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강력한 이성의 영향 아래 도취되어 있다. 미셀 푸코는 《광기의 역사》에서 이성이 인간과 세상의 주인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광기를 비이성과 동일시하여 가장 큰 적으로 간주한다. 광기를 이성의 이름으로 비인간적이고 야만적인 행태를 벌이는 경우를 많이 본다. 광인은 단순히 자신들과 함께 살기 힘든 존재 이상의 감옥이나 정신병원에 수용되어야 할 사람으로 통제하고 배척되어 감금의 대상이 된다. 인정이 메말라가는 사회, 냉혹할 만큼 차가운 세상 속에서 합리성이 객관적 지식을 발판으로 사회를 재단하고 인간을 평가한다. 법에 의해 정당성을 부여하고 권력과 결탁하여 무자비하게 인간성을 침해한다. 우리 인간을 이성의 이름으로 규정화된 틀 속에 감금시켜 놓고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일부분일 뿐이다. 결국, 기쁨이나 행복을 판단하는 주체는 자신이기 때문에 이를 합리적인 법이나 국가의 이름으로 강요할 수 없다고 한다. 푸코는 “정욕을 세차게 비난하고 법률로 속박하려 한다. 그러나 이 둘을 비교해 보면 정욕과 법률 가운데 어느 것이 인간을 더 행복하게 했는지 생각해 보라.”고 했다. 자연의 순리에 충실하도록 행동할 필요가 있다.
푸코는 이성에 기초한 합리주의적 인간관을 넘어설 때 인간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가능하다고 한다. 그는 근대적 이성이 부르주아 권력의 산물임을 주장하면서 이성이 중립성, 비당파성이라는 환상을 깨뜨리려 하였다. 이성적 사유 안에서 인간은 제한되지 않는다. 인간의 사유는 객관적이기보다는 인간 스스로에 의해 언제나 휩쓸릴 수 있고, 이성을 넘어서는 것으로부터 자신을 상기하기도 한다. 그는 “니체와 고흐의 광기는 똑같이 근원적으로, 그러나 다른 방식으로 각 작품에 속해 있다”라고 하듯이 인류 역사의 중요한 족적을 남긴 사상가나 예술가의 작품 중에 이성적 사유만으로 불가능 성과가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이다. 고흐가 광기없이, 피카소가 논리적 이성만으로 최고의 작품을 만들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인간의 이성은 완전무결하지 않다. 이 세상은 인간의 이성으로 알 수 없는 무한의 세계가 존재한다. 인간의 이성과 능력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의 세계가 존재한다. 종교나 주술은 인간이 만들어 이성의 산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종교나 주술의 세계는 인간의 이성을 넘어선 세계이기도 하다. 우리의 이성적 사유 능력조차도 완벽하지 않으며, 절대성을 담보할 수 없다.
이성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같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 이후 이성은 지금까지 철학적 이성과 이에 근거를 둔 과학적 이성이 세상의 진리에 대한 판단 근거의 중심이 되었다. 하지만 만약 합리적이라 할지라도 이성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횡포를 자행하고 모순의 길을 걸어온 사례를 많이 경험하고 있다. 이성은 적절하게 통제되지 않으면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될 수 있다.
이성적 사고와 기준에 의한 삶의 규범, 도덕률조차도 지나치면 또 다른 광기를 발한다. 중세 신학의 시대에는 신과 교회의 권위가 이성의 무분별한 표출을 억제하였듯이, 근대 이후 이성의 시대의 일방 통행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광신같은 유사 및 사이비 종교가 아닌 세상의 권력이나 물질 등에 오염되어 세속화되지 않고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모범을 보여 줄 수 있는 종교, 인간의 양심으로 세상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윤리, 인간의 샘과 같이 솟아내는 내면의 감성을 아름답고 자유롭게 분출하고 표현하여 삭막한 이성의 나뭇가지를 푸르고 아름답게 장식할 예술은 이성의 폐해를 방지할 수 있는 인간의 중요한 삶의 원천이다. 이성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문명의 시대든 그 반대든 인간을 억압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이성은 인간을 억압적 권력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다.
위르겐 하버마스는 최후의 모더니스트로 근대의 이념을 계승하여 이성의 가치를 옹호하는 철학자로 마지막 위대한 합리주의자로 이성에 새로운 기초를 마련하려고 했다. 그는 《담론 윤리의 해명》에서 현대 인간은 이성을 합리성을 위한 도구로만 이해하는 도구적 이성이라고 비판하면서 인간과 인간 상호작용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즉 그는 ‘대화적 이성’ 또는 상호주의적 이성의 개념을 통해 극복하려 하였다. 그는 의사소통의 합리성에 주목하여 사회이론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으로 설정하였다. ‘의사소통적 행위 이론’을 통해 좀 더 원활한 상호 이해와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를 발전·강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유로운 의사소통행위, 토론을 통한 사회적 합의에 이르는 이상적인 커뮤니케이션이야말로 정의를 실현하는 수단이라고 강조하면서, 언어 능력이 광범위한 사회 의견을 일치시키는 필수적인 수단이라고 주장하며, 현대의 언어 이론과 사회이론을 방법론으로 삼아 현대적 이성의 개념을 발전시켰다. 하버마스는 인간 삶의 소외의 원인, 인간을 수단화시키는 원인을 도구적 이성에서 찾고, 대안으로 인간은 ‘대화적 이성’을 가지므로 도구적 이성에 의하지 않고서도 대화적 이성을 통해 찾으려 하였다.
<계속>
이종식 국제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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