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초에 한국음악협회 속초지부의 주관으로 속초문화예술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CLASSIC & CLASSIC’ 공연을 관람했다. 지방 소도시의 미흡한 여건과 코로나 사태로 인한 여러 가지 제약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간만에 좋은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다. 드럼솔로, 피아노트리오, 오보에, 오카리나 등의 연주가 있었고 재즈 보컬, 테너 솔로와 그날의 피날레를 장식했던 아이들의 합창까지 지루하지 않고 짜임새 있게 펼쳐진 이번 공연은 필자와 같은 클래식 문외한에게도 잘 스며들었다.
게다가 이번 공연의 출연자 중에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지인의 딸이 있어 더 세심히 눈여겨보게 되었다. 작곡과 연주를 병행하는 그녀는 피아노트리오, 재즈공연에서 수려한 피아노 연주를 선보였다. 그런데 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출중한 연주자이기도 한 그녀는, 피아노가 돋보이는 무대뿐만 아니라 재즈 공연, 오카리나 공연, 합창 공연에서도 반주자로 무대에 섰다. 각각의 공연이 펼쳐질 때마다 무대를 비추는 스포트라이트가 비껴간 어두운 공간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고 있는 그녀의 연주 모습을 보면서 문득 떠오르는 단상이 하나 있었다.
‘나는 발광체일까? 반사체일까?’라는 생각…. 세상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고 저마다 각각의 달란트를 가지고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삶을 펼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굳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이분법으로 나눠 생각해 보자면 발광체인 사람과 반사체인 사람으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다. 홀로 빛을 낼 수 없는 반사체인 사람들과는 달리 발광체인 사람들은 홀로 빛을 발할 뿐만 아니라 주변의 반사체인 사람들을 돋보이게 한다. 어떤 상황에서든 저마다 자신이 더 돋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 속에서 묵묵히 타인이 돋보이게 자신의 역할에 충실 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는 세상에는 얼마나 필요할 것이며 또한 그들의 역할이 얼마나 소중한 것일까.
다른 한편으로는,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좋은 공연을 준비하고 예쁘게 펼쳐 보여준 한국음악협회 속초지부 여러분들의 노고를 여실히 느끼면서, 문화예술분야의 부흥은 공장에서 틀에 맞춰 찍어내듯 갑자기 융성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랜 시간 동안 공공부문에서의 지속적이며 충분한 지원과 협력의 바탕 위에서 민간부문의 창의적이고 수준 높은 열정이 더해질 때, 그 때서야 비로소 이뤄질 수 있는 일일 것이다.
그런 일들이 펼쳐질 미래를 생각해 본다. 그때는 속초에 단지 산을 보러 바다를 보러 유명음식을 먹으러 오는 것만이 아니라 속초만의 특색을 지닌 공연을 향유하기 위해 속초로 오고 그에 더해서 천혜의 자연을 즐기는 시너지 효과가 펼쳐지게 될 것이다. 문화예술의 힘이 넘치는 도시…. 관광객들로 인한 경제효과가 삶의 기반이 되는 도시이지만 상주하고 있는 지역민들의 삶에도 기쁨과 자부심이 넘치는 도시가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은 환경이 또 있을까?
이번 공연에는 필자와 관계있는 또 다른 연주자도 있었다. 테너 솔로 무대에서 피아노 반주를 했던 중년의 여성 피아니스트. 사회자의 소개가 이어졌다. 테너인 남편과 피아니스트인 아내의 무대였다고. 독일에서 활동하던 그들이 안식년을 맞이해서 고국으로 귀국해 이 무대에 선 것이라고. 귀한 분들이 이 무대에 섰다고 생각했는데 낯익은 이름의 그녀는 다름 아닌 삼십여 년 만에 만나게 된 중고교 시절 같은 교회를 다니던 친구였다. 그녀 덕분에 또 꿈을 꾸게 되었다. 속초가 문화예술의 허브 도시가 되는 꿈. 전국에서, 세계에서 실력을 겸비한 많은 예술인들이 찾는 도시, 관광의 도시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의 향기가 은은하게 펼쳐지는 살기 좋은 도시, 그래서 결국엔 관광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아예 살러 오는 도시가 되는 꿈.
전형배
데일리F&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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