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터 김현아(본명 김종숙, 사진) 씨는 지난 4일 ‘페이스북’에 ‘39번째 쓰레기 줍기, 영랑동 등대해변’이라는 글을 올렸다. 전날 오후 1시에 해변에 나가 TV방송 촬영을 겸해 50ℓ 쓰레기종량제봉투를 가득 채웠다.
김현아 씨의 쓰레기 줍기는 올 여름 영랑호에서 조깅을 하면서 시작됐다. “영랑호를 뛰다가 쓰레기가 보여 주웠어요. 운동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인 거죠.” 평소 환경에 관심이 많았던 그였다. 해변 쪽으로 관심을 돌려 영랑동 등대해변과 청초호유원지, 속초해수욕장, 대진 바닷가, 천진 해수욕장 등을 다녔다. 등대해변에서는 지금까지 스물 다섯 차례나 쓰레기를 주웠다.
한 번 나가면 20ℓ 쓰레기종량제봉투를 채워 온다. 쓰레기 종류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 쓰레기가 이 해변에 왜 있나 싶다. 가장 많은 게 담배꽁초고 스티로폼, 낚시, 밧줄에 신기하게도 주사기와 앰플(주사약병)까지 나온다. 어떤 때는 고무호수에 끼워져 있는 주사바늘이 백사장 위로 솟구쳐 있어 위험천만이다. 1시간 반 동안 담배꽁초를 주워 2ℓ 페트병을 가득 채웠는데, 715개가 들어갔다.
아바이마을 담장 벽화 작업 중
김현아 씨는 ‘비치클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비치코밍’(beachcombing)도 하고 있다. 해변 쓰레기가 미술작품으로 재탄생하는데, 그는 주로 미세 플라스틱을 사용한다. 미세 플라스틱을 색깔별로 모아 사람 얼굴, 물고기 모양 등의 형상을 만든다. 그동안 만든 비치코밍 작품이 30여점에 이른다. 환경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자 비치코밍 작품을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올리는데 댓글 반응이 뜨겁다.
“내년 봄쯤에는 비치코밍 실물과 사진으로 오프라인 전시회도 열 계획이에요. 지금까지 모은 미세 플라스틱으로 큰 캔버스에 대작 명화도 만들고 싶어요.”
김현아 씨는 무척 바쁘다. 초·중·고생 방과후나 동아리 미술 수업도 하고 벽화도 그린다. 미술수업은 개인 미술레슨을 통해 알게 된 교사들을 통해 알음알음 알려지면서 속초와 고성지역 학교와 청소년시설 등 7곳에 나가고 있다. 벽화는 그동안 카페, 레스토랑, 게스트하우스, 콘도 등 모두 12곳에서 작업을 했다. 대명델피노리조트의 바닥 키즈존 벽화도 그의 작품이다. 물론 제작비를 받고 그려준다.
요즘에는 청호동 아바이마을 미리내길 골목 담장 벽화에 매달리고 있다. 이북에서 피난 온 실향민 간난이의 일생을 스토리로 모두 17면을 그려야 하는 고된 작업이다. 10월 16일부터 그리기 시작해 지난 4일까지 34번 작업을 했고 이제 9면을 그렸다. 추위에 핫팩까지 동원하지만, 작업하고 나면 손이 곱고 온 몸이 언다.
“소외계층에 보탬 되고 싶어”
김현아 씨는 원광대학교 미대 금속공예과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주얼리 컨설턴트로 15년간 일했다. 백화점 명품 브랜드에서 연예인, 정치인 등 VIP도 접하며 주얼리 상담 일을 했는데, 갑질 형태의 상하관계 속에서 행복에 대해 생각하게 됐고 그림 쪽으로 살아보기로 결심하고 과감히 업계를 떠났다. 그리고 2016년 남동생 부부가 사는 속초에 왔다. “속초에 오니 너무 좋았어요. 후회한 적 없어요.” 적절한 인간관계에 독서모임과 주짓수, 요가, 클라이밍도 하며 즐겁게 산다. 언제 틈이 날까 싶다. 음악 하는 친구들도 많이 알아 ‘혜화동소년’의 세월호 추모곡 ‘기다리고 있어’의 앨범 재킷작업을 했고, 노래에도 참여했다.
“속초에 살면서 소외계층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이웃으로 살고 싶어요.” 아바이마을 벽화작업이 끝나면 청호동 어르신들의 초상화를 그려줄 생각이다. 자살예방활동도 하고 있는 그는 “자살의 3대 이유가 경제력, 질병, 소외감인데 누군가 그림을 선물해주면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구나 하고, 삶의 희망을 갖게 되겠죠.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란 것을 알려주는 거죠.”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하는 이불도 덮었을 때 기분 좋도록 뽀송뽀송하고 향기 나는 이불로 바꿔주고 싶다고 했다.
얼마 전 ‘강원도 SDGs(지속가능발전목표) 정책·사업 영상공모전’에서 ‘현아의 소확행’으로 대상을 수상해 받은 상금 200만원 중 150만원은 겨울철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연탄 기부에 사용할 계획이다.
그는 꿈이 ‘그림쟁이 할머니’이다. “나중에 할머니가 되어서도 딱 이만큼만 즐겁고 건강하게 그림도 그리며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할머니가 되기까지 할 일이 많아 보였다.
장재환 기자 semin2748@naver.com
일러스트레이터 김현아씨. <사진 김현아 제공>
김현아 씨의 비치코밍 작품(왼쪽)과 청호동 아바이마을의 벽화. <사진 김현아 제공>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