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유명한 페미니스트 정치철학자인 아이리스 영은 그의 저서 ≪차이의 정치와 정의≫에서 롤즈의 분배적 정의 패러다임을 비판하며, ‘공정’ 개념을 단순히 재화와 기회를 어떻게 공정하게 나눌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억압과 착취, 차별을 초래하는 제도 개선의 문제로 접근할 것을 제안한다. 영에 의하면 분배의 공정성에 초점을 맞춘 롤즈의 정의 패러다임은 사회 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구조적 억압과 지배의 문제를 간과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러한 분배적 패러다임으로 공정의 문제에 접근할 경우 대학입시의 기회균형전형과 공무원 임용 인종별 최소인원 할당 등과 같이 기존 사회 제도의 구조적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 소수자 배려 정책’(affirmative action)은 항상 ‘기회의 균등’ 관점에서의 불공정과 역차별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로 영은 현대 사회의 ‘공정’과 ‘정의’ 개념이 단순히 분배의 공정성 문제뿐 아니라 착취, 주변화, 소수자 무력화, 문화 제국주의, 폭력 등 사회의 구조적 억압과 제도적 차별을 해소하는 데 더욱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영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번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보안 검색요원 정규직화는 ‘기회의 균등’이라는 측면에서는 ‘불공정’일 수 있지만, 차별적인 비정규직 제도의 개선이라는 측면에서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것으로 볼 수 있다. ‘기회의 균등’ 차원에서의 공정성뿐만 아니라 억압과 차별적 제도의 개선이라는 측면에서의 공정성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또한, 경쟁시험은 많은 비용을 들여가면서 반복적 훈련을 받아 ‘시험 기계’처럼 된 사람들에게 가장 유리하며, 시험 성적을 갖고 직무에 적합한 사람을 판별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오랫동안 비정규직으로 인턴과정 같은 작업과정을 통해 꾸준하게 직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요건을 상당히 갖추었다면 정규직과 동일하게 채용하는 것이 오히려 공정하다고 본다. 공항 검색 및 보안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그 업무에 종사하면서 터득한 직무 능력과 인간관계 형성 능력이 시험 성적보다 못하다고 판단할 근거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불공정을 공정으로 되돌려 놓는 일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공정하다라는 인식을 갖는다.
‘공정’이라는 말은 진보와 보수에서 해석하는 방식이 다르다. 대체로 진보의 ‘공정’이란 결과의 공정이고, 보수의 ‘공정’이란 경쟁의 공정이다. 물론 우리나라 정당은 유럽처럼 보수와 진보의 색깔이 엄격하게 구분되는 보수, 진보 정당은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우리나라의 정당구조는 서구에 비해 역사가 짧고 선거 등 정치적 사건에 민감하게 작용하여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이합집산에 의해 형성되어 정당의 정체성이 확실하지 않다.
또한, 최근 젊은 세대일수록 이념에 관심이 적어 이념 중심의 보수와 진보의 개념보다 합리성과 상식의 기준으로 정당을 바라보고 평가하고 있다. 법인세를 낮추느냐, 올리느냐. 노사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느냐, 남북관계를 어떻게 바라보느냐, 한일관계나 한미 혹은 한중 관계는 어떻게 바라보느냐 등이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기존의 낡은 정치 프레임보다 중요한 생활 밀착형 중심의 이슈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누가 먼저 중요한 이슈를 선점하여 청년층을 포함한 중도층 국민들에게 다가가서 지지를 받을 수 있느냐로 보수와 진보의 경쟁구도가 변화되고 있다. 어쨌든 보수와 진보의 성격이나 양상이 변화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정치권의 두 진영은 공정과 정의를 명분으로 각종 정책대결을 펼쳐 나갈 수밖에 없다. 이에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에서 주장하는 공정의 기준과 차이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계속>
이종식 국제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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