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 간이식 수술을 받고 3일 동안 깨어나지 못했어요. 그 때 가족들은 저의 장례식 준비를 했다고 해요. 긴 잠에서 깨어나 보니 그동안의 삶이 꿈같이 느껴졌고 숨 쉬고 살아있음에 감사했어요.”
노혜숙 작가는 현재 자신의 삶을 덤으로 주어진 인생이라 생각한다. “즐겁게 노래하는 마음으로 수필과 시를 쓰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치유하며 살아요. 돌이나 기와에 그림을 그리는데 와서 보는 사람들이 위안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면 저는 한 없이 마음이 행복해져요.” 돌화가 노혜숙은 화가로서 올 해 12년 차에 접어들었다.
1959년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감수성이 남달라 고등학생 때부터 수필을 쓰기 시작했다.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그는 결혼 후 인천에서 새 삶을 시작했지만 1988년 남편과의 사별은 그에게 큰 시련과 아픔을 겪게 만들었다. 모진 고통을 뒤로 한 채 그는 어린 딸과 자신의 생계를 위해 지인이 있던 인제군 용대리에 정착했다. 식당이나 기념품 가게 등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틈틈이 글을 쓰며 마음을 달래고 추스르던 2009년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2010년 6월 간이식 수술을 받은 후 그 해 11월 남편의 고향인 간성읍 남천리에 머물며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집 주변에 돌이 많아 시간을 보내는 소일거리로 삼기 위해 돌에 영심이 그림을 그렸어요. 그런데 어느 날 동호리 성숙씨가 그 그림들을 보며 즐거워 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시절 그는 시련의 상처를 입고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시기였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내 그림이 어떤 이에게는 재미를 주고 또 다른 이들에게는 마음의 힐링을 주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더 잘 그려야 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지요.”
노혜숙 작가는 지난 10일 인제문화원이 주최하고 (사)한국문인협회 인제지부와 내린천예술인회가 주관하는 제20회 전국여성환경백일장에서 시 ‘가을시위’로 장원을 수상했다.
‘도로가 뚫리면서/ 갈 곳이 없어진 단풍나무/ 입이 타는 듯 이파리만/ 동그랗게 말며 묵언 투쟁을 하고 있다/ 빨간 머리띠에 어깨 띠 두르고/ 한적한 시골 마을 자전거도로 곁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이장보다 많이 아는 대소사/ 단풍나무가 연을 맺어준 아들은/ 아버지가 되었고/ 가을의 화석처럼 누워있는/ 할머니와 어머니는/ 내 책갈피 속에서 부서지고 있다/ 계절의 변화로/ 세상도 마르고 내 입술도 말라가도/ 해마다 의연하게 붉은 깃발을 들었다// 재고의 기회도 없이 진정서를 낼 사람도/ 취하할 사람도 없는 외로운 투쟁은/ 당분간 계속 될꺼다’<가을시위 전문>
“‘인생이란 험난한 길 같아도 나에게 주어진 삶의 범주 안에서 어긋나지 않게 열심히 살면 돈이 없어도 남한테 인정받을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찬란하게 시작한 내 삶이 모진 역경을 견뎌낸 후 시작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노후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고 고백하는 그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주어진 일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웃으면서 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고 했다.
“저도 처음 돌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는 몸이 많이 아팠어요. 아프지만 작업에 몰두하다 보니 아픈 것이 점점 없어졌어요. 순조로이 흘러가는 시간은 정직해요. 긍정적인 생각과 순수한 마음으로 살다 보니 지금의 삶이 매우 행복해요.”
돌화가로 알려진 그는 현재 관내 초등학교에서 마을 선생님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할머니 선생님으로 불리는 그는, “국어 산수만 공부하다 물감을 만지고 돌에 그림을 그리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림 그리는 작업에 몰두하는 아이들을 보면 저절로 힘이 난다”며 “앞으로도 계속 시와 수필을 통해 즐거운 인생을 노래하고 돌그림을 그리며 덤으로 사는 인생을 행복하고 기쁘게 보낼 계획”이라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산 기자 haareezee@hanmail.net
도학초등학교 1·2학년 학생들과 마을선생님 수업하는 돌화가 노혜숙 씨.
노혜숙 화가 작품 ‘기도하는 성모마리아’.
노혜숙 화가 작품 ‘밀림의 왕자 레오’.
노혜숙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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