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녘 저편에 먼동이 트면 철새처럼 떠나리라/ 세상 어딘가 마음 줄 곳을 집시되어 찾으리라/ 생은 무엇인가요 삶은 무엇인가요/ 부질없는 욕심으로 살아야만 하나/ 서산 저 너머 해가 기울면 접으리라 날개를/ 내가 숨 쉬고 내가 있는 곳 기쁨으로 밝히리라/ (중략)/ 이제는 아무것도 그리워말자 생각을 하지말자/ 세월이 오가는 길목에 서서 천년바위 되리라/ 천년바위 되리라~천년바위 되리라~’
1987년 남지훈이 처음 불렀고, 1994년 박정식이 리메이크해 인기를 끈 노래 ‘천년바위’(작곡 장욱조)의 가사다. 이 노랫말을 지은 장경수(69, 사진) 작사가는 속초 조양동 논산 출신이다. 그는 설악산 울산바위를 보고 ‘천년바위’ 가사를 썼다고 했다.
“아버님 기일에 속초에 왔다가 아내와 설악산에 갔는데, 울산바위가 너무 멋있는 거예요. 저렇게 무심한 바위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쓴 가사가 ‘천년바위’죠.”
장경수 씨는 가요계에서는 내로라하는 유명 작사가이다. 2018년 3월 KBS ‘불후의 명곡’에서 ‘작사가 장경수 편’이 방송됐다. 작사가로는 최초였다. 당시 한 언론은 “록, 발라드, 댄스 등 장르를 불문한 명곡들로 시대를 풍미하며 우리의 삶에 위로와 감동, 공감과 웃음을 선사한 대한민국 대표 히트 작사가 장경수의 노래들로 가수들이 무대를 꾸민다”고 방송을 소개했다.
2011년에 나온 영화 <범죄와의 전쟁> 삽입곡인 장기하와 얼굴들의 ‘풍문으로 들었소’를 비롯해 조용필의 ‘상처’, 유미리의 ‘젊음의 노트’, 최진희의 ‘꼬마인형’, 윤희상의 ‘카스바의 여인’, 송대관의 ‘정 때문에’ 등의 노래 가사를 쓴 작사가가 바로 그다.
‘풍문으로 들었소’의 원곡은 함중아가 불렀는데, 영화사에 저작인격권을 1원도 안 받는 대신 당시 인디밴드로 인기 있던 ‘장기하와 얼굴들’이 리메이크해 부를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해 영화배경음악으로 들어가게 됐다. 그는 “몇 십 년 전에 죽은 자식이 살아 돌아와 효도를 했다”고 표현했다.
1986년 제7회 MBC강변가요제에서 ‘젊음의 노트’로 대상을 수상한 유미리 는 1985년 전 미주 교포학생 가요제에서 1위를 하면서 장경수 작사가가 이사로 있던 킹레코드사에서 스카우트해 한국에 돌아오게 됐다.
기구한 어린 시절 보내
지난 12일 마침 지인들을 만나러 속초에 온 장경수 작사가를 만나 어린시절의 기억과 노래 가사에 얽힌 이야기, 앞으로의 계획 등을 들었다. 그는 현재 경기도 가평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있다. 그가 건넨 접힌 명함 안쪽에는 앞서 든 히트곡들 외에 태진아(두여인), 신유(잠자는 공주), 주현미(이태원 연가), 설운도(너만을 생각했다), 현철(서쪽으로 간 여자), 김승덕(정 주지 않으리), 김국환(바람같은 사람), 유현상(잊지못할 여인) 등 가수와 노래제목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물론 그가 가사를 쓴 곡들이다.
“웬만한 트로트 가수들은 다 제가 작사한 노래를 불렀어요. 이미자 선생님의 ‘눈물의 뿌리’도 제가 작사했지요.”
그는 가슴 아프고 기구한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냈다. “어머니가 저를 낳다가 하혈이 심해 3일 만에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자식이 없던 아버지 지인이 저를 양자로 데려갔고, 양어머니가 아이를 낳지 못해 유모를 두고 젖을 먹였어요. 그러다 양아버지와 유모 사이에 자녀가 생기면서 양어머니가 저를 데리고 나왔죠.”
장경수 작사가는 속초초교를 3학년까지 다니고 대포초교로 전학 가서 1년간 다니다 양어머니와 속초를 떠났다. 양어머니는 전국을 다니며 물건을 떼다 파는 보따리 장사를 했다. 장사를 가서는 한두 달씩 있다가 오기도 했다. 수시로 이곳저곳 옮겨 다니느라 초등학교를 16군데나 다녔다고 한다.
그가 속초에 다시 오게 된 이유는 주민등록증 때문이었다. 양아버지는 그를 데려가 김경수란 이름으로 출생신고를 했다. 그가 양어머니와 집을 나간 후 행불 처리를 했고 얼마 지나서 자동으로 사망처리가 됐다. 그 때문에 나이가 됐는데도 주민등록증이 나오지 않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속초를 찾기 시작했다. 그는 1955년생 장희원으로 직접 출생신고를 다시 했다. 장경수는 본래 성인 장 씨에 아명인 경수를 붙인 필명이다.
속초에 와서 청대산 입구에 있는 생모의 묘를 찾았고 이복형제도 만났다. 친아버지는 6.25전쟁 때 부인이 사망해 그의 어머니와 재혼했었다. 큰 형은 세상을 떠났고 둘째 형과 누나들은 속초에 살고 있다.
고향 속초 위해 새로운 일 준비
그가 작사가의 길을 걷게 된 것은 함중아 씨의 친형인 함정필 작곡가를 만나면서다. “1977년 결혼하고 아내의 친정집이 있는 서울 이태원에 살 때예요. 당시 ‘신중현과 더맨’에서 드러머로 활동하던 남철진 씨가 옆집에 살았는데, 제가 글을 쓴다고 하니 작사를 해보라며 소개해 준 분이 함정필 작곡가예요.”
그의 데뷔작 ‘꿈이였나봐’(작곡 함정필)가 1977년 ‘윤수일과 솜사탕’의 첫 앨범에 수록돼 세상에 나왔다. 가수, 작곡가, 작사가 모두 이 노래로 데뷔했다. 함중아와 윤수일 씨는 이태원의 한 초등학교에서 예비군 훈련을 하다가 알게 됐다. 2019년 11월 세상을 떠난 함중아 씨와는 오랜 기간 의형제처럼 지냈다.
장경수 작사가는 지난 44년 동안 1,300여 편의 노랫말을 썼다. 그 가운데 가장 아끼는 노래를 물었더니 주저 않고 ‘천년바위’를 꼽았다. 두 아들에게 훗날 묘비에 ‘천년바위’를 새겨달라고 당부해 놓았다고 한다.
그는 지금은 대부분 현역에서 은퇴했지만, 그동안 작사가 외에도 음악계에서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사)한국가요작가협회 회장과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이사, 한국연예예술인총연합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TV프로그램 진행도 맡아 ‘실버TV의 뮤직토크쇼-가인’, ‘아이넷TV 쉘부르클럽’, 9개 민영방송의 MC를 봤다. 약초에도 관심이 많아 아이엠TV에서 ‘장경수의 약초 이야기’를 진행하기도 했다. KBS ‘도전 주부가요노래자랑’과 아이넷TV ‘아파트를 열어라’ 심사위원으로 활동했고, 농업방송의 ‘농민노래자랑’은 현재도 심사를 맡고 있다.
‘세계일보 바른 지도자상’을 비롯해 ‘서울시 환경가요상’, ‘MBC 아름다운 노래 대상’, ‘KBS 가사 대상’ 등 작사가로 여러 차례 수상도 했다. 글 쓰는 걸 좋아해 영화 시나리오와 가요칼럼도 썼다. 2007년에는 <강물은 바다로 갈까?>란 시집도 냈다.
그는 요즘 지인들과 함께 고향 속초를 위해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있다. 이한수 한국청소년동아리연맹 강원지부 총재, 속초 출신 가수인 이주성 (사)대한민국가수협회 충남지회장과 신호 씨 등이 속초에서 장경수 작사가의 ‘천년바위’ 노래비 건립과 ‘장경수 가요제’ 개최를 추진 중이다. 지역 출신의 유명인을 알리고 속초의 문화관광상품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경남 의령군은 ‘이호섭가요제’, 산청군은 ‘정의송가요제’를 열고 있다.
장경수 작사가는 “속초출신 가수의 대가 끊겼다. 가요제를 통해 속초 출신 가수를 배출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장재환 기자 semin2748@naver.com
속초 출신 히트 작사가 장경수 씨(장경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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