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재발견, 능파대(凌波臺)를 다녀왔다. 지난 8월 경동대가 개설한 지역역사문화탐방 아카데미에서 지역주민 15분을 모시고 함께했다. 능파대는 금관곡옥 같은 백도해수욕장의 끝자락이 백자대접 모양의 문암해변에 마주한 문암천 모래톱에서부터 자연방파제로 문암항을 감싸 안은 기암괴석군락이다. 2014년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지질학에서 능파대는 원래 문암해안의 화강암 바위섬이었으나, 바다풍랑과 너울인 파랑의 주기적 영향감소로 바위섬에 문암천 모래가 쌓여 육지와 연결되었다는 것이다. 이름 하여 섬 아닌 섬, 육계도(陸繫島, land-tied island)라 부른다. 오랜 세월 화강암석이 염풍화로 결정이 떨어져 구멍이 나서 벌집모양의 타포니(tafoni)를 만든 것이다.
지역역사문화탐방 아카데미 초빙강사 김광섭 향토사학자는 “문암리 옛 지명이 괘진(掛津)인데 걸 괘(掛)자는 많은 바위에 파도가 걸린다는 의미”라 했다. 그러면서 능파대의 뜻이 “건널 능(凌), 물결 파(波)로 ‘파도 위를 사뿐히 걷는 아름다운 미인의 걸음걸이’라는 의미”라 했다. 일행을 조심조심 능파대 명소 석굴 ‘바위고랑’으로 안내했다.
이의숙(李義肅)은 1771년(영조 47) <이재집권4(頤齋集卷之四)> 능파대기(凌波臺記)에서 “작은 돌산이 육지에 기대어 머리가 큰 바다로 들어가니 이르길 능파대라고 한다. 야릇한 것이 나선형 같고 공교한 것이 벌레 먹은 것 같으며 무늬는 귀신을 본뜬 것 같으니 만 가지 오묘함이 섞여 있다. 동굴에 첩첩이 쌓인 돌이 가장 높은 것은 거인 6, 7명을 쌓아 올린 것 같아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떨어져 죽을 것 같아 고개를 돌린다”고 했고, 이어 ‘바위고랑’을 “삼면이 합해진 곳에 틈이 벌어졌는데 바닷물이 드나든다. 틈새 구멍은 넓이가 10보인데 점점 막혀 길어지고 길이가 2배로 넓어지면 틈새가 다하고 구멍이 있는데 깊이를 알 수가 없다. 파도가 다다라 휘몰아쳐 폭풍우 같은데 성난 것이 산처럼 솟아 틈새를 쳐댄다. 동쪽에서 쳐대고 서쪽에서 휘몰아치는데 그 구멍까지 몰아친다. 무릇 세 번 몰아치고 밀려나는데 입구까지 밀려나면서 또다시 처음처럼 몰려와 쉬지 않으니 바야흐로 하늘을 뚫고 일어날 기세다.”라고 했다.
옛 문인들의 표현에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그러나 석굴 ‘바위고랑’에 대한 기대는 어렵게 도착하면서 실망으로 변한다. 왜냐하면 석굴 ‘바위고랑’이 삼발이 테트라포드(Tetrapod)로 막혀있기 때문이다. 해양수산부에서 안전을 위해 막아버린 듯하다. 당연히 파도가 휘몰아쳐 산처럼 솟아 하얗게 부서지는 장관도 없을 뿐 아니라, 그 위를 사뿐히 걷는 미인의 걸음걸이도 더 이상 볼 수 없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마을주민과 탐방객들의 안전을 고려한 조치였음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능파대가 국가지질공원인 만큼 자연경관과 배치되는 인공구조물 설치에는 충분한 사전검토가 선행되었어야 했다. 환경부나 지자체의 관리도 아쉬움이 남는다. 필자는 지역의 역사문화탐방을 통해 문화유산의 재발견과 함께 현실적 문제인식에 따른 대안 제시에 관심이 많다.
그런 의미에서 능파대 석굴 ‘바위고랑’을 언젠가 본래 모습으로 돌려놔야 한다. 아울러 현재 능파대 주변 상황부터 돌아보자. 국가지질공원에 걸맞은 안내판과 주변정리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능파대 초입에 있는 노란색 폐유통수거기와 창고건물이 경관을 해친다. 공중화장실 옆에 쌓여있는 재활용쓰레기 부대자루들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능파대 최고의 명소 석굴 ‘바위고랑’까지 테크길 추가개설도 필요하다. 그러면 가는 길 중간에 1825년 강원도관찰사 홍경모(洪敬謨)가 능파대기(凌波臺記)에 기록한 “암면의 새겨져 있는 능파대 세 자는 양봉래(楊蓬萊)의 글씨(巖面刻凌波臺三字 卽楊蓬萊書也)”라 해서 알려진 암각문 능파대(凌波臺) 한자글씨도 직접 볼 수 있다. 지금부터 대략 450년 전, 조선시대 전기 최고의 명필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과의 만남이다.
최철재
경동대 평생교육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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