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남 시인이 새 시집 <사이프러스 나무 아래 서다>를 출간했다.
이 시집은 첫 번째 시부터 쉽고 간결한 언어로 마음을 울린다. 시집의 첫 번째 시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에서는 불빛 아래 죽어 있는 나방을 보며 ‘일확천금, 감언이설에/희망을 가장한 불빛 속으로 뛰어든 부나비/까맣게 스스로를 태우고 자멸해버렸다는/지인 소식을 접한 우울한 아침이다’고 말한다. 시인은 삶을 되돌아보는 사고 없이 부와 성공을 맹목적으로 지향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우리에게 묻는다.
시인은 여러 가지 사회현상에 대해 부단히 시선을 이어간다. ‘미안하다, 벚나무야’에서는 산불과 코로나19를 언급하며 인간들이 저지른 죄의 대가로 벚나무가 해마다 혹독한 봄을 치른다고 미안해한다. 시 ‘종이 탑’에서는 폐지 줍는 노인을 보며 신문지와 헌책으로 쌓은 종이 탑이 돌탑보다 단단하고 성스럽다고 얘기한다. ‘솟대’에서는 남과 북 이산가족의 아픔을 드러낸다. ‘청호동이 수상하다’에서는 분단의 아픔을 보지 못하고 청호동이 관광지로서 감각적으로만 소비되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여자가 갇혔다’에서는 니캅과 부르카를 바라보며 이국의 억압된 여성에게 연민을 표한다.
시인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도 건넨다. ‘달에도 상처가 있다’에서는 환한 달의 거무스름한 무늬는 떠돌이 혹성이 달에 부딪힌 자리임을 짚고, 달에도 상처가 있다고 말하며, 아픈 이들의 마음을 위로한다. ‘흉터’에서는 ‘가끔은 누군가 던진 말의 돌멩이에 맞아/물밑 가슴 저 아래/독버섯이 싹을 틔우고 무성히 자랄 때도 있’지만 거실 깊숙이 들어온 시원한 바람과 따뜻한 햇볕처럼 사소한 것들도 마음의 흉터를 어루만질 수 있다고 말한다.
시인은 시집 ‘시인의 말’에서 “다섯 번째 시집을 엮으며 언어 절제와 여백의 소중함을 새삼 느꼈다. 사람 사이 관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권정남 시인은 1987년 <시와 의식>, 2016년 <현대수필>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속초바람>, <서랍 속의 사진 한 장>, <물푸레나무 사랑법>, <연초록, 물음표> 등을 출간했고 수필집으로 <겨울 비선대에서>가 있다. 강원문학상, 강원여성문학상을 수상했고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속초문인협회 등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광호 기자 campin@hanmail.net
권정남 시인.
시집 <사이프러스 나무 아래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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