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등모 어르신은 거제포로수용소에서 1년 정도 있었고 그 후 1953년 6월, 반공 포로 석방 때 풀려나기까지 논산포로수용소에서 1년 정도 머물렀다.
거제포로수용소는 구역이 19개로 나뉘어 있었는데 포로들은 19개의 각 구역을 ‘여단’이라고 불렀다. 수용소 중에는 중국인을 별도 수용한 곳이 있었고 여자 수용소도 있었다. 장교 수용소도 따로 있었지만 각 여단에는 장교들이 섞여 있기도 했다. 여자 수용소는 양 옹이 있었던 수용소와 가까워서 혈기 왕성한 청년들의 눈길이 자연스레 가닿았다. 여단과 여단 사이에는 5중 철망이 있었는데 5중 철망 사이의 거리는 약 20m 정도여서 인근 여단의 움직임을 철망을 통해 훤히 볼 수 있었다.
우익여단 74수용소에 수용
총 19개 여단에는 16만 명이 수용돼 있었다. 각 여단에는 여단장이 있어서 이 사람이 각 수용소를 군대식으로 조직했다. 각 수용소에 조직된 체계는 여단, 대대, 중대, 소대(50명으로 구성), 분대 등 일반적인 군대 조직과 같았다. 이 조직은 어디까지나 포로들이 자체 조직한 것일 뿐 미군 등 외부의 개입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각 여단의 여단장이 누구냐에 따라 그 수용소의 성향이 결정됐다. 여단장이 좌익이면 좌익수용소가, 여단장이 우익이면 우익수용소가 됐다. 좌익인 사람이 우익수용소에 있으면 이를 티 내기 어려웠다. 이는 좌익수용소에 있는 우익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양등모 어르신은 우익수용소인 74수용소에 있었는데 그 옆의 73수용소는 좌익여단이었다. 좌익여단은 인민군들의 군가를 제창하는 등 포로가 아닌 마치 정규 인민군처럼 행동했다.
포로 중 일부는 매일 조금씩 국군이 인솔해 수용소 밖의 작업에 동원됐다. 작업은 주로 도로 건설 같은 토목 공사였다.
수용소에서 식사 배급량은 그리 많지 않아 배고픔을 자주 느꼈다. 수용소에 배급되는 쌀은 모양이 길쭉하고, 찰기가 부족한 안남미였다. 식사 시간이 되면 배식 담당자들을 부르는 소리인 “밥새가 운다”는 외침이 들렸다. 이 소리가 울려 퍼지면 소대당 2명인 배식 담당자들이 우비와 양동이를 들고 갔다. 수용소 광장 바닥에 고무를 깔고 그 위에 밥을 쌓아두면 소대별 배식 담당자들이 그 밥을 우비에 담았고 국은 양동이에 담아 와서 소대원들에게 나눠줬다. 소대별 배식 담당은 돌아가면서 하는 게 아니라 고정돼 있었고 배식 담당자들은 국과 밥을 0.5인분씩 더 받았다.
수용소에서 식사 배급량은 많지 않았지만, 의복이나 신발 보급은 충분했다. 옷이나 신은 1년에 여러 차례 포로들에게 나눠줬고 그리 낡지 않은 옷이나 신을 땔감으로 쓸 수 있을 정도로 보급량이 풍부했다. 양 옹은 군대도 아닌 수용소의 포로 16만 명에게 물자가 원활하게 보급되는 것에서 미국이라는 나라의 힘을 느꼈다고 한다.
좌익여단, 미군 준장 납치사건 발생
여단 내에는 작업소대가 있었는데 이들은 변소에서 거둬들인 인분을 물가에서 버리기 위해 철조망 밖으로 나갈 수도 있었다. 변소는 드럼통을 반으로 잘라서 그 위에 나무판을 올려서 사용했는데 아침이면 작업소대가 그 드럼통을 물가로 가지고 가서 쏟았다. 거제는 섬이었기에 철조망 밖으로 나간 작업소대원들이 탈출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그런데 한번은 큰 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다.
좌익여단 작업소대원들이 물가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거제포로수용소장인 미군(유엔군) 프랜시스 도드 준장을 에워싸서 수용소 안으로 끌고 들어왔다. 도드 준장을 납치한 좌익여단은 도드 준장의 석방 조건 몇 가지를 내걸었다. 당시 도드 준장을 납치한 포로들은 친공 포로 학대 중지, 포로 대표단 인정 등을 요구했고 새로운 포로수용소장이 이를 수용해 도드 준장은 며칠 만에 석방될 수 있었다.
도드 준장의 납치와 석방 사태 이후 미군이 장갑차를 끌고 와서 수용소 내부의 소요에 개입했지만 이런 경우는 특별한 상황이었다. 평소에는 미군과 국군이 수용소 내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별달리 간섭하지 않았다. 유엔군 부대가 수용소 옆에 있었지만, 수용소의 직접적인 관리는 국군이 했고 미군은 수용소 내부로 들어오지 않았다.
이광호 기자 campin@hanmail.net
운영 중인 쌀가게에서 아내와 얘기를 나누는 양등모 어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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