우지현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이진향 한지공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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