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축제 마당이 펼쳐진다고 해서 어떤 형태의 축제인지 궁금해서 주말 바쁜 시간을 쪼개 청호동을 찾아갔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 프로그램에 실망해서 차라리 시원한 바다나 보자고 해변으로 갔다. 탁 트인 바다가 아닌 방파제에 갇힌 바다를 보니 답답하던 마음이 더 답답해졌다. 눈을 돌려 설악산 쪽을 보니 다리와 고층 건물에 가려 기묘한 퍼즐 조각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 속초바다는 더 이상 바다가 아니고, 설악산은 더 이상 산이 아니었다. 그런 착잡한 생각과 맞물려 기억 속에 묻혀 있던 한 권의 그림책이 떠올랐다.
프란 프레스톤 개논의 <더 좋은 동굴에서 살고 싶어!>는 콜라주 기법의 심플한 그림이 독특한 질감으로 나타나는 그림책이다. 또한 여백을 충분히 살린 배치와 알록달록한 색감이 책 읽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마음껏 상상할 수 있는 트인 그림책이다. 또한 ‘똑똑 스마트펜’으로 그림 속 등장인물을 누르면, 생생한 효과음과 함께 숨겨진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 똑똑한 책이기도 하다. 데이브와 다람쥐와 새를 펜으로 누르면 책 속에선 읽을 수 없었던 유쾌하고 즐거운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는 특이한 책이다.
사는 게 불편 한 것이 아니라, ‘더 푸르고 너른 풀밭이랑 더 크고 편안한 바위가 있는 동굴에서 살고 싶어’라는 욕망에 끌려 원시 소년 데이브는 새로운 동굴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데이브가 새로 만나는 동굴은 너무 좁거나, 너무 넓거나, 이미 주인이 있거나, 위험한 동물이 살고 있거나, 하나 같이 데이브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게 돌아다니다 마음에 드는 새로운 동굴(?)을 마침내 찾아낸다. 그 동굴(?)은 어떤 동굴일까?
이 책이 주는 메시지는 책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매우 익숙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행복을 찾아 떠나는 파랑새 이야기가 그렇고, 신랑감을 찾아 떠나는 두더지의 이야기에서도 우리는 지금, 내 옆에 있는 것이 더 소중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잊고 산다는 것을 다시 깨우쳐 준다. 사람들은 누구나 더 좋은 것을 원하며 살고, 더 편안하고 더 누릴 수 있는 삶을 원한다. 하지만 가지고 싶다고 해서 모든 걸 가질 수는 없다. 그래서 이 책은 데이브를 통해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질 수 없다는 것과 지금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의 소중함에 대해 우리 어린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차근차근 일러주는 그런 그림책이다.
요즘 높아지는 금리와 자고 나면 달라지는 물가로 서민들은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며칠 전 인터넷 뉴스에서 전국 아파트 값이 내려가는데, 강릉, 속초, 양양 지역만 소폭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런 이유로 아직도 속초는 개발 열기가 식지 않고 있다. 몇 달 지나면 내가 알고 있던 자연 부락의 이름 하나가 사라진다. 보이는 것은 하늘을 오르는 바벨탑 같은 고층 건물과 고공 크레인이 속초의 하늘을 조각보로 만들고 있다. 그런데 그 뜨거운 열기가 집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이 많아서가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한 재테크의 수단으로, 무리한 빚을 지면서라도 더 넓은 집에 살고 싶다는 욕심을 위해서 줄을 서는 이들이 더 많다는 것이 문제다.
진짜 우리가 살아가는 데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원시 시대의 벽화 속에 나올듯한 무뚝뚝한 데이브의 얼굴이 상황에 따라 조금씩 바뀌는 표정을 찾아보는 재미를 느끼면서, 자기 자신에게 지금 무엇이 가장 소중한지를 물어보는 일은 어떨까? 또 속초의 내일을 위해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건 어떨까? 너무 어려운 주문인가….
김종헌
시인·설악문우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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