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지역에는 태고의 신비를 품은 석호가 여러 개 있다. ‘경동대 봉포호’는 아주 작은 석호다. 봉포호가 경동대 소유가 아닌데 구태여 접두사처럼 ‘경동대 봉포호’라 붙인 것은 찾는 이들에게 경동대 정문 옆에 위치한다는 네비게이터 역할을 해서다. 왜냐하면 비슷한 석호인 광포호, 천진호가 바로 이웃하고 있어서 처음 찾는 사람들은 헷갈리기 쉽기 때문이다.
봉포호, 광포호, 천진호 3개 석호가 모두 봉포리에 있다. 또 헷갈리는 것은 봉포리의 과거 이름이 광포리였다는 사실이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시에 광포리(廣浦里)와 봉현리(鳳峴里)가 통합되어 봉포리(鳳浦里)가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마을입구 표지석에는 봉포리(구 광포)라고 기록되어 있다. 광포호는 봉포리 마을에서 다소 떨어진 켄싱턴리조트 서남쪽 근처에 있다. 그나마 천진호는 봉포리에 속하지만 천진리와 가깝기 때문에 그런대로 구별이 가능하다.
물론 ‘경동대 봉포호’라 이름붙인 또 다른 이유는 필자가 경동대에 근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실에서 불과 100미터 거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지척에 있다. 그러니 매일 산책코스로 이용할 뿐만 아니라, 학생들은 캠퍼스공간의 일부분처럼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2016년에 고성군에서 봉포리에 테마거리를 조성하여 예산낭비라는 지적이 있었는데, 수변 데크를 따라 설치된 호반벤치는 관리에 어려움이 있지만 학생들이 휴식장소로 자주 이용하고 있다.
그런 봉포호가 이제 주민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처음 있는 일이다. 봉포호 호반주변은 울창한 소나무와 원시림이 가득한 숲이었다. 그만큼 사람이 접근하기에 어려웠다.
한때 강태공들이 자주 찾는 명소이기도 했지만, 2014년부터는 수질오염방지와 황소개구리, 불루길 등 생태교란종 제거와 야생식물 보호를 위해 고성군에서 낚시금지구역으로 지정했다. 그래서 사유지라도 어떠한 개발행위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랬던 봉포호가 아이러니하게도 2019년 4월 4일 속초고성에 발생한 대규모 산불로 인해 새로운 계기를 맞이한 것이다.
그날 하룻밤 사이에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되어 버렸다. 봉포호 남쪽 모기업의 연수원이 전소되고, 강풍 타고 날아온 불씨가 봉포호 건너편 양봉벌통도 불살라버렸다. 모두가 망연자실해 안타깝게 바라만 봤는데, 우리 지역에서 70평생 설악권 발전을 위해 힘쓰던 지인이 봉포호를 주민친화형 생태공원으로 조성하겠다는 새로운 비전을 갖고 수변 부지를 매입했다. 수몰된 포락지 전답과 쓸모없어 누구도 거들 떠 보지 않던 방치된 땅을 사재를 털어 사들였다.
그런 다음 지난해 가을부터 양간지풍(襄杆之風)에 봉포호로 날아와 썩어가는 부유물을 건져 올리고, 축사로 사용하던 가건물을 철거하고, 수십 년 방치했던 가축오폐수를 수거 처리했다. 산불에 타다 남은 앙상한 잔해물도 정리하고 진입로도 정비했다. 이어 초겨울부터는 토목공사를 하여 이제 제법 깔끔하게 정리된 새로운 봉포호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지난해부터 봉포리에 여러 아파트단지들이 들어서고 있다. 동쪽은 푸른 동해바다, 서쪽은 설악연봉과 울산바위 조망이 으뜸이다. 그래도 주민들이 아침저녁 산책하기에는 가까운 봉포호가 요긴할 것이다. 화진포와 송지호는 주민접근성이 떨어진다.
영랑호와 청초호처럼 언제라도 찾을 수 있는 곳, 그곳이 주민친화형 생태공원이다. 봉포호는 천연기념물 조름나물이 자생하는 서식지이기도 하다. 지자체도 관심을 갖고 호수일주 산책이 가능하도록 수변 데크 연장설치도 고려해야 한다. 강원 고성 10경에 ‘경동대 봉포호’를 지정하는 것은 어떠한가!
최철재
경동대 평생교육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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