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68) 씨는 어느 날 문득 어부를 꿈꿨다. 그리고 2015년 막연한 꿈을 가지고 해기사자격증(소형선박 조종사)을 취득했다. 이때만 해도 어선 구입은 언감생심, 그냥 다른 사람 배에라도 타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로부터 4년 후인 2019년 11월, 막연한 꿈은 현실이 됐다.
이 선장은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꿈을 꿔야 한다고 말한다. 그 꿈은 희망이 되고 생각으로 이어지며 자연스럽게 행동도 따라 하게 된다고 했다. 어려움 속에서도 꿈을 꾸고 희망을 노래하며 행복을 낚는 어부 이 선장 이야기다.
이 선장을 만나기 위해 고성 죽왕면 교암2리 해변가 마을을 찾아갔다. 뱃일하는 어부라 다부진 체격과 강인한 인상을 떠올렸으나, 첫인상은 친근한 동네 형님 같았다. 반백의 머리와 수염, 그리고 부드러운 억양은 취재 내내 기자가 인생 상담을 받는 듯한 편안함 마저 들었다.
건설회사 운영하다 2006년 고성에 정착
인생 제3막을 사는 이 선장은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줄곧 성장했다. 교암2리는 1975년 단국대학교 1학년 재학 중 친구들과 스쿠버다이빙을 시작하며 인연이 됐다. 시간이 날 때마다 동네를 찾았고 그때 만난 오랜 친구들과 지금도 막역하게 지낸다.
대학 졸업 후 대한화재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타 회사로 스카우트될 정도로 성공가도를 달렸고 업계는 호황을 누렸다. 성공을 자신하던 이 선장은 1993년 전문건설회사를 창업했다. 큰 회사는 아니었지만, 빌라와 상가 건설 등 내실 있는 경영으로 탄탄한 기반을 닦았다. 이때는 소위 잘나가는 사업가였다. 그러나 1997년 경제위기를 거치며 사업은 어려워졌고 급기야 2005년에는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했다.
실의에 빠진 이 선장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이 바로 ‘고성 죽왕면 교암2리’였고 고민할 것도 없이 고성으로 내려왔다. 이때가 2006년이다. 정착을 위해서는 닥치는 대로 일해야만 했다. 택시운전, 막노동, 산불진화대, 보일러 관리인 그리고 2011년~2016년까지 왕곡마을 해설사도 했고 이후 경동대학교 기숙사 생활지도교사로도 일했다.
인생의 전환점에는 늘 걷기를 통해 마음을 정리하곤 했다. 57살 때는 해남에서 임진각까지 680km를 걸었고, 64살 때에는 고성 집에서 임진각까지 220km를 걸었다. 당시 소원을 생각하고 빌며 걸었다. 그 소원은 바로 선장이 되는 것이었다. 얼마 후 동네에서 배가 매물로 나왔고 아는 지인의 조건 없는 도움으로 배(2.99톤, 광수호)를 구입하는 꿈을 이뤘다.
낚시로 고급 어종 어획…바다생태계 변화 우려
11월의 바다는 찬바람이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한다.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은 체감 온도를 더욱 떨어뜨려 어부의 의지를 꺾으려 한다. 특히 예고 없이 부는 바람과 파도는 초보 어부뿐 아니라 경험 많은 어부들도 긴장하게 한다.
초보 이 선장은 추운 겨울에 거친 파도 속에서 엔진 고장으로 다른 어선에 예인되고, 배 스크루가 정치망 그물에 걸리는 등 생각지 못했던 고생을 하며 겨울을 났다. 봄에는 몇 미터 앞도 분간할 수 없는 해무에 고립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숱한 어려움을 모두 극복했듯이 시행착오를 거치며 서서히 어부가 되어갔다.
어선으로 고기를 잡으려면 분야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 선장 배는 그물의 한 종류인 자망과 낚시를 할 수 있는 연승까지 복합면허가 있지만 낚시를 이용해 돌참치, 장어, 문어 등 고급 어종을 주로 어획한다. 배가 작기 때문에 자망보다는 낚시를 이용해 경제성이 높은 어종을 잡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다.
항구에서 20~30여분 나가면 어군 포인트가 있다. 1시간 이상 나갈 때는 등대나, 향로봉 같은 큰 산이나 건물로 위치를 파악한다. 어부들은 ‘알기’라고 부른다.
이 선장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바다생태계 변화를 우려했다.
해안에서 2.5km 거리에 ‘낙산내기’라는 아름다운 포인트가 있다. 육지에 산과 계곡이 있듯 바닷속에도 봉우리와 계곡이 있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해류가 해조류를 키워 물고기들도 많이 모인다. 바다 오염은 이런 생태환경을 파괴하고 있고, 물고기들은 더 좋은 환경을 위해 떠나고 있다. 넓은 바다지만 물고기가 좋아하는 환경이 줄어들면서 한정된 좋은 포인트를 차지하기 위한 어부들과 레저낚시 배들의 경쟁이 한껏 치열해지며 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다.
겨울철 별미인 도루묵과 도치 등도 예전만 못하다. 그는 사시사철 잡히던 토종어류들도 이미 귀한 생선이 된 지 오래다며 망가지고 있는 바다 현실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했다.
“나이가 들면 걱정도 는다는데, 앞으로 우리 미래를 위해 모두가 자연에 귀를 기울여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바다는 우리 세대뿐 아니라 앞으로 자손 대대로의 터전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선배 어부들 존중하며 노하우 배워야”
이 선장의 바람은 언제나처럼 꿈과 희망을 품고 행복한 바다로 나가고 것이라고 했다.
미래 선장을 꿈꾸는 이들에게 우선 ‘어선체험’을 해볼 것을 권했다. 또한 배를 댈 수 있는 선착장이 꼭 있어야 하며, 책으로 배운 지식도 있지만 무엇보다 오래된 어부들의 노하우 체득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글로는 설명이 어려운 바다 환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며, 자신도 초보시절 갑자기 불어오는 바람과 파도에 위험에 빠진 적이 많았다고 했다.
그 다음은 어촌계를 이해하고 적응하는 단계가 필요하다. 어부들과의 인간관계도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고기를 잡을 때는 때론 갈등도 있지만 바다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릴 때는 동료 어부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수협 조합원에 가입 후 어촌계에 등록하면 된다고 했다. 특히 어부로 적응하기 위해서는 선배 어부를 존중하고 그들만의 노하우를 배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선장은 틈틈이 여가시간에 글을 쓰고 있다. 글 쓰는 목적은 자신이 완전할 수 없기 때문에 매 순간 마음을 옳게 하고 좋은 생각을 갖기 위해서라고 했다.
사람을 유난히 좋아하는 성격인 이 선장은 문화예술 방면에 친구가 많다. 그들과 함께 밤새며 술잔을 기울이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상처받은 친구들이 찾아오면 언제나 자리를 내어주며 그들의 아픔과 기쁨을 나누며 살고 싶다”고 했다.
성낙규 인턴기자 nk_2232@naver.com
이광수 선장이 자신의 배에서 포즈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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