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납북귀환어부 인권침해사건 민관정 토론회에서 납북귀환어부 피해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 요구가 집중 제기되었다. 이날 토론회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김교흥 국회 행정안전위원장, 이양수·허영·배준영 국회의원, 납북귀환어부 인권침해 피해보상 특별법 추진위원회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MBC 문화방송과 강원일보, 전북일보, 매일신문 공동주관으로 열렸다. 특히 이날 토론회에는 고성군청이 제공한 버스를 타고 상경한 속초·고성 피해자와 가족 40여명이 참석해 설악권의 높은 관심을 실감케 했다.
진실화해위원회 이상훈 상임위원이 좌장을 맡은 토론에서는 김아람(한림대학교 사학과 교수), 엄경선(진실규명시민모임 운영위원), 최정규(원곡법률사무소 변호사)의 주제발표와 함께 김춘삼(진실규명시민모임 대표), 하광윤(강원민주재단 상임이사), 박창희(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선임연구원), 김영경(KBS PD)의 토론자 발표가 이어졌다. 특히 공동 주최자로 나선 국회의원들은 토론에 앞선 발언을 통해 납북귀환어부 인권침해사건 해결에 함께 힘을 모을 것을 약속했다.
김교흥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은 “납북귀환어부 진실규명에 따른 국가의 사과와 권고 이행이 필요하다”며 “1기보다 80% 증가한 사건의 진실규명과 안정적인 조사 활동을 위해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기간을 1년 연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양수 국회의원(속초·인제·고성·양양)은 “제가 지역구로 있는 강원 지역의 귀환 어민들이 수사 정보기관에 의해서 불법 연행되고 각종 고문의 피해자가 되셨고, 그로 인해 고문 후유증은 물론 반공법 등 위반 혐의로 평생 간첩이라는 낙인 속에 커다란 어려움을 겪으셔야만 했다”며 “국회의원으로서 피해자분들의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이고 구제 방안들을 마련하는 데 국회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허영 국회의원은 “납북귀환어부 인권침해사건은 국가가 저지른 국가폭력사건으로 특별법 제정을 통해 진상규명과 피해보상이 충분하게 이뤄져야 한다”며 “특별법 제정 최전선에 서서 함께 노력할 것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진실화해위원회 김광동 위원장은 “납부귀환어부들이 불법 납북 혹은 강제 납북된 후 이뤄진 강제 억류를 포함해서 귀환 이후 있었던 인권침해 등 모든 피해에 대해 함께 조사하고 구체적 피해구제 방안을 모색하는데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특별법 추진위원회 최윤 공동위원장은 “국가가 진심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 사죄를 한다면 이제 특별법을 통해 민사소송을 통하지 않고도 빨리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야 된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가 끝난 후 최윤 위원장은 “여러 의견을 모아 9월 중으로 납북귀환어부 인권침해 피해보상 특별법 요구안을 국회에 정식으로 제출하겠다”고 향후 특별법 추진 일정을 밝혔다.
한국전쟁 이후 1980년대까지 조업 중 강제 납북됐다가 귀환한 어부들은 다시 국가기관으로부터 불법감금과 구타·가혹행위를 받고 기소되어 국가보안법, 반공법, 수산업법 위반으로 처벌받았으며, 이후에도 불법사찰과 감시, 연좌제 등 피해를 입었다. 이를 납북귀환어부 인권침해 사건이라 하는데, 통일부에 따르면 기간 중에 동·서해안에서 납북된 어부 3,729명 중에 귀환자 3,263명 모두가 납북귀환어부사건 피해자라 볼 수 있다.
2기 진실화해위원회는 납북귀환어부 신청사건 241건과 함께 지난해 2월 109척 982명에 대해 직권조사를 결정하고, 올해 2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총 220척 310명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했다. 동해안 지역에서는 지난 2020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진실규명결정을 받은 피해자를 비롯해 모두 120명의 납북귀환어부가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이중 검찰 직권 재심청구로 무죄판결을 받은 피해자도 42명에 이른다.
■토론회 발표 요지
김아람 한림대 교수
“특별법 제정은 국가 잘못 바로잡는 첫 단계”
한국전쟁 이후 많은 어부들이 남북한의 체제 경쟁 속에서 납북되었고, 귀환 후에 반공법,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피해를 입게 되었다. 과거 정부의 반인권적인 행태로 귀환어부들은 불법 구금, 인권침해, 고문 등 피해을 입은 사실이 여러 차례 진실규명 결정으로 밝혀졌다. 지금 이 피해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하는 것이 한국 사회 당면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납북귀환어부 피해 범위가 매우 넓다. 피해 당사자만이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평생 동안 피해가 지속되었다. 앞으로 진실화해위원회에서는 다양한 측면에서 피해 사실을 밝혀내고, 치유와 보상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특별법을 주장하는 이유는 특별한 대우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특별법은 국가의 잘못을 법적으로 바로잡기 위한 첫 단계이며, 피해자들에게 배상 보상을 해야 하는 것은 최소한의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엄경선 시민모임 운영위원
“납북귀환어부, 죽어야만 요시찰에서 해제”
1972년 9월 7일 돌아온 선원들 중 피해 진술을 하신 31명 중 29명이 고문을 당했다고 진술하셨다. 무릎 사이에 각목을 끼워 짓밟는 압슬이라는 고문도 있었고, 손가락에다 볼펜을 끼워 누르는 고문, 고춧가루를 탄 물을 코에 붓는 물고문에 전기고문까지도 있었다. 진실화해위 결정을 보기 전에는 납북으로 고생하신 분들에게 나라에서 이렇게 고문까지 했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1972년 9월 7일 돌아온 어느 배 선장은 1년간 징역형을 살고 나왔는데, 앞바다에 조업을 나갔다가 배가 전복되어 돌아가셨다. 시신이 해안으로 떠올라 가족들이 수습을 해서 장례를 치르려고 입관 절차까지 마쳤는데 경찰서에서 쫓아왔다. 사망을 확인한다고 관을 뜯고 얼굴 사진을 찍고, 사진을 가족들한테 보여줬다. 사진을 본 가족이 절도까지 했다. 이렇듯 죽어서야 비로소 요시찰이 해제되는 게 납부귀환어부의 운명이었다. 1967년 부친의 납북귀환사건 때문에 2천년대 이후 20대 나이의 아들이 경찰 시험에서 떨어졌다. 아들의 낙방 소식을 듣고 아버지는 자기 때문에 아들까지 피해를 본다고 눈물을 흘리셨다.
지금 납북귀환어부 과거사 해결을 위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17년 전에 진실이 밝혀지기 시작한 납북귀환어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적기이다. 2기 진실화해위원회 활동 성과를 기반으로 특별법 제정을 이뤄내야 한다.
최정규 변호사
“특별법, 피해자와 유족 의견 존중돼야”
특별법 제정에 가장 중요한 건 피해자와 유족의 권리이다.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이후 실행에도 국가는 피해자와 유족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특별법에는 국가의 사과와 책무를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
진실화해위원회처럼 위원회가 있어야만 여러 가지 실무를 진행할 수 있다. 국가의 잘못이 명확하게 확인된 만큼, 위원회는 국무총리 소속 기관으로 두고 행정력을 발휘해서 신속하게 명예와 피해 회복을 진행해야 한다. 위원은 어떤 정치적인 시비에 휘말리지 않도록 여야 동수 추천으로 구성하면 좋겠다. 피해 신고처는 국내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재외공관이 있는 곳에도 설치해야 한다. 위원회가 진상조사를 하려고 해도 조사에 협조하지 않을 수도 있기에 동행 명령을 법안에 넣어야 한다. 위원회가 직권 재심 청구를 권고할 수 있다는 규정을 담아야 한다.
납북 기간이 3년 이상 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납북 기간에 상응하는 보상이 인정되어 배보상이 이뤄져야 한다. 국가에서 트라우마 치유 사업을 적극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김춘삼 진실규명시민모임 대표
“피해자 명예회복 위해 특별법 만들어야”
납북되었다가 1972년 9월 7일 속초항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어부들은 속초시청 3층에 강제 연행 불법구금되어 해동여인숙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15살에 북에 넘어갔다가 16살에 넘어왔다. 가장 아름다워야 할 그 유소년 시절에 이런 비극이 시작되었다. 같은 배 선원이 간첩으로 내몰려 나한테 일개 분대 병력이 와서는 머리에 9개의 총구를 갖다 대기도 했다.
나뿐만 아니라 납북귀환어부 모두 심하게 고초를 당했다. 눈물나는 세월을 보냈다. 돌아가신 분들과 생존자들 모두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도 특별법은 반드시 만들어야만 한다.
하광윤 강원민주재단 상임이사
“국가의 진심어린 사과가 있어야”
납북귀환어부 문제는 장시간에 걸쳐 광범위한 지역에서 일어났기에 오랫동안 묻혀 있었다. 피해자들이 우리 사회 가장 약자였다. 가장 약한 자의 권리가 보장될 때 모두의 권리가 보장된다.
강원도 지역의 납북귀환어부 진실규명 과정을 보면 민관정이 협력한 모범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피해지역의 어촌공동체가 살아있고, 지역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민단체의 노력과 피해자와 가족의 자발적인 노력, 지역언론의 집중기획 보도, 자치단체의 조례 제정 등이 함께 어울려 결실을 맺고 있다. 국가는 과거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만이 아니라 국민에게 제대로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 국가의 진심어린 사과가 빠른 시일내에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 지면 관계로 토론자 박창희(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선임연구원), 김영경(KBS PD)의 발표 내용은 생략합니다.
엄경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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