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 82번길에서 속초 도심으로 한걸음 더 내딛어 본다. 가는 길은 3가지가 있다. 속초로데오거리라고 불리는 ‘중앙로’가 가장 편한 선택이다. 로데오라는 이름처럼 옷가게를 비롯해 다채로운 체험을 주는 길이다. 건축가 유현준은 ‘걷고 싶은 길’의 조건을 강조하는 학자이다. 그에게 걷고 싶은 길이란 걸으면서 볼거리가 많은 길이다. 볼거리가 많다는 의미는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지만 가장 우선적인 조건은 가게의 밀도가 높은 거리이다. 그에게 가게 입구는 보행자를 위한 TV채널과 비슷하다. 콘텐츠의 재미가 부족하더라도 채널이 5개밖에 없는 공중파 시절의 TV보다 채널이 100개가 넘는 케이블TV 채널이 더 좋은 것과 비슷하다고 한다. 패션부터 먹거리, 잡화, 카페 등이 골고루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거리의 파사드를 연출하는 거리가 걷고 싶은 거리이다. 이런 기준이라면 속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었다. 도심 한복판에 청초호가 있다. 그 청초호와 함께 살아가던 삶의 현장이 아직까지 존재하고 있다. 실향민 할아버지가 만든 조선소를 속초의 대표 관광콘텐츠로 만든 ‘칠성조선소’가 대표적이다. 그 칠성조선소에서 중앙로 82번길은 걸어서 5분이다. 그 사이에 문우당서점과 동아서점이 있다. 칠성조선소에서 갯배까지 1.5km 정도이다. 유현준 교수는 서울을 걷고 싶은 거리로 만들기 위한 조건으로 지하철 역이 있고 1.5km 정도 떨어진 곳에 공원이 있으면 그 사이를 연결하는 거리가 곧 걷고 싶은 거리라고 했다. 속초는 도시 전체가 걷고 싶은 거리가 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이다.
트렌트의 변화, 로컬의 고집
다시 걸어보자. 중앙로 82번길에서 속초 도심으로 가는 길은 3가지 선택지가 있으며 그 사이에 다른 색깔의 골목이 있다. 중앙로를 따라 걷다보면 나이키 가게가 나온다. 그 옆길로 고개를 돌려보자. 잘 정비된 보도블록 사이로 ‘정원플라워’와 ‘일공팔 스트리트 커피’, ‘티티팬’, ‘청담동’, ‘어촌’이 보인다. 꽃집, 카페, 빵집, 옷가게, 로컬 밥집이 나란히 있다. 중앙로 108번길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정원플라워’가 보이는 순간 눈이 즐겁다는 느낌이다. 중앙로 대로변의 고만고만한 가게를 스치다 만나는 오아시스 같다. 그 옆으로 이어지는 ‘일공팔 스트리트 커피’와 함께 골목의 비주얼을 책임지는 모양새다. 입구에 마련된 야외 테이블, 드라이플라워로 장식한 내부 인테리어가 이국적인 느낌도 준다. 이 카페는 반려견 동반이 가능하다. 카페에는 ‘레브라도리트리버 버디’라는 반려견이 상주한다. 바로 옆 티티팬은 유기농 수제 식빵 전문점이다. 빵집 순례객들 사이에선 나름 알려진 곳이라고 한다. 치즈식빵부터 크린베리, 팥, 호두, 시나몬 등 식빵을 중심으로 다양한 재료가 어우러진다. 골목을 찾았을 때도 관광객으로 보이는 이들이 진열대를 살펴보고, 취향에 맞는 빵을 고르느라 수다 중이었다. ‘티티팬’은 속초라는 지역성, 식빵이라는 보편적 매력이 함께 어우러져 로컬 음식의 매력을 전달해 주었다.
카페와 식빵이 트렌디한 매력을 전달한다면 소위 현지인 식당으로 이름을 알리는 식당도 여럿 있다. ‘티티팬’과 ‘청담동’ 옷가게를 지나고 청초호반로 가까이에 위치한 ‘어촌’, 길 건너 ‘춘천 닭갈비’와 ‘후포식당’이 그렇다. 오랜 세월 속초시민의 입맛을 책임졌던 곳인데 최근에는 관광객들의 사랑도 받게 되면서 현지인 맛집으로 등극한 곳이다. ‘어촌’은 개업한 지 오래된 식당은 아니다. 밖에서 바라본 메뉴는 영락없이 속초음식이다. 생대구탕과 물곰탕 전문이라고 쓰여 있고 점심특선으로 회무침과 매운탕 백반이 있다. 인터넷으로 살펴보니 2017년에는 홍게장정식과 뚝배기 매운탕이 점심 특선이었다. 생대구탕과 물곰탕은 속초 앞바다 생물로 만든 음식이어서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은 음식이다. 점심은 현지인과 외지인을 고려한 듯 트렌드에 따라 조금씩 변화를 준다. 걷고 싶은 거리, 다시 찾고 싶은 장소는 트렌드의 변화와 로컬의 고집이 조화를 이루는 곳이 아닐까.
어부노동자 위로하던 맛골목
‘어촌’에서 청초호반로 건너편 골목에는 ‘춘천닭갈비’가 있다. 오랜 세월 속초의 춘천닭갈비 맛을 책임지던 곳이다. 다른 곳에 닭갈비집이 많이 생겨서일까. 간판에 원조를 강조했다. 휴가 나온 군인이나 오랜만에 만난 친구 등 상대적으로 젊은층이 많이 찾는 곳이다. 신기하게 저녁이면 사람들이 바글바글한데 관광객보다 현지인 느낌이다. 어느 네티즌이 자신의 블로그에 적은 글이다. 속초에 자주 오고 수산물 음식이나 닭강정이 지루하다면 한끼 정도 푸짐하게 책임질 수 있는 가성비 맛집이라는 평가도 있다.
그 골목의 끝에 ‘후포식당’이 있다. 예전 성어기 때 옛 속초수협부터 청학동 부두까지 부두노동자와 어민을 대상으로 한 선술집이 많았다. 후포식당을 비롯해 공주집, 포항집, 원산집, 선창집, 낙락집, 연화집(<속초수협, 역사를 말하다>, 설악신문 1208호, 이수영 기자의 글 참조) 등의 선술집이 즐비했다고 한다. 지금은 대부분 사라지고 없지만 ‘후포집’만은 후포식당으로 확장하여 성황을 이루고 있다. 어부의 노동을 위로하던 맛집에 관광객이 드나들면서 정작 현지인은 찾기 힘들어졌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정도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후포식당은 회무침과 조림, 매운탕 등 속초 앞바다 수산물로 만든 음식이 좋은 곳이다. 반찬도 소위 로컬스럽다. 가자미식해와 담백한 간장게장이 기본이고 때로는 설기설기 무친 회무침이 슴슴한 맛을 보여준다. 보통 후포식당만의 시그니처로는 망챙이탕을 예로 든다. 싱싱한 내장과 담백하고 찰진 살맛, 시원한 국물이 대구탕이나 물곰탕과 다른 매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후포식당 앞의 부두는 속초의 옛 정취가 여전히 남아있다. 정박한 배를 따라 옛 속초수협까지 걷는 길은 속초의 속살로 깊이 있게 한발 더 들어가는 길이기도 하다.
김인섭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중앙로 108번길 전경. 다양한 색깔의 가게를 지나 정박한 배가 있는 부둣가까지 이어진다.
‘일공팔 스트리트 커피’. 골목의 풍경을 돋보이게 만드는 아담한 카페이다.
유기농 수제 식빵을 파는 ‘티티팬’. 로컬 여행의 매력 중 하나인 빵지 순례객의 사랑을 받는 곳이다.
‘후포식당’. 속초 수산업 전성기의 흔적을 간직한 선술집이자 관광객의 사랑을 받고 있는 로컬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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