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연(사진) 작가가 두 번째 소설집 <여름의 여름>(정은출판)을 펴냈다. 2018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사십사 계단’ 등을 담았던 첫 소설집 <신의 뜨락에 그녀들의 자리는 없다>를 내놓은 지 꼭 2년 만이다.
전남 구례로 한달살이를 갔던 작가는 ‘화개십리길의 벚꽃의 성채에 매혹당해’ 떠나지 못하고 산동으로 거처를 옮겨 산책과 읽기로 사유의 시간을 보내며 소설을 쓰고 다듬어 8편의 단편을 한 권으로 묶었다.
작가는 소설집 ‘작가의 말’에서 “이 아름답고 고요한 곳에서 내 소설 속 인물들의 말을 귀 기울여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내게 다가와 자신들의 상처와 아픔을 조곤조곤 얘기해 주었고 나는 시나브로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고 썼다.
작가와 30년 가까이 우정을 나누고 있는 이정숙 가톨릭관동대 교수는 ‘고통에 대한 응시와 증언을 통한 공생’이라는 리뷰에서 “이정연 작가의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한 사람의 불행과 그 고통의 주변을 공전한다. 작가는 그들을 대신해서 이야기하면서, 그들의 경험을 전달한다. 그러나 작가는 보는 자로서 의도는 내색하지 않고, 섣부른 공감을 주저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작가는 오로지 고통 속의 주인공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만을 증명하려는 듯, 묘사는 하되 고통에 대해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표제작인 ‘여름의 여름’은 엄마가 ‘위험한 사랑’으로 자신을 버리고 떠나 조부모와 함께 사는 초등학교 5학년 여름이의 이야기다. 할아버지는 술에 취하면 ‘이 찢어 죽일년’ 하며 달려들어 뒤주 속에 숨게 하고 자신이 가장 아끼는 토끼를 잡아 ‘퇴끼 괴기다’며 먹기도 한다. 보물창고 ‘오주상회’ 딸인 단짝 친구 오주와 ‘잘 표현된 불행은 불행이 아니’라며 ‘글 쓰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라’던 털보선생님마저 떠나보내야 하는 여름이는 다짐한다. ‘한 톨의 거짓 없이 불행을 증언하는 글을 써서 그 불행의 조각들로 빛나는 존재의 집을 지을 것’이라고.
‘자술’에서 ‘되는 일이라고 하나 없는’ 심드렁한 여성 다큐 감독인 나는, 호미와 노동으로 견뎌온 80대인 자술의 생을 영상에 담은, 별이 총총 박힌 봄밤에 그와 친구가 된다. 그 후 자술의 비극적 죽음을 전해 들은 나는, ‘자연과 사람을 열정적으로 관찰하고 싶어’지고 ‘내 삶이 자술이 갈아엎은 흙처럼 생명으로 가득 채워지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이 교수는 이를 두고 ‘이야기를 듣는 자와 이야기를 들려주는 자가 돌이킬 수 없는 화이부동의 세계를 경험하고 이것은 소설이 가진 가치와 같다’고 해설했다.
<여름의 여름>에 실린 소설들을 읽다 보니 ‘가난과 폭력, 상실의 세계에서 자신의 존엄을 지켜내려고 분투하고 고통 속에서도 발랄한 생의 기쁨을 포기하지 않는’, <신의 뜨락에 그녀들의 자리는 없다> 속의 인물들이 보였다.
소설집에는 이외에 ‘루르마랭 워크숍’ ‘바다의 목소리’ ‘미궁’ ‘거위요리를 아시나요?’ ‘운조의 숲’ ‘이스크라’가 실렸다.
양구 출신으로 강원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한 이 작가는 국어교사로 속초여고와 설악고, 거진정보공업고에서 근무했고 2002년 속초고에서 퇴직했다.
장재환 기자 semin2748@naver.com
이정연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여름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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