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납북귀환어부피해자 진실규명 시민모임 운영위원들이 지난해 1월 26일 진실화해위원회를 방문해 간담회를 가졌다.
납북귀환어부들의 비극은 형사처벌에만 그치지 않았다. 모든 납북귀환어부는 북한과 접촉했다는 이유만으로 형사처벌 여부와 관계없이 국가기관으로부터 체제를 위협하는 예비범죄자로 간주되었다. 불법 감시와 사찰 피해는 물론이며, 다시 끌려가 간첩으로 내몰리는 피해까지 입었다.
진실화해위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1969년 5월 28일 귀환한 납북귀환어부 150명 전원은 1990년대 초반까지 국가정보기관의 간첩색출공작의 대상이었다. 더구나 일부 어부들은 대북역용공작과 간첩조작사건에도 이용됐다. 진실화해위원회는 보고서를 통해 군 보안대가 납북귀환어부를 대북역용공작에 이용해 이중간첩으로 활동토록 한 문서 내용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보안대, 납북귀환어부 대상 간첩색출공작
군 보안대는 1972년 9월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20여년간 1969년 5월 28일 귀환한 어부 150명 전원을 대상으로 공작명 ‘등대수사’를 벌였다. 등대수사는 군 보안대가 귀환 어부 중에 간첩 역할을 하고 있는 자가 있다고 판단하여 공개수사를 통해 간첩 혐의점을 찾아내겠다고 벌인 간첩색출공작이다.
보안대는 1972년 9월 2일 “대상 용의자 150명에 대해 각 대에서 비치하고 있는 중정 발행 ‘납북 및 귀환자 종합 명단’ 연번의 자대 관내 본적 주소지 해당자 전원의 기록 검토와 동향을 내사하여 보고하라”고 수사지시를 내렸다. 등대수사 결과보고에 따르면, 보안대는 납북귀환어부들이 북한방송을 청취하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한밤중에 잠복 또는 침투하여 감청하였고, 가옥 내 동정을 살핀다는 이유로 경찰 등으로 위장하여 함부로 방문을 열고 내부사정을 살피거나, 문구멍을 뚫어 감시하기도 하였다. 수사결과보고에는 각 납북귀환어부들의 자택 약도, 가옥구조, 가옥사진이 첨부되어 있고, 침투시 유의사항도 적시되어 있다.
보안대는 납북귀환어부 중에서 재산증감, 북한찬양 언동, 정부정책 불만 등 특이동향자 신고에 따라 내사를 진행했고, 보안대에서 임의로 책정한 고정간첩 검거 목표량을 채우기 위해 납북귀환어부를 포함하여 월북자, 미귀환자 가족을 수사하기도 했다.
1972년 6월 212보안부대가 작성한 ‘공개수사계획보고’에 의하면, 귀환 후 주소지 이동자, 직업 변경 및 출타가 빈번한 자, 지령을 받은 자, 2회 납북귀환자 등을 중점 수사대상으로 삼아 장교 1명과 사병 3명을 배치하여 각 거점 및 빈 사무실, 지역 내 위치한 여관방 등을 사용하여 부대원이 직접 임의동행 형식으로 대상자들을 조사하였다. 특히 미귀환어부가 남파간첩으로 내려와 가족과 만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그 가족에 대한 감시도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등대수사 평가 문서에서는 간첩 색출 실패 이유로 ‘대상자에 대한 빈번한 심문으로 취조 적응력이 강해짐’이라고 기재된 점을 볼 때, 보안대가 공작과 교육 등을 이유로 납북귀환어부들에 대한 조사와 취조, 심문 등을 상당기간 반복해서 진행하였다고 진실화해위는 판단했다.
보안대는 등대수사 외에도 특이동향이 파악된 어부를 대상으로 다시마공작(1975.4.21~ ), 황소공작·암소공작(1982~1983), 고구마공작(1982~1983), 동해공작(1985~1988) 등의 이름으로 내사와 수사공작을 진행했다.
귀환어부를 이중간첩으로 역용공작 이용
특히 보안대가 납북귀환어부를 대북역용공작에 동원해 이중간첩으로 활동하도록 공작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보안대는 귀환 당시 북한으로부터 지령을 받아 온 납북귀환어부를 실제 지령을 수행토록 역이용해서 남파 간첩을 검거하고 고정간첩망을 일망타진하려고 대북역용공작을 벌였다.
‘α’공작은 납북귀환어부 장○○를 대상으로 한 역용공작이다. 보안대의 장○○ 공작카드에 나오는 1969년 12월 1일 역용공작 승인신청 내용을 보면, 보안대에서는 역용공작에 활용하기 위해 장씨를 정신교육하고, 주변 정보조직을 동원해 동향을 감시하고 침투 정보원 연락망까지 구성했다. 간첩 상부선 접선을 위해 장기출타를 제한하고, 매주 1회 정기적으로 공작 현지 조정관과 접촉해 작전을 수행했다. 심지어 배우자에게도 보안유지와 업무수행에 관한 교육을 실시하기도 했으며, 생계보조비도 지급했다.
보안대는 1969년부터 1984년 12월까지 14년간 귀환어부 박○○를 대상으로 ‘오징어공작’ 또는 ‘기러기1호공작’이라는 공작명으로 대북역용공작 및 대북침투공작을 벌였다. 박씨의 아들은 진실화해위 조사과정에서 “부친이 이중간첩 활동을 요구받았으며, 회유와 협박으로 아주 괴로워했다”라고 진술했다.
대공 감시활동을 떠맡은 귀환어부들도 있다. 지난해 7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경북 영덕군의 귀환어부 김○○은 귀환 후 수상한 사람을 신고하는 대공요원으로 활동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자신이 수상한 사람이라고 신고를 하면 바로 붙잡혀갔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씨도 납북귀환어부의 비극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김씨는 “아들이 해군 하사관에 지원했는데, 내가 납북되었다가 돌아왔다는 이유로 신원조회에 걸려 훈련소에 갔다가 귀가조치되어 돌아왔다”고 말했다.
경찰의 강요와 회유로 동료귀환어부가 간첩행위를 했다고 허위증언을 한 어부도 있다. 1978년 고성경찰서 대공형사의 강압으로 구속된 박○○ 간첩조작사건 재판에는 납북귀환어부 3명과 미귀환어부 가족 3명이 박씨의 간첩행위 증인으로 법정에 섰다.
경찰이 북에 다녀왔거나 가족이 북에 있다는 사회적 약점이 있는 주민을 간첩조작사건에 동원한 것이다. 이때 증언에 동원된 당사자도 나중에 간첩으로 내몰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박씨 사건에 증언을 섰던 동료 유○○씨의 부인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남편이 박○○간첩사건으로 강릉에서 조사를 받고… 1983년 대전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를 받았는데 고문 및 폭행을 당했다. 간첩이라는 소문이 나서 어렵게 살다 자살하였고, 막내아들은 사관학교 진학을 포기했다”고 진술했다.
다시 간첩으로 몰린 어부, 일부는 재심 무죄
1969년 5월 28일 귀환한 150명 중에는 형사처벌 이후에 다시 간첩으로 내몰리거나 반공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어부들도 있다. 이들 중에는 최근 재심에서 억울하게 간첩으로 내몰렸다는 사실이 밝혀져 무죄를 선고받은 이들도 있다.
묵호에 거주한 대양호 선장 김○○과 선원 3명은 형사처벌을 받은 지 1년 만인 1970년 6월 육군보안사령부 제308보안부대의 군 수사관들에 의해 영장없이 연행되어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3명은 징역 7년, 1명은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납북 당시 북으로부터 지령을 받아 귀환한 후 간첩과의 접선장소를 답사 확인하는 등 간첩행위를 예비했다는 죄목이었다. 이들은 2011년 신청한 재심이 받아들여 2014년 서울고등법원에서 불법 체포와 구금, 고문 및 가혹행위가 인정되어 무죄를 선고받아 억울하게 씌워진 간첩누명을 벗었다.
고성군 대진에 사는 길성호 선원 박○○는 지령을 받아 귀환해 군사기밀 탐지 수집, 북한 찬양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2011년 재심을 청구해 2013년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에서 고성경찰서 수사관들이 약 22일간 불법구금 및 구타, 고문한 사실이 인정되어 무죄를 선고받았다.
1981년 제51준호 선원 전○○가 반공법 고무찬양죄로 징역 2년 및 자격정지 2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고, 1984년 해진호 선원 김○○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7년 및 자격정지 7년을 선고받았다.
150명 귀환어부 중 2명은 다시 북에 납북되었다가 귀환해 처벌을 받기도 했다. 왕양호 선원 이○○는 1971년 협동호 선원으로 납북되었다가 다음해 5월 10일 귀환해 반공법 위반 등으로 처벌받았으며, 해승호 옥○○도 1970년대 초반 다시 납북되었다가 귀환해 반공법 위반 등으로 다시 처벌받았다.
1969년 5월 28일 돌아온 150명의 납북귀환어부와 가족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국민으로서의 인권은 존재하지 않았다. 체제를 위협하는 단속 대상, 공안기관의 사냥감이었을 뿐이다. 군 보안대를 비롯한 국가기관은 150명의 어부들과 가족들의 일상을 또 어떻게 감시하고 통제했을까?
엄경선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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