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7일 진실화해위원회에서 발간한 1969..5.28. 귀환 납북귀환어부 인권침해사건 진실결정보고서 32쪽에 게재된 군 보안대 보고문서. 납북귀환어부를 몽둥이로 구타 심문했다는 가혹행위 내용이 공문서를 통해 처음으로 확인되었다.
최근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으로 우리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충격적인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다. 지난 2월 7일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에서 1969년 5월 28일 고성 거진항으로 귀환한 동해안 납북귀환어부 150명에 대해 진실결정을 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이후 진실결정문과 조사보고서를 진실규명 신청자에게 개별 통지했으며, 이를 근거로 피해자와 가족들이 재심 신청을 진행하고 있다. 피해자 150명에 대해 110쪽 분량으로 작성된 이 진실결정보고서에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충격적인 납북귀환어부 인권탄압 사례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
군 보안대 공식문서에 “몽둥이로 구타 심문”
1969년 5월 28일 6개월 동안 북에 억류되었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납북귀환어부들은 가족들도 만나지 못하고 조사를 받기 위해 끌려갔다.
진실화해위 조사 결과 납북된 23척의 선원 167명 중 납북 당시 사망한 임○○씨와 미귀환자 16명을 제외하고 150명이 거진항으로 귀환했다. 납북귀환어부들은 귀환 직후 관할 경찰서인 고성경찰서로부터 선박검색 및 휴대 물자 등을 확인받은 후 고성군 교육청 건물에 80명, 고성군 농촌지도소에 70명 분산 수용되었다. 공공기관인 교육청과 농촌지도소 건물이 영장도 없이 납북귀환어부를 불법구금하고 심문한 장소로 활용된 것이다. 강원도 내 지방경찰서에서 차출된 합동심문요원, 치안국 심문반, 군 및 중앙정보부 수사관으로 합동심문반이 구성되었다. 합동심문은 귀환 후 10여일이 지난 1969년 6월 10일까지 계속되었다. 이중 5명은 합동심문이 끝난 후에 서울 대방동 미군 502 군사정보단에 다시 끌려갔다.
합동심문이 끝난 어부들은 다시 선적지 관할 경찰서로 신병이 인계되었다. 81명은 고성경찰서, 19명은 속초경찰서, 29명은 강릉경찰서, 21명은 영덕경찰서로 끌려갔다. 그리고 경찰서에서 다시 조사를 받고 정식으로 구속영장이 발부되기까지 어부들은 짧게는 20일, 길게는 31일간 영장도 없이 구금되어 조사를 받았다. 북한 억류 중에 대공투쟁을 하였다는 이유로 불구속 입건된 3명만 빼고는 147명 모두 구속되었다.
과연 불법구금 중에 가혹행위는 없었을까? 불법구금 사실은 여러 문서와 증언 등을 통해 쉽게 확인되는데, 가혹행위 여부는 피해자 증언 이외에 증거자료를 찾기가 힘들었다. 진실화해위에서는 납북귀환어부에게 가해진 가혹행위를 뒷받침하는 공문서를 이번 조사과정에서 찾았다. 합동심문을 마친 1969년 6월 10일 212보안부대장이 보안사령관과 대공처장에게 작성 보고한 ‘합동심문종료보고’ 문서에는 “납북귀환어부 박○○에 대하여는 경찰 심문 과정에서 몽둥이로 구타 심문하여 보안사령부에서 이루어졌든 사항을 거의 알고 있는 것 같으며”라는 내용이 실려있다. 납북귀환어부가 귀환 후 조사과정에서 ‘몽둥이 구타 심문’ 등 가혹행위를 받았다는 사실이 공문서를 통해 처음으로 확인된 것이다.
이 공문서에는 납북귀환어부 합동심문은 귀환 다음날인 5월 29일부터 6월 9일까지 11일간 진행되었으며, 심문관은 중앙정보부 ○소령 외 2명, 치안국 경감 2명이라고 나온다. 심문 종료 후 피의자 신병을 관할 경찰서로 각각 이첩, 약 1주일 후 후속조치할 예정이며, 1969년 6월 10일 13시 40분경 미 502 군정대에서 현재 수용 중인 5명을 인수, 서울 대방동 소재 수용소헬기편으로 이송해 약 10일~15일간에 걸쳐 심문 첩보를 캐낼 것이라는 내용도 실려있다.
“부친이 조사받기 힘들어 자살하셨다”
이날 귀환한 어부들 사이에는 가혹행위를 받다가 사람이 죽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진실화해위 조사에서 명백하게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보고서에는 재판 진행 중에 귀환어부의 신변에 이상이 생긴 사례가 확인된다.
귀환어부 150명의 선원 전원이 반공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되었다. 이때 속초 월진호의 김○○(68세)는 8월 20일 1심 판결이 나기 전에 사망했으며, 1심에서 149명 모두 유죄가 선고되었다. 그리고 검찰은 처벌이 미흡하다고 전원에 대해 항소했다.
진실화해위 보고서에는 대동2호 선원 최○○씨(당시 27세)는 1심에서 징역 1년, 자격정지 1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으나, 다른 선원들과 달리 2심 선고 기록이 없다. 1969년 9월 17일 춘천지방법원 선고 이후부터 같은 해 11월 4일 춘천지방법원 2심 선고가 나기 전까지 최씨의 신변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가 싶다.
유족들의 증언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최씨의 아들은 진실화해위 조사과정에서 부친이 “귀환 이후 조사를 받으러 끌려다니다가 힘들어서 자살하셨다고 하니, 가혹행위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라고 진술했다. 최씨는 2차례나 납북되었다가 돌아왔기에 다른 선원보다 더 가혹하게 심문과 조사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진실화해위는 보고서에서 합동심문종료보고에서 구타 사실이 확인된 점, 간첩을 색출할 경우 보로금을 지급하기로 한 점, 신청인 등의 허위 진술 강요와 가혹행위, 신체적 후유증에 대한 진술 등을 종합할 때, 1969년 5월 28일 귀환한 150명의 납북귀환어부들은 합동심문 등 조사과정에서 가혹행위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월선 조업했다고 허위 진술 강요받아
진실화해위는 보고서에서 “납북귀환어부들이 경찰 조사과정에서 가혹행위로 인한 허위진술을 강요받았을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 사례 중 하나로 왕양호 선장 김○○씨의 조사단계별 진술 내용의 변화를 들었다. 김씨는 1969년 6월 10일 경찰 1차 피의자 신문에서 “우리 배 옆에서 수산청 지도선 무궁화호 1척과 약 40여척이 어로작업을 하고 있었다”라며 월선 사실을 부인했다. 그러나 7월 4일 2차 신문에서는 “오전 5시 30분 거진항을 출발해 오전 6시 30분경 월선하였다”라고 월선을 시인하고, “선원들이 선장 의견대로 하라고 해서 월선에 찬성한 줄 알았다”라고 진술 내용을 바꿨다. 그리고 7월 16일 검찰의 2차 신문에서는 “당시 방향과 속력, 운항시간이 군사분계선을 월선할 수 있을 정도였다”라고 월선을 보다 분명하게 시인하는 진술을 했다. 진실화해위는 이를 강요된 진술로 판단했다.
왕양호는 1968년 11월 8일 대동2호, 대양호, 송학호, 수진호, 영덕호, 풍성호와 함께 납북되었다. 진실화해위 조사에서 왕양호 선장만이 아니라 당일 납치된 다른 배 생존자와 가족들도 “어업지도선 무궁화호가 어로저지선 주변에서 월선을 하지 않도록 지도하고 있었다”라고 진술했다. 만약 증언대로 우리 어선들이 군사분계선과 그 남쪽인 어로저지선 이남에서 어로저지선과 함께 있다가 납치를 당했다면, 납북귀환어부들을 처벌할 수 없다.
그래서 경찰과 검찰은 납북귀환어부를 처벌하기 위해 조사과정에서 가혹행위를 통해 허위로 월선조업과 선원 공모를 시인하는 허위진술을 강요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가혹행위는 검찰 조사과정에서도 있었다는 증언이 있다. 진실결정 보고서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지난 2009년 풍성호 고 황원식 선장은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검찰청(속초) 지하에서 키가 크고 덩치가 큰 사람으로부터 하룻동안 고문을 받았다. 북으로부터 무슨 지령을 받아 왔느냐며 거꾸로 매달아 놓고 심문하였다. 이때부터 허리를 제대로 쓰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150명 납북귀환어부들은 관할 법원에서 반공법 탈출죄와 수산업법 위반에 대해 유죄가 인정되어 대부분 징역 10개월에서 1년 6월, 자격정지 1년에서 1년 6월형을 선고받았으며, 대부분의 일반 선원들은 형 집행유예 2년에서 3년을 선고받았다. 이 가혹한 처벌은 불법구금과 가혹행위를 통해 강요된 허위 진술에 근거한 것임이 진실화해위 조사를 통해 밝혀진 것이다.
엄경선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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