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포로수용소에서 국군은 수용소 입구에만 있을 뿐 수용소 내로 진입해 수용소를 통제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포로에게 보급품을 전달할 때, 한 달에 한 번 포로 인원을 점검할 때 정도만 수용소 내로 국군이 들어왔다.
수용소 내부에 대한 통제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끔찍한 사태가 벌어졌다. 포로송환을 앞두고 포로들의 의사 확인이 있던 날이었다. 포로들은 수용소 광장에 설치된 탁자 앞에 5열 종대로 길게 줄지어 서서 한 명씩 남과 북, 혹은 제3국행을 선택해야만 했다. 각 여단에는 UN 담당자들이 나와서 탁자에 앉아 포로들의 의사를 확인했다. 북한행을 선택한 이들은 의사 확인 후 한 명씩 여단을 나와서 여단 입구에 주차된 차량에 타야 했고, 북한행을 거부한 포로들은 수용소에 그대로 남으면 됐다. 북한행을 선택한 이들이 수용소 앞에 주차된 차량으로 이동하는 거리는 300m 정도였는데, 반공포로들은 그 구간에서 북한행을 선택한 이들의 진로를 막고 한 명씩 잡아끌고 가서 폭행했다. 북한행을 선택한 사람 중 운 좋게 잡히지 않고 빠져나간 이도 있고 폭행당하다가 도망친 이들도 있었지만 적지 않은 이들이 반공포로들의 폭력에 목숨을 잃었다.
‘반공포로’ 석방 군사작전처럼 진행
양 옹은 자신이 있던 여단에는 반공포로들이 많아서 좌익들이 어쩔 수 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양 옹에 따르면 폭행에 가담한 이들은 북을 선택한 이들에게 “좋은 선물을 주겠다”고 말하면서 주먹을 휘둘렀다. 그날 이후 양 옹은 수용소에서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시신을 봤다. 양 옹이 들은 바에 의하면 그렇게 맞아 죽은 이들은 수용소 안에서 땅에 몰래 묻히기도 했다. 수용소 내의 상황이 이러한데도 국군은 방관할 뿐 폭력 사태를 제지하려 하지 않았다. 양 옹은 포로들이 들끓는 곳이라 군인도 쉽게 통제할 수는 없었을 거라고 했다.
양 옹은 당시를 떠올리면서 몹시 불편한 듯 잠시 인상을 찌푸리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수용소는 인정이 없는 곳이었어. 함께 있던 사람인데 그저 욕이나 몇 마디 하고 보냈으면 될 것을……. 군중 의식이 발동하면 죽고 사는 게 아무것도 아니야. 참 무서워. 얼마나 죽었는지 몰라. 서로가 적이니까 죽인 거야. 사상적으로 적이잖아. 그래서 죽이는 거야.”
양 옹은 북한행을 거부한 후 논산포로수용소로 이송됐고 1953년 6월에 석방됐다. 석방은 비밀스러운 군사작전처럼 진행됐다. 이른바 ‘반공포로 석방’이다. 논산에서 휴전을 앞둔 어느 날 새벽 2시에 “소대장 집합”이란 소리가 들렸다. 깨어나 보니 포로 모두에게 “곧장 수용소를 떠나 민간인 부락으로 들어가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밖으로 나가보니 국군 헌병들이 이미 철망을 해체하고 포로들을 기다리고 있었고 수많은 포로가 순식간에 수용소를 빠져나갔다. 양 옹이 수용소를 나와 10리(약 4km)쯤 가자 수용소 방향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미군이 쏘는 총소리였다. 미군들은 다음날 포로들을 잡으러 다녔다.
양 옹은 포로수용소를 나온 날 새벽에 수용소 동료들과 논산 연산면 관동리의 민가로 숨어들었다. 부락마다 사전에 통보가 있었는지 마을 주민들은 양 옹 일행을 맞은 후 마을에 머물 수 있게 했다. 관동리에는 20일 정도 머물다가 수용소 동료 2명과 함께 연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수원으로 이동했다. 반공포로임을 밝히자 기차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수원에서는 역 앞의 피난민 주거지에서 고향 사람을 만나 할머니의 동생이 강릉 왕산면에 산다는 소식을 들었다. 양 옹은 이후 강릉으로 이동해 친척의 집에서 수 개월간 머물렀다. 그 후 양 옹은 고향인 김화가 가까운 곳으로 가기 위해 양양으로 올라왔다. 아는 이가 없는 양양에서 직업을 구하려고 무작정 양양읍에 있던 북진양조장을 찾아가서 다짜고짜 밥만 먹여달라고 사정했다. 그렇게 양조장에서 일을 시작해 몇 년간 양양에 있으면서 결혼을 했고 북진양조장이 폐업한 후에는 거진읍에 정착해 국수 장사를 했다. 국수 가게를 하면서 슬하에 2남 2녀를 잘 키웠고 일흔쯤부터는 쌀가게를 시작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북 개방해 통일 이뤄졌으면…”
양 옹은 인터뷰 내내 북한 정권에 큰 적대감을 나타냈지만, 무력을 통한 문제 해결은 반대했다. 양 옹은 “전쟁이 나면 쌍방이 다 죽는다”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전쟁은 없어야 한다”고 했다.
양 옹은 “인민군에 노무자로 끌려갔을 때 매일 죽을 고비를 넘겼고 시신을 길거리에서 본 기억이 선명하다”면서 전쟁에 대한 공포감을 드러냈다. 양 옹은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가 북의 개방을 유도해 통일이 이뤄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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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호 기자 camp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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