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본거지를 고향 속초로 옮긴 지 꼭 3년이 되었다. 기대와 두려움이 섞인 심정으로 출근했던 2017년 8월 8일. 그 날부터 나는 ‘다시’ 속초 사람으로 살고 있다.
스무살에 고향을 떠나 마흔 아홉에 돌아오기까지 29년을 서울-경기 일원을 전전하며 살았다. 주소를 옮긴 지역을 기초자치단체 기준으로만 보면, 성동구-영등포구-동대문구-동작구-서초구-김포-부천-강서구-강남구-용인 수지구 순이다. 길게 산 동네가 4~5년이고 때론 1년에 한번씩 이사를 다니기도 했다. 평균 어림하면 3년에 한번 꼴로 주소를 옮긴 셈이다.
잦은 이사의 주 원인은 집값, 육아, 직장 순으로 작용했다. 오르는 집세를 맞추지 못해 좀 더 싼 집을 찾기도 했고, 맞벌이인 까닭에 젖먹이를 키우기 최선인 조건을 맞추다보니 멀리 김포까지 가기도 했다. 출퇴근 거리가 너무 멀어 힘들어 하는 아내를 위해 직장 근처로 이사하기도 했는데, 대개는 이들 세 가지 조건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목초지를 찾아 떠도는 유목민처럼 두어 해에 한번 꼴로 거주지를 옮겨 다니는 일은 매우 피곤한 일. 무엇보다 이웃이 생겨 정들만 하면 떠나야 하는 정서적 상실감이 컸다. 이웃 사귀기 좋아하고, 어울려 운동하기 좋아하는 성격이다 보니 조금 친해질만 하면 떠나야 하는 상황은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었다. 살다보면 다 적응될 만도 한데 이사로 인한 상실감과 피로감은 옅어지지 않았다.
도시 생활이 주는 편리함은 주변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나를 모른다는 익명(匿名)에서 온다. 누굴 의식하지 않아도 좋으니, 나 편한 대로 살면 그만이다. 집을 나서도 누가 나를 어떻게 보는지 의식 않아도 좋고, 어디선가 누군가 나를 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매일 필요도 없다. 이웃이 누군지 모르지만, 알아서 피곤한 관계란 또 얼마나 많은가.
각자 자기 공간에서 자기 시간을 사니, 최소한의 상식과 예절만 지키면 관계가 갖는 무게에 눌릴 필요가 없다. 물론 직장이나 생업 현장은 관계에 대한 다양한 감정과 무게감이 존재하지만, 이는 도시가 아닌 지역에서도 동일하다고 보면, 익명성이 상대적으로 보장되는 도시 생활을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게다가 다양한 편의시설이 근처에서 제공되는 장점도 있다.
3년 전 귀향은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이 가장 큰 동기였지만, 30년 가까운 유목민 생활을 접고 정주하고 싶다는 정서적 동기도 컸다. 익숙한 자연 환경과 사람들이 있는 곳, 이곳은 객지 생활 내내 마음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근원이었고, 정서적 상실감을 달랠 수 있는 대상이었다. 눈앞에 두고 그리워만 말고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자. 마침 도전할 일도 있으니 이 어찌 좋지 아니한가.
그렇게 돌아온 고향에서의 3년. 나는 온전히 그 풍경 속에 있는가? 스스로 물어보면 시원하게 그렇다고 말하지 못한다. 가끔은 3년 전 이사 온 ‘또 다른 도시’라고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그새 아는 사람도 많아지고, 지나다보면 인사를 건네 오거나 거는 경우도 늘었지만 이 풍경 속에 온전히 녹아들었다는 감정은 느껴지지 않는다. 굳이 계량해 보면 50%포인트 이하인 셈이다.
온전히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은 사람을 경계인이라 부른다. 스스로 속하고 싶지 않은 이들이 대부분인데, 생각해 보면 내 스스로 경계인으로 살고 싶어 이리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요즘 부쩍 든다. 사는 터전이든, 생각이든 경계에 머무는 일은 일정 정도의 고립과 외로움을 감당해야 한다. 어쩌다 혼자가 되고 마는 시간이면 아무 거나 읽는데, 얼마 전, 시인 함민복이 오래 전 쓴 시 ‘꽃’을 보았다.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오성택
설악프로방스배꽃마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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