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상 종종 미시령 터널을 이용하게 된다. 이제는 이미 익숙해진 길이지만 영서지역으로 갈 때, 터널 개통 이전과 비교해보면 인제 방면으로 가는 길이 훨씬 편해졌고 시간도 많이 단축되었다. 게다가 작년 7월부터는 지역주민은 등록된 차량에 한하여 터널 통행료가 무료가 됐다. 어쩌다 한 번씩 이용할 때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금액일지 몰라도 자주 이용하는 인근 지역주민들에게는 다소나마 부담이 줄었다.
매번 미시령 터널을 지날 때면 2016년 8월에 개봉되었던 영화 ‘터널’이 떠오른다. 이 영화는 개통된 지 1개월 만에 갑자기 무너진 터널에 갇힌 한 남자와 그의 구조를 둘러싸고 있는 탄탄한 스토리가 바탕이 되는 영화다. 재난 영화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사회에 만연해 있는 안전 불감증과 현실을 꼬집기도 했다. 그리고 나약한 인간이 미래의 희망을 안고 사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인 빅터 프랭클은 그의 저서인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통해 희망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유대인이었던 그는 나치의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 겪은 참혹한 고통을 담담한 시선으로 술회한다. 그리고 자신의 이러한 경험을 분석해서 정신치료 기법인 ‘로고 테라피’를 정립하고 이 기법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고난을 극복하고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한다.
로고 테라피는 단순히 연구만을 통해 정립한 이론이 아니다. 그는 죽음의 수용소에서 인간의 적나라한 악의를 목도하고 경험했으면서도 인간에 대해 따스한 마음과 희망적인 시각을 견지했다. 온갖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낙관적으로 대처하면서 어떤 절망에도 희망이, 어떤 존재에도 살아가는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들을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신 치료법인 로고 테라피를 창시하게 된 것이다. 그의 저서를 통해서 우리는 상상을 초월하는 최악의 순간에서도 용감하게 맞선 인간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터널’이란 말을 떠올릴 때는 줄곧 암울한 상황을 빗대서 이야기할 때가 많다. 어둡고 시야가 잘 확보되지 않기에 그 끝을 모르는 터널은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터널 안에서는 라디오 주파수도 잘 잡히지 않기에 불안한 긴장감을 더하기도 한다. 게다가 영화 ‘터널’을 보고 난 후부터는, 두세 달 후 사라지기는 했지만 생뚱맞은 트라우마까지 생기게 됐다.
하지만 미시령 터널을 자주 이용하게 되니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봄만 되면 미친 듯이 불어대는 우리지역 특유의 바람에 운행 중이던 차량이 휘청거리며 한 쪽으로 쏠릴 때, 요즘처럼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할 정도로 장대비가 내릴 때, 폭설로 인해 노면에 쌓이는 눈이 많아지고 시야 확보가 어려울 때, 터널은 오히려 안전한 대피처가 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운전을 하게 될 때 터널 입구에 진입하게 되면 긴장감이 풀리고 평온함을 느끼게 된다. 마찬가지로 생각해보면 세상 여러 가지 일들이 새옹지마일 때가 많다. 날씨가 좋을 때는 어둡고 답답한 그 곳이, 악천후 속에서는 안전지대로 변모하는 것이다.
머나먼 이국 저편의 상황도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이 지대한 작금의 글로벌한 현실 속에서 그 끝을 예상할 수 있는 익숙한 터널이라면 오히려 여러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치솟는 물가, 급격한 국제 금리 인상, 장기화된 경기 침체 등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결코 쉽지 않은 요즘, 어느 하나 녹록지 않은 현실 속에서도 일부러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고 희망을 놓치지 않는 맘을 가져보려 하게 된다.
전형배
데일리F&C 대표
[ⓒ 설악신문(www.sorak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