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듭니다.”
반세기 동안 양양지역 청소년들의 ‘만남의 광장’역할을 해오고 있는 양양 대아서점(대표 정래학)이 양양군의 첫 ‘백년가게’로 선정돼 의미를 더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은 지난 1일 50년 전통의 대아(大亞)서점을 양양지역 1호 백년가게로 지정하고 인증패를 수여했다.
양양군의 근대화 역사와 함께해온 대아서점이 백년가게로 선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곳을 자주 이용했던 머리 하얀 백발의 노인부터 새내기 대학생들까지 잠시 회상에 젖은 채로 정래학 대표에게 축하한다는 격려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1972년 개점 ‘배움의 등대지기’로
우리나라 근대화 정점이던 1972년 개점한 대아서점은 당시 지역에서 유일한 서점으로 문을 열고 학생들은 물론 주민들에게 ‘배움의 씨앗’ 역할을 해오다, 1979년 고 고경재 양양문화원장이 인수하면서 ‘양양서당’으로 불릴 정도로 자유로운 토론의 장으로 구심점을 마련하게 된다. 고 고경재 원장의 외조카인 정래학 대표는 1979년부터 서점에서 일을 배운 후 1982년 결혼과 동시에 대아서점을 맡아 지금까지 43년을 한결 같은 모습으로 서점을 운영하며 ‘배움의 등대지기’ 노릇을 해오고 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교보문고의 현재 슬로건이 정래학 대표의 좌우명일 정도로 책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그는 전국적인 향토사학자인 고 고경재 원장으로부터 사사 받은 역사성에 더해 정성 들여 만든 책을 파는 사람의 인성까지 두루 갖추며 고객 서비스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속담처럼 정 대표의 헌신적인 서점 운영은 이곳을 찾는 고객들에게 늘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며 어려웠던 시절, 책과 함께 희망을 일궈가는 텃밭이 되곤 했다.
당시 마땅히 토론하고 대화할 수 있는 장소가 부족했던 청소년들은 대아서점을 사랑방 삼아 만나 이야기도 나눴고, 특히 명절 때면 경향 각지에서 온 이들이 이곳을 최고의 상봉 장소로 꼽을 만큼, 핫 플레이스였다.
학생들의 교과서와 참고서부터 시집과 소설 등 다양한 장르의 책을 훤히 꿰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주인장인 정래학 대표는 늘 책과 함께 하며 독서량도 늘려나갔다. 이렇다 보니, 개점 초기부터 지역에서는 ‘만물박사’로 불리며 학생들에게는 ‘선생님’으로, 성인들에게는 ‘인생 선배’로서 길잡이 역할까지 도맡았다.
1982년 4월 1일 만우절 날 고 박세각 전 양양군번영회장의 주례로 최금희 씨와 결혼한 그는 지역 청소년들이 배움에 집중할 수 있는 별도의 공간이 절실하다고 판단해 1987년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독서실까지 문을 열면서 시너지를 높여 나갔다.
“청춘이자 사랑방” 추억소환 명소
대아서점은 스스로 배우며 인생을 개척해온 정래학 대표의 삶의 역정이 스며들면서 단순히 책만 파는 것이 아니라, 인성을 덤으로 배워가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는 서점과 독서실을 함께 운영하면서 책을 읽고 배우고 싶어도 가정형편이 어려워 망설이는 학생들을 보고는 이들이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도록 조심스레 독서실을 무료로 이용하도록 배려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대아독서실을 이용한 이들이 최대 4천여명에 이르고 그중 400명 정도가 정래학 대표의 헌신적인 지원으로 무료로 책도 읽고 독서실도 사용하며 배움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현재 재능기부로 불리는 일을 그는 43년 동안 해오고 있는 셈이다.
“책이 좋아서 서점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서점과 독서실을 운영하면서 배우고 싶어도 맘 놓고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 침울해하는 학생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제가 걸어왔던 모습이 떠올라 지원하게 된 게 벌써 43년이나 지나고 있네요. 열심히 책을 읽고 공부해준 그 마음이 고마울뿐이죠.”
한 권의 책이 보는 모든 이들에게 기회의 첫 장이 되듯, 나눔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정래학 대표는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명문학원장 후배에게도 지역과 주민들을 위해 함께 해보자고 제안하면서 그 시너지는 지금까지 빛을 발하고 있다.
학창 시절 대아독서실을 자주 이용했던 양정규 강현면사무소 총무담당은 “대아서점이 백년가게로 선정됐다는 말을 전해 듣고는 과거에 이곳을 다닐 때 정말 아낌 없이 내주시고 따뜻한 격려를 해주시던 그 얼굴이 떠올라 정말 감회가 남달랐다”며 “대아서점과 독서실은 그야말로 청춘이었고, 정으로 가득한 사랑방이었다”고 회상했다.
가업 이으며 미래 50년 엮어가
이처럼 43년 동안 이곳을 찾은 이들의 청춘과 추억을 또렷하게 소환할 수 있는 명소인 대아서점은 지나온 세월만 백년가게가 아니라, 진정한 미래 백년가게를 만들기 위해 아들 정훈 씨와 함께 알차게 가꿔나가고 있다.
대를 이어 가업을 잇는 미래 주인장 정훈 씨는 아침 일찍 서점에 나와 그날 전시할 책의 목록을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버지로부터는 지나온 서점의 역사성을 듣고, 어머니한테서는 친절과 분류방식 등 보다 구체적인 미래 영업전략도 함께 논의할 정도로 지난 2년 동안 많이 성숙한 정훈 씨는 걸려오는 전화 한 통화에도 진정성 넘치는 목소리로 응대한다.
결혼과 함께 서점 운영에 참여한 그는 “부모님이 힘들여 쌓아온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더 열심히 그리고 부지런히 가꿔나갈 생각”이라며 “책과 함께 따뜻한 인성을 전하는 징검다리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주위에서 “대아서점의 백년가게 선정이 너무 늦은 것 아니냐”는 질문이 나오자, 정래학 대표는 “인생에서 나이가 무색하듯, 책을 보고 독서를 하는 곳인데, 늦고 빠름이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은 것 같다”며 세월이 묻어나는 깊은 미소를 지었다.
잉꼬부부로 소문이 자자한 정래학·최금희 부부에 더해 이제는 결혼한 아들이 힘을 보태면서 대아서점은 남은 50년의 미래 역사를 소소한 일상으로 엮어가며 진정한 백년가게를 만들어가고 있다.
서점은 양양읍 군행리 사거리 강원체육사 자리에서 첫 문을 연 후 그 맞은편으로 자리를 옮겼고, 현재는 양양문화원 옆에 위치하고 있다.
김주현 기자 joo69523@hanmail.net
양양군의 제1호 백년가게로 선정된 대아서점에서 정래학 대표와 부인 최금희 씨, 아들 정훈 씨가 단란한 포즈를 취했다.
정래학 대표와 최금희 씨가 다정한 모습으로 서점에 온기를 불어넣고 있다.
책이 좋아 서점을 운영한 정래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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