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식 국제정치학 박사가 지난 2월말로 37년의 교직생활을 마감하고 정든 학교를 떠나면서 느낀 소회와 새로운 시작에 대한 다짐을 담은 글을 보내왔습니다. 그의 생각을 고전과 연결시켜 서술함으로써 분명한 메시지를 담은 글입니다. ‘지난날에 대한 후회와 반성’ ‘걸어온 길’ ‘가야할 길(새로운 출발)’ ‘당부하고 싶은 말’로 나눠 4회 연재합니다. 이종식 박사는 1984년 3월 양양여고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해 속초고에서 수석교사로 마쳤습니다. <편집자 주>
교직 퇴임과 더불어 지난날을 돌아봄으로써 저 자신에게는 사무치는 반성을,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여러분에게는 저의 부족한 인생을 반면교사로 삼아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는 교훈이 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참회의 마음을 담아 중언부언 빈약한 회한의 글을 써 봅니다.
이제 제가 40년 가까운 세월을 몸담았던 교직을 내려놓고 떠나려 하니 지나온 날들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으로 만감이 교차합니다. 저 자신이 보수적인 집안에서 성장하고 동서양의 고전 읽기를 좋아하다 보니 옛 성현들의 말씀을 명심하고 전통적인 선비의 도를 익혀 애써 참된 스승의 길은 걷고자 부단히 노력해 왔습니다. 저 자신이 수신이 필요한 사람임을 잘 아는 까닭에 남들보다 더 많이 거경궁리하고 존양성찰의 수양을 통해, 의연하면서도 여유 있고 어질고 지혜로우며 검박하면서도 예를 잃지 않는 선비의 자세를 견지하여 어두움에 가려진 저의 심성을 밝히고자 끊임없이 자성하는 생활을 해 왔습니다. 공자가 《논어》 〈계시편〉에서 하신 말씀인 “군자는 아홉 가지 생각함이 있다. 볼 때는 분명함을 생각하며, 들음에는 총명함을 생각하며, 얼굴빛은 온화함을 생각하며, 모습은 공손함을 생각하며, 말은 진실함을 생각하며, 일을 할 때는 공경함을 생각하며, 의심스러울 때는 물을 것을 생각하며, 분할 때는 어려움이 닥칠 것을 생각하며, 이득을 보면 바른 것인가를 생각한다(君子有九思. 視思明, 聽思聰, 色思溫, 貌思恭, 言思忠, 事思敬, 疑思問, 忿思難, 見得思義).”를 항상 되새기며 실천하려 했습니다. 저는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사회에 대한 편견 없는 인식과 바람직한 태도를 가지기 위해 틈틈이 독서를 하고 각종 매체를 통한 지식과 정보를 획득·종합·분석·비판하여 대안을 제시해보기도 했습니다. 또한 직장의 울타리를 벗어나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과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며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려 부단히 애를 써 왔습니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의 괴리, 수용 능력의 부족 등으로 정년을 다하지 못하고 희로애락의 터전이었던 학교라는 무대에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저의 교직생활을 돌아보면 보람되고 기뻤던 일, 어렵고 힘들었던 수많은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 갑니다. 대학 시절 정문 입구에 새겨진 “민족의 스승이여, 가르치는 자는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가르침을 항상 가슴에 안고 요령 피우지 않고 소처럼 꿋꿋하게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승진과 관련되는 교육기관에서의 여러 차례의 스카우트 제의 등 보람과 기쁨도 많았지만, 어릴 때부터 키워왔던 다른 길에 뜻을 두고 있었기에 결코 만족하지 못한 교직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사숙고해 결정, 망설임 없이 실행”
저는 어떤 사안을 결정할 때 주어지는 이익이나 실리보다 명분을 강조하는 주리론적 성리학의 가치를 추구하는 편이며, 심사숙고하여 누구나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타당성과 정당성이 있어야 하며, 결정한 후에는 망설임 없이 실행에 옮기는 진취적인 생활을 해 왔었습니다. 왕양명은 《전습록》에서 “앎이란 실천의 시작이며 실천이란 앎의 완성”으로 앎은 곧 행으로 “아직까지 알고서 행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은 다만 아직 알지 못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대화편 《크리톤》에서 “어떤 사람에게 그것이 옳다고 말하여 그것에 따르게 한 일을 자기 자신도 이를 실행해야 함”을, 불교에서는 육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로 아무리 곤욕을 당하여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참고 견디고 수행으로 실천하는 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을 통한 깨달음을, 《신약성경》 야고보서 4장 17절에서는 “착하고 선한 행실인 것을 알고도 그것을 행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죄를 짓는 것이다”라고 했듯이 저는 지행합일적이고 실천궁행의 삶을 중요한 가치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교직의 현실과 제가 추구하는 삶의 목표와 방향이 많은 부분 충돌하여 한계에 부딪혀 울부짖는 날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점차 소극적이고 우유부단한 성격, 현실 지향적인 존재로 변하게 되어 내면에 잠재되어있는 움틀 거리는 진취적인 호연지기는 가슴의 한으로 남아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삼국지의 등장인물인 원소가 독선과 판단오류 그리고 우유부단함으로 관도대전에서 조조에게 패전해서 중원에서 사라지듯이, 저의 결단력 부족은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 주체적 결정을 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가령, 지금은 저 너머의 추억이 되었지만 제가 교직생활 중에 인생의 방향을 바꿀 만한 중요한 선택의 순간 몇 가지만 소개하면, 먼저 정치 입문을 위한 국회의원 보좌관 및 여러 차례 정계 진출 제의, 특정학교에서의 몇 차례의 스카우트 제의, 박사학위(정치학) 취득 후 모대학에서의 전임 교수 제의 등이 있었을 때 지나친 숙고와 망설임으로 결단을 내리지 못한 적이 있었습니다. 공자는 《논어》 〈자한편〉에서 ”지혜로운 사람은 미혹되지 않고, 어진 사람은 근심하지 않고, 용감한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知者不惑, 仁者不憂, 勇者不懼).“라고 하였지만 저는 결코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하였기에 유혹에 많이 흔들리고, 작은 일에도 걱정으로 불면의 밤을 지새우고 두려워한 적이 너무 많았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 누구나 꿈을 가지고 그 욕망을 달성하고자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며 그 과정에서 자신과 사회가 발전하게 됩니다. 그러나 잘못된 욕망과 판단은 개인과 사회 및 인류를 불행하게 만들 수 있음을 저 스스로 증명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은 항상 변하기 마련이고, 인간의 모든 고통은 잘못된 욕심에서 비롯됩니다. 만물이 다 공(空)하고 제행이 무상하며 고정된 실체가 없는 것을 알지 못한 저의 우둔함의 결과입니다. 저는 평소 학생들에게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잡으려고 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떠들었는데 막상 자신은 눈에 보이는 것과 미혹에 사로잡혀 놓지 못하는 미련한 존재였습니다. 존재하는 것은 실체가 없기에 ‘나’라는 존재도 없고 내가 없기에 나의 삶이 공허하여 나의 행적이 뭐 그리 중요할까, 눈에 보이는 감각이라는 허상을 진리(로고스)라 착각하여 몽상 속에 꿈을 쫒고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현실적 존재로 아등바등 살아온 저의 모습을 후회합니다. 무상을 탓하고 슬퍼하고 안타까워한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으로 노자의 《도덕경》에 “욕심 없는 자만이 현재에 만족하고 멈출 수 있다”는 말씀처럼 욕심이 과하면 스스로를 지옥으로 만드는 것으로 마음이 천국과 지옥을 결정하는 것임을 깨닫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실천하지 못하여 자기모순에 빠져”
그러나 이처럼 가는 세월을 탓하기에는 너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자는 《논어》 〈위정편〉에서 “육십이이순(六十而耳順)”이라고 했습니다. 60세는 소리가 귀로 들어와 마음과 통하기 때문에 거슬리는 바가 없고, 아는 것이 지극한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에 생각하지 않아도 저절로 얻어지는 것으로 귀에 들리는 모든 소리를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말을 객관적으로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나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주책없이 나이만 먹어 환갑이 되었고 손자까지 두었지만 아직도 지혜와 인덕이 부족한 사람으로 이 나이 먹도록 무엇을 하였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논어》 〈안연편)에서는 “진실로 임금이 임금 노릇을 못하며, 신하가 신하 노릇을 못하며, 아버지가 아버지 노릇을 못하며, 자식이 자식 노릇을 못한다면, 비록 곡식이 있은들 우리들이 그것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信如君不君, 臣不臣, 父不父, 子不子, 雖有粟, 吾得而食諸?)”라고 하였는데, 저는 이 사회를 살아가는 의식 있는 어른으로서, 한 가정의 책임 있는 가장으로서, 직장에서는 사명감을 가진 선생으로서의 직분을 다하여 부끄러움이 없는 모범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살아왔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 봅니다. 저는 평소 “진리 앞에 겸손하자. 끊임없이 탐구하자”라는 배움의 자세로 책을 통해 세상과 대화하고,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통해 소통하면서 저 자신에게는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성찰하려 했고, 타인에게는 이해와 배려로 존중하려 했으며, 세상을 바라볼 때는 열린 마음으로 겸손하게 다가가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경험은 자신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제 아무리 많은 책을 읽었다 할지라도 생각이 짧아 머릿속에 잠시 저장되었다 연기처럼 사라져 죽은 지식이 되어 버리고, 때로는 사람과의 만남과 대화가 진실성이 없는 허언이나 교언영색으로 포장되어 다가올 때는 허무하기조차 하였고, 자신의 주장만을 장황하게 내세우는 사람을 볼 때면 심기가 불편하여 부질없는 후회만이 남을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여전히 모자라 채우지 못하는 공허함과 실천하지 못하여 자기모순에 빠져 만물의 이치를 알지 못하는 저의 포용력 부족과 어리석음으로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무지에 대한 자각’을 하지 못함이며, 자기 마음을 다하고 남의 마음을 자기 마음처럼 헤아리는(盡己之謂忠, 推己之謂恕) 정성과 너그러움이 부족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더욱이 교육자로서 《중용》 <천명지위성〉에서 “하늘이 명령한 것을 (본)성이라 하고, 본성을 따르는 것이 도(리)라고 하며, 도리를 체득하는 것이 교(육)이다. 그러므로 도(道)는 잠시라도 본성으로부터 떠나서는 안 되는 것이니 떠날 수 있는 것은 이미 도(道)가 아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보이지 않는 곳(것)을 경계하여 조심하고 신중(愼重)히 하며, 자신의 듣지 못하는 바를 매우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혼자 있을 때에도 몸과 마음을 신중(愼重)히 하고 삼가하며 주의해야 한다(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 道也者 不可須臾離也 可以 非道也 是故, 君子 戒愼乎 其所不睹 恐懼乎 其所不聞 莫見乎隱 莫顯乎微 故 君子愼其獨也).”라고 하였는데, 본질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와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 참다운 지혜가 부족함으로 부단히 마음을 가다듬고 이치를 알도록 노력해야 함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계속>
이종식 국제정치학 박사
[ⓒ 설악신문(www.sorak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