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청년층들이 말하는 공정과 정의의 개념, 보수진영에서 주장하는 공정의 핵심 개념은 능력주의에 가깝다. 능력주의는 부나 권력과 같은 희소한 자원의 분배에 있어서 사람의 재능, 노력 및 성취도를 평가하여 차등적으로 보상하는 것을 긍정하고, 그러한 사회를 추구하는 정치철학이다. 능력주의는 사실 자유주의의 핵심 개념이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권리를 강조한다. 인권, 법치주의, 권력분립을 통한 권력통제,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보장되는 시장경제 등을 특징으로 한다.
오늘날 자유주의자는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법에 의한 모든 시민들의 동등한 권리와 기회가 보장되는 부르주아적 대의민주주의를 지지한다. 자유방임사상에 바탕을 둔 근대 자본주의는 성공할 기회가 똑같이 제공됐다면, 이 사회는 공정사회라고 한다.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면 나머지는 개인의 노력과 재능에 의해 결정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인정한다. “성공은 노력의 보상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내가 구멍가게를 차려 이재용과 사업 경쟁을 하는 것이 공정하다는 것이다. ‘노력에 따른 보상’이라는 개념은 자본이 자본을 낳는 자본주의의 폭정을 희석시키며, 불합리한 신분에 따른 차별을 철폐하여 더욱 평등한 사회를 만들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더욱이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는 능력주의의 극단 면을 보여주었다. 무한경쟁에 대한 적절한 준비나 능력을 갖추지 못한 국가나 기업에게 능력주의는 재앙이다. 능력주의 사회에서 승자가 보여주는 오만함, 패자의 굴욕감과 소외감은 어떻게 보고 해결해야 할 것인가? 이것이 공정과 능력주의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관점이다.
지금까지 공정을 능력주의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앞에서 살펴본 바 모든 이가 공평하게 가진 노력만이 가장 공정한 평가 척도가 돼야 한다는 생각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마이클 샌델을 비롯한 서구의 많은 학자들은 비례성에 기초한 공정(능력주의)을 여러 관점에서 비판하고 있다. 능력주의가 공정이라는 가치를 훼손시킨다는 입장이다.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우리의 속담은 능력주의와 그 맥을 같이한다. 출신에 상관없이 노력과 재능만 있다면 누구든 상위 계층에 오를 수 있다는 이상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런 이상은 과거 봉건사회와 비교했을 때 굉장히 공정해 보인다, 그러나 능력주의는 진실로 공정한가? 우리는 정말 개천에서 용이 될 수 있을까?
더욱이 능력주의는 승자가 되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을 능력이 없거나 노력이 부족한 존재로 치부한다는 측면에서 사회적 불평등을 확산시킬 수 있다. 시험의 공정성에 천착하게 되면 비능력적 요소에 의한 결과의 차별은 당연한 것으로 되고, 절차의 공정성에 집착할수록 결과의 불평등에 무관심하게 된다. 능력주의는 제도적 시험 결과와 성적에 따라 사회적 직위와 직업, 부와 소득, 권력과 권위가 결정되는 것이 정의라고 한다. 그러나 시험과 성적은 어떤 형태와 제도로든 온전하게 능력을 드러내는 데 한계가 있다. 사람이 가진 모든 능력 중에 지적 능력을 중심으로 반영하는 것이며, 이것조차도 충분하게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
샌델은 현재까지 불평등이 심해지기만 할 뿐이고 도저히 좁혀지지 않는 이유로 사회는 그저 기회의 균등만을 제공하며 나머지는 개인의 영역 즉, 능력주의로 치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아메리칸 드림’과 같이 누구나 열심히 노력한다면 그 노력에 걸맞은 명예와 부를 획득할 수 있고 그 사람의 성별, 인종, 나이 그 어떤 것도 그 사람의 평가 분야에 할당하지 않는다. 즉 승자와 패자가 명확하게 나뉜다. 그리고 승자는 자신의 노력으로 자신의 지위를 획득했다고 자신감 있게 말할 것이다. 패자는 자신의 삶을 노력 부족으로 생각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오늘날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승자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샌델이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설파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우리가 공정이라고 믿는 것들이 얼마나 허구인가를 지적하고, 능력주의가 가져다주는 잘못된 신화에 대해 비판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너무나도 당연히 생각해왔던, 개인의 능력을 우선시하고 보상해 주는 능력주의 이상이 근본적으로 크게 잘못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능력주의가 제대로 공정하게 작동하고 있는지, ‘공정함은 곧 정의’란 공식은 정말 맞는 건지 진지하게 되짚어 본다.
<계속>
이종식 국제정치학 박사
[ⓒ 설악신문(www.sorak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